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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희 Feb 18. 2024

누군가의 시선

호기심     

오늘의 이야기는 칼 하인리히 블로흐의 ‘girl knocking at the fisherman's window’ 그림이다. 그림 속 소녀는 창문으로 어부의 집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고 있다. 보통 그림은 실내에서 바깥을 향하는데 이 그림은 좀 독특하다. 화가는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그림을 그려 독자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칼 하인리히 블로흐(Carl Heinrich Bloch, 1834-1890) girl knocking at the fisherman's window/1884    


소녀는 집안 상황이 궁금한지 창문에 얼굴을 밀착해 안을 들여다보고 있지만 안은 보이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한 손가락으로 창문을 두드려 보지만 인기척이 없다. 안에 누군가를 부르려는 의도보다는 안을 살필 시간을 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을에서는 남자가 살인하고 도망쳐 혼자 살고 있다는 소문이 있지만 정확하게 그 사정을 아는 사람은 없다. 이른 새벽에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나가 밤이 돼야 돌아오는 남자에겐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궁금하지만, 거친 남자와 마주치는 게 두렵다.      


마을 사람들은 이상하리만치 이 집을 경계하며 감시하고 있다. 금기된 장소로 간 소녀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금방이라도 창문 안에서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질 것 같다. 도대체 이 소녀는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이것 또한 독자의 몫이다. 우리는 자신이 평소 생각했던 것을 상상하며 그림을 본다.      


또 다른 시선     

한낮에 카페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반사된 유리창을 거울삼아 옷매무새를 살피는 장면을 보게 된다. 햇빛 좋은 날엔 외부에서 실내가 안 보이지만 안에서 밖의 풍경이 훤하게 보인다.  

    

이 그림이 재미있는 건 안에서 누군가가 소녀가 보고 있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사람의 존재는 더 불안하다. 미스터리한 남자가 그녀를 뚫어지게 보고 있다고 생각만 해도 몸에 전율이 흐른다. 저 순진한 소녀가 어떻게 되지는 않을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상상을 하며 말이다.      


존버거는 그의 책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여성 누드화에서 주인공은 여성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림을 관람하는 남자가 주인공이라는 주장한다. 누드 예술 형식에서 화가와 관객은 보통 남자이며 대상은 여자다. 혹시 이 그림의 주인공도 소녀 앞에 있는 화가나 우리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엿보고 싶은 우리들 말이다.      

엿보기     

영화 클래식에서도 여름 방학을 맞아 시골 삼촌 댁에 간 준하(조승우)는 주희(손예진)가 '귀신 나오는 집'에 동행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주희처럼 다른 사람들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산다. 미니홈피가 처음 나왔을 때 학교 친구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찾아보곤 했다.      


그림 속 소녀가 창문을 통해 무언가를 '엿보기'하는 심리나 내가 친구들의 소식을 SNS로 몰래 찾아보는 심리는 같다. 요즘은 보고 싶은 사람과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 SNS가 활발하다. 아무것도 안 올리며 보기만 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관음증에 가깝다.      


이런 대중의 심리를 이용해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인기가 많다.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건강해 보이지도 않고 지나치면 스토킹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한 행동이다. 우리의 삶이 그만큼 공허하고 무기력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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