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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희 Feb 22. 2024

도쿄 미술 여행

귀와 눈을 열면 의미 없는 사건도 대단한 일로 바뀐다

 

나를 잊어버리는 여행   


도쿄 여행 3번째, 이번 여행은 미술관에서 전시를 보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작년부터 친한 지인 A랑 도쿄에서 전시를 보자고 하다가 해가 바뀌고야 실행에 옮겼다. 이른 아침 공항버스를 타러 집을 나왔는데 아직 어두웠다. 여행을 위해 집을 나서는 길이 가장 설레는 순간인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조금은 쌀쌀하지만, 떨어지는 빗방울은 마치 건반 위를 구르는 음표들처럼 경쾌했다. 운동화 앞코가 젖어 들어갔지만 뭔가 즐거운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랄까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린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어떤 의무감도 없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떠난 여행지에서 무엇을 보고 누구를 만나게 될까?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또 어떤 모습으로 일상을 살게 될까? 기대감으로 마음이 훌쩍 설레기 시작했다. 나에게 여행은 현재와 미지의 사이에 일렁이는 작은 파도 같다고 생각하며 공항에 도착했다.



자포니즘 미술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판화가 펠릭스 브라크몽은 일본 도자기를 싼 포장지에 그려진 가쓰시카 호쿠사이 그림을 보고 매료되었다. 당시 인상파 화가들은 기존의 사실적인 화풍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있던 와중에 일본의 풍속화 우키요에를 알게 되었다. 일본 에도시대 서민 계층에서 유행했던 목판화인 우키요에는 거대한 자연을 그리며 사람을 아주 작게 묘사하거나 사람이 없이 묘사한 풍속화다. 우키요에는 유럽 인상주의 화가들을 중심으로 유행한 자포니즘(Japonisme)에 영향을 주었다.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이나 고흐의 ‘꽃이 핀 아몬드 나무의 가지들’, '탕기 영감의 초상'이 우키요에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다. 막연하게 인상파 화가들을 매료시킨 일본에 가서 전시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그런 영향인지 도쿄에는 미술관이 유난히 많다. 국립 서양미술관과 국립 신미술관, 모리미술관에 들려 전시를 볼 예정이었다. 특히 우에노 공원 안에 있는 국립서양미술관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가 중 한 명인 르코르뷔지에가 건축한 미술관으로 도쿄 최초의 세계문화유산이다. 사업가 '마츠다 고지로'가 로댕, 모네, 피카소, 고흐 등의 작품을 10년 동안 수집해 미술관 소장품이 6,000여 점에 이른다고 한다. 이름만 대도 알만한 작품을 상설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는 게 이 여행이 가지는 큰 장점 중의 하나다. 


특히, 구로카와 기쇼가 건축한 국립 신미술관에서는 ‘마티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모리 미술관에서는 ‘키스 해링’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엄청난 기획 전시가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볼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일본에 도착했다. 아침 일찍 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더니 오후 도쿄에 도착하니 미술 여행을 떠나기에 더없이 매력적인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도쿄의 거리


겨울의 끝에 와 있는 2월의 도쿄 날씨는 이른 봄처럼 햇살이 따사로웠다. 도쿄의 하늘은 믿기지 않을 만큼 푸르렀고 따듯한 날씨 탓에 사람들의 옷차림은 한없이 가볍다. 에너지가 차오른 젊은 친구들은 반소매를 입고 자유롭게 걸어 다닌다. 거리에는 성급한 매화 나뭇가지에서 수줍게 꽃망울이 터져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기분 탓일까? 숨 쉴 때마다 코끝에서 꽃향기가 나는 것 같다. 한껏 봄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심술이라도 난 듯 갑작스레 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치지만 바람의 온도는 이미 봄의 온기를 담아 한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도쿄는 전철이 잘되어 있긴 한데 처음 가는 사람에게는 좀 복잡하다. 숙소에 가기 위해 JY선을 타고 니시닛포리역으로 가야 하는데 타는 입구가 낯설어 헷갈렸다. A가 전철을 타려고 기다리던 일본 여성에게 길을 물었더니 한층 아래인 지하층까지 안내해 주고 갔다. 일본 사람들은 섬세하고 배려심이 넘친다. 여러 차례 길을 물었지만, 물을 때마다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 있어 여행자들이 여행하기 좋은 도시다. 저들은 태어날 때부터 웃는 얼굴로 태어나 친절만 배우며 자란 사람들 갔다. 


바실리 칸딘스키는 ‘귀와 눈을 열면 의미 없는 사건도 대단한 일로 바뀐다’고 했다. 매일매일 깨알 같은 많은 날 중 어느 날, 미술이란 감성을 안고 떠난 여행이다. 귀와 눈을 활짝 열고 두고두고 꺼내볼 나만의 여행을 만들고 싶다.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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