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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희 Nov 04. 2023

아침 수목원에서

내색하지 않고 울창해지는


차분한 아침


잠이 덜 깬 상태로 일어나 간단히 커피와 빵을 들고 도착한 곳은 수목원(광릉수목원)이다.


11월의 신선한 공기와 묵직한 나무 향기가 입구에서부터 느껴진다.

아름드리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숲을 보니 오래된 전설을 가지고 있을 법해 보였다


문 여는 시간에 맞춰 도착했더니 서너 대의 차들만 있고 넓은 주차장이 텅텅 비어 있다.

수목원 공사 차량 두어 대와 지게차가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왔다 갔다 움직이고 있다.

큰 나무 옮기는 둔탁한 소리와 나무 자르는 기계 소리가 비명처럼 요란하다.


어젯밤 예매한 입장권을 가지고 바로 수목원으로 들어갔다.

30여 미터쯤 숲으로 들어가니 요란하던 소리도 점점 잦아지더니 어느새 소실되어 버렸다.

불과 몇 미터 떨어진 숲은 세상과 단절된 야생의 원시림처럼 고요하다.


차분하게 아침이 열리고 있었다.

빽빽한 나무 사이로 첫 햇살이 수줍게 비집고 내려와 비추고 있었다.

밤새 이슬비라도 내린 것처럼 숲과 나뭇잎에는 투명한 물방울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익숙한 새소리와 걸을 때마다 들리는 나뭇잎 바삭이는 소리가 기분 좋게 세상의 아침을 깨운다.

수목원의 아침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순수함, 그 자체인 것 같다.

세상을 처음 마주한 아이처럼 숲은 늘 새롭다.



전나무 숲길


가을 아침 햇살은 가장 알맞은 온기와 빛으로 숲을 밝힌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무언가에 이끌린 것처럼 깊고 푸른 전나무숲으로 들어갔다.

이곳 전나무숲은 우리나라 3대 전나무숲길 중 하나로 길이가 200m나 된다.

1923년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의 종자를 이식해 만든 숲으로 수령이 100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인공림으로 조성되었지만 시원하게 뻗어 올라간 나무의 키와 압도적 굵기의 전나무를 보면 이곳이 태곳적부터 존재했던 원시림이 아닌가 싶다.


언젠가부터 힘들 때면 늘 오래된 숲에 가고 싶었다.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위안을 받는 넉넉한 숲은

아픈 상처까지 보듬어 주는 어머니 품처럼 따스하다.


숲에는 뭔가 열리지 않는 비밀을 간직한 신비함이 있다.

인생의 진리를 알 수 있을 것 같아

새소리와 물소리,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며 숲을 걸어본다.





울창해지는 나


이곳 국립수목은 '광릉수목원'으로 시작되었고 550여 년간 훼손되지 않고 본존 된 숲이다.

오래된 고목과 다양한 생물들이 조화를 이루며 울창한 숲이 되었다.

숲에 줄지어 서 있는 나무들의 이름표를 보며 소리 내어 읽어본다.

서어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떡갈나무, 계수나무....., 어쩜 이리 친근하면서 재밌게 이름을 지었을까?


숲을 걸어가며 예전부터 좋아했던  문정희 시인의 '나무학교'란 시를 읊어본다.   


해마다 어김없이 늘어가는 나이

너무 쉬운 더하기는 그만두고

나무처럼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중간생략)


나무는 나이를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도 어른이며

아직 어려도 그대로 푸르른 희망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그냥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무엇보다 내년에 더욱 울창해지기로 했다


시인이 나이를 나무속에다 새기고 싶다고 한 말을 이제야 알듯도 하다.

안으로 더 울창한 어른,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 본다.


나는 오로지 걷고

나무는 듬직이 서 있고

새는 가벼운 날갯짓으로 허공을 날아가는

고요한 숲에서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려 쏴 쏴아아 하는 소리가 귓전에 머문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더 울창해지는 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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