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라 공기는 차가웠지만 한낮의 햇볕은 걷기에 충분히 즐겁다.
느슨한 바지와 점퍼, 운동화를 신고 시간 맞춰 약속 장소에 도착했더니 A만 빼고 모두 모여 있었다.
메뉴판에서 가장 맛있는 점심 메뉴를 선택해 먹어가며 즐거운 대화가 이어졌지만, A는 오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 모임이 끝나갈 무렵 A는 오늘 급한 일로 못 나온다는 짧은 연락이 왔다.
유일하게 현직에 있는 A는 여전히 바쁜 일상을 보내는구나 생각하며 헤어졌다.
그날 저녁 A가 다시 전화를 해 아까는 경황이 없어 미안하다는 말도 못 했다며 오늘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줬다. 사무실로 칼을 든 사람이 나타나 직원들을 위협하고 난리를 쳐 경찰까지 불렀다는 이야기다.
아직 여전하구나. A가 겪었을 난리통을 공무원이라면 누구나 경험했고 나 또한 예전 생각에 화가 났다.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으로 스스로 삶을 포기한 젊은 선생님들의 죽음과 교권보호를 외치는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유난히 컸던 한 해였다. 그만큼 민원 수위가 상식 수준을 넘어가고 있고 이런 현상은 학교뿐만 아니라 일선 지자체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공직 생활 초기 민원실에 근무할 때 젊은 남자가 취업에 필요한 신원증명서 발급을 요청했다.
그는 폭력 전과 1년 실형을 살고 나온 전과자였다. 무서워 그와 눈도 못 맞추고 신원증명서에 적색 볼펜으로 죄명과 실형 기간을 적어 발급해 줬다.
그날부터 그는 매일 전화를 걸거나 퇴근 시간에 맞춰 기다리기 시작했다. 실형 기록을 없애달라는 집요한 요구는 점점 심해 협박으로 이어지면서 그야말로 공포의 몇 달을 보냈다.
한동안 얼이 빠져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다 다른 부서로 전출을 가고서야 지옥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악성 민원은 공무원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달라며 떼를 쓰는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대한민국 헌법 위에 뗏법이 있다는 말이 나왔을까 싶다.
사실 욕설과 폭행 민원은 경찰을 불러 해결이 가능하지만 이보다 더 무서운 건 민원 폭탄 터뜨리기다.
1년 전 만난 그는 말끔한 차림으로 관공서에서 자원봉사까지 하며 마음 좋은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업계에서 유명한 민원이라고 직원들이 조심하라는 귀띔을 해주었다.
하루에 수십 건씩 자신과 관련도 없는 민원을 내거나 정보공개를 요구하며 관공서에 상주하는 사람이다.
유사하게 제기된 민원은 반복되더라도 정해진 기한 내 답변하지 않으면 직무 유기라 처리를 해야만 한다.
답답한 마음에 법률 자문을 하니 폭행과 협박이 없으면 공무집행 방해죄가 성립되지 않아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대답만 들었을 뿐이다. 악성 민원을 받아도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버티거나 그만두는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더더욱 비참한 건 30년 전 겪었던 그 불쾌한 일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는 현실이다.
욕먹지 않으려고 죽은 듯이 일하며 내 생각과 주장은 늘 가슴에 묻고 32년을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도 죽음을 선택하는 선생님, 얻어맞는 주민센터 직원들에 대한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시민은 주인(主人)이고 공무원은 공복(公僕)인 나라, 참 바람직하고 좋은 세상이라는데 동의한다.
그 말인 즉 공무원을 머슴취급하라는 말이 아니라 공무원이 책임감을 가지고 공정하게 업무처리하며 시민들에게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메타포적인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부 주인은 주인다움을 버리고 공무원을 머슴취급하며 하찮게 여긴다.
그럼 머슴도 스스로 일하기보다 주인의 눈치만 보고 복지부동하게 된다.
올해가 199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의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었다고 한다. 공무원의 퇴직률 또한 지난 5년 사이 두 배나 증가했다며 우려 섞인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한때 딸아이에게 공무원을 권한적도 있을 만큼 자부심도 컸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딸이 공무원이 아니라는 것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칼부림 행패를 온몸으로 겪고 점심도 못 먹었을 A와 직원들은 오늘 밤에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잠도 못 이루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답답하다.
하루빨리 공무원도 주인이 되는 시대, 공무원도 보호받는 세상이 오지 않는다면 똑똑한 인재가 공무원을 하는 일은 없을 거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