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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희 Feb 23. 2024

미술여행 첫날밤

도쿄의 야경을 탐하다

취향이 같다는 것


몇 년 전 친한 사람들이랑 함께 여행을 같이 간 적이 있었다. 하루 종일 백화점과 쇼핑센터를 돌며 명품을 사고 맛집을 탐색하며 식도락 여행을 했다. 그들은 즐거워하는데 도서관이나 미술관, 박물관을 가고 싶은 나는 조금은 지루하고 힘든 여행이었다. 여행은 하루 종일 같이 있어야 하고 많은 변수와 맞닥뜨리게 되다 보니 성격과 취향을 고려해 함께 할 사람을 선택하는 게 좋다. 그 후로 나는 친한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여러 사람이랑 여행 가는 게 불편해 주로 가족이랑 다니려고 한다. 다행히 A는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고 생각과 취향도 비슷해 여행 코드가 맞는 사람이다. 취미나 취향이 같은 사람들이랑 가는 여행은 하루종일 신이 난다. 미술관 이야기, 전시 이야기, 화가 이야기 종일 떠들어도 즐겁다.


인간이 만든 미술작품에는 그가 살아온 삶의 흔적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래서 미술관을 관람하는 것은 그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행이기도 하다. 그림이야 책이나 인터넷으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지만 작품을 직접 감상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작품 앞에 서면 캔버스나 물감이 주는 생생한 색감, 붓의 터치감, 그림의 크기에 매료된다.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순간 느꼈을 환희와 절망, 고통이 내게 전달되는 것 같다. 사실 이것도 내 방식대로 느끼고 해석하는 거겠지만 이조차도 즐겁다.

 


낯선 도시 풍경


여행 가방만 둔 채 도쿄 야경을 보러 숙소를 나왔다. 어슴푸레 날이 저물며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여행객에겐 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운치를 더할 뿐이라며 우산 하나 배낭에 메고 전철역으로 향했다. 


이케부쿠로역에서 내려 야경을 보기 위해 선샤인시티로 가는 길을 걷고 있다. 선샤인시티는 호텔, 문화회관, 수족관 및 전망대가 있는 복합쇼핑몰이다. 복잡한 거리와 높은 건물, 그리고 친절한 사람들이 만든 도쿄의 도시 풍경이 낯설다. 이상하게도 이 도시를 올 때마다 사이버 공간에 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높은 회색 빌딩 아래 개미처럼 작아 보이는 사람들, 담배꽁초 하나 발견할 수 없는 깨끗함,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질서 정연함 때문이었을까 사이보그 도시 같다는 생각이 지금도 든다. 이 생경한 도시 안에서 나도 여행객으로 참여해 도쿄풍경의 일부가 된다.


먼저 배고픔부터 달래기 위해 선샤인시티 안 식당가로 갔다. 오뎅바, 초밥집, 샤부샤부집, 덴푸라, 일본라멘집 식당가에 즐비한 일본 음식점을 보면서 선택 장애가 생겨 20여 분을 빌딩 안을 돌기만 했다. 왜 하필 일본에 와  첫 끼를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들어갔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아마 부은 다리로 인해 더 걷기 힘든 상태에서 적당히 타협하려는 시점에 눈에 들어온 식당이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가장 이뻐 보이는 해물 리조토와 크림 파스타를 먹고 나왔다.



은하계를 닮은 도쿄야경


선샤인 60 전망대는 선샤인시티 지하 1층에서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여기 까기 찾아가는 길이 미로처럼 복잡해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다 일본인의 도움을 받아 갔다. 선샤인 60 전망대는 최고층에 위치해 해발 251m로 도쿄의 야경을 360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일몰 시간과 야경 전망이 아름다운 곳이다. 전망대를 들어서자마자 도쿄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컴컴한 밤하늘에 수많은 별이 반짝거리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냥 멍하니 한동안 블랙홀처럼 도쿄 밤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은하계처럼 보이는 황홀한 야경은 자동차 불빛, 빌딩의 네온사인과 무심코 서있는 가로등 불빛, 누구 집 아파트 창에서 새어 나온 빛들의 합이다.  


전망대 창가에 젊은 연인들이 의자에 앉아 서로의 얼굴만 황홀하게 쳐다보며 농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들에게는 야경은 그저 그들의 사랑을 위한 배경쯤 되는지 안중에 없다. 중간중간 캠프장처럼 꾸며져 있는 곳에서는 아이와 아빠가 창밖을 본다. 아이가 크면 이때를 어떻게 추억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정원처럼 조성되어 있는 곳에서는 여러 명의 친구가 행복한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이 시간 모두 그들만의 방식으로 도쿄의 밤을 즐기고 있다.  


2년 전 쉴 새 없이 몰아치던 인생의 파도가 지나갔다. 그리고 인생의 어느 선상쯤에서 나는 이 야경을 보고 있는 걸까? 저 화려한 도시 안에는 오늘 하루도 치열하고 숨 가쁘게 달렸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여행자의 눈에는 밤의 도쿄와 낮의 도쿄 누가 나은지 비교할 필요가 없다. 밤은 밤대로 낮은 낮대로 빛나고 아름다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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