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야기는 칼 하인리히 블로흐의 ‘girl knocking at the fisherman's window’ 그림이다. 그림 속 소녀는 창문으로 어부의 집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고 있다. 보통 그림은 실내에서 바깥을 향하는데 이 그림은 좀 독특하다. 화가는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그림을 그려 독자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칼 하인리히 블로흐(Carl Heinrich Bloch, 1834-1890) girl knocking at the fisherman's window/1884
소녀는 집안 상황이 궁금한지 창문에 얼굴을 밀착해 안을 들여다보고 있지만 안은 보이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한 손가락으로 창문을 두드려 보지만 인기척이 없다. 안에 누군가를 부르려는 의도보다는 안을 살필 시간을 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을에서는 남자가 살인하고 도망쳐 혼자 살고 있다는 소문이 있지만 정확하게 그 사정을 아는 사람은 없다. 이른 새벽에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나가 밤이 돼야 돌아오는 남자에겐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궁금하지만, 거친 남자와 마주치는 게 두렵다.
마을 사람들은 이상하리만치 이 집을 경계하며 감시하고 있다. 금기된 장소로 간 소녀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금방이라도 창문 안에서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질 것 같다. 도대체 이 소녀는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이것 또한 독자의 몫이다. 우리는 자신이 평소 생각했던 것을 상상하며 그림을 본다.
한낮에 카페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반사된 유리창을 거울삼아 옷매무새를 살피는 장면을 보게 된다. 햇빛 좋은 날엔 외부에서 실내가 안 보이지만 안에서 밖의 풍경이 훤하게 보인다.
이 그림이 재미있는 건 안에서 누군가가 소녀가 보고 있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사람의 존재는 더 불안하다. 미스터리한 남자가 그녀를 뚫어지게 보고 있다고 생각만 해도 몸에 전율이 흐른다. 저 순진한 소녀가 어떻게 되지는 않을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상상을 하며 말이다.
존버거는 그의 책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여성 누드화에서 주인공은 여성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림을 관람하는 남자가 주인공이라는 주장한다. 누드 예술 형식에서 화가와 관객은 보통 남자이며 대상은 여자다. 혹시 이 그림의 주인공도 소녀 앞에 있는 화가나 우리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엿보고 싶은 우리들 말이다.
영화 클래식에서도 여름 방학을 맞아 시골 삼촌 댁에 간 준하(조승우)는 주희(손예진)가 '귀신 나오는 집'에 동행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주희처럼 다른 사람들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산다. 미니홈피가 처음 나왔을 때 학교 친구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찾아보곤 했다.
그림 속 소녀가 창문을 통해 무언가를 '엿보기'하는 심리나 내가 친구들의 소식을 SNS로 몰래 찾아보는 심리는 같다. 요즘은 보고 싶은 사람과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 SNS가 활발하다. 아무것도 안 올리며 보기만 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관음증에 가깝다.
이런 대중의 심리를 이용해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인기가 많다.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건강해 보이지도 않고 지나치면 스토킹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한 행동이다. 우리의 삶이 그만큼 공허하고 무기력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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