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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희 Feb 24. 2024

행복한 마티스전

 

 국립신미술관


전날 밤 야경을 보느라 피곤한 탓에 8시가 넘어서야 허겁지겁 일어나 아침 준비를 했다. 소박해 준비랄 것도 없어, 그냥 펼쳐 놓는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 하나에 간밤 편의점에서 사 온 삼각김밥과 샌드위치, 요구르트가 전부다. 라면과 고추장을 가지고 다니는 이 촌스러움 덕분에 외국에서 맞이하는 아침도 집처럼 친근하다. A랑 나는 몇 차례 여행을 한 경험이 있는데 아침은 늘 이런 식으로 간단하게 먹는다. 이렇게 먹어도 좋아하는 A가 편하고 좋다. 


한껏 부푼 마음으로 롯폰기에 위치한 국립 신미술관으로 나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숙소에서 전철역까지 5분밖에 안 걸리는데 길이 단정하고 깨끗하다. 집 밖으로 내놓은 낮은 화단이 옹기종기 놓여 있고 누군지 모르는 정치인의 사진이 들어간 포스터가 눈에 보일 뿐 한산하다. 머리 위로 이따금 기차 소리가 요란하게 지나간다. 숙소에서 전철역이 가까워 좋긴 한데 이 소리를 감내해야 한다. 오늘은 니시닛포리역에서 노기자카역으로 가는 전철을 탔다. 전철 안도 직장인들이 이미 출근했는지 더러 빈자리가 보인다. 


전철에서 내리자마자 마티스 전을 알리는 포스터가 보인다. 가는 길보다 붙어 있어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 같다. 구글 지도를 따라 조금 걷다 보니 국립 신미술관이 눈에 들어온다. 이 건물은 구로카와 기쇼가 설계한 건축물로 외관의 모습은 파도가 넘실대는 듯하다. 한없이 연한 연둣빛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가 미술관이라니 놀랍다. 푸른 하늘과 조금 서늘했던 바람의 감촉을 안고 나는 저 바다로 들어간다. 


이 건물은 2007년 개장해 소장품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미술관 안은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와 건물의 곡선이 조화를 이루며 거대한 작품이 된다. 건물 정면 앞에 거꾸로 세운 원뿔 모양의 구조물은 아이스크림인지 우주선인지 알 수 없어 흥미롭다.




마티스 자유형식


국립 신미술관에서는 2월 14일부터 5월 27일까지 '마티스 자유형식'이란 이름으로 마티스 전이 개최되고 있었다. 앙리 마티스(1869-1954)는 색채 마술사, 야수파의 창시자라 불리는 20세기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인데 이분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마음에 가슴이 울렁였다. 이번 전시에서 프랑스 니스에 있는 마티스 미술관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회화, 조각, 판화, 텍스타일 등 150여 점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컷 아웃작품인 "Blue Nude IV"와 대형 작품 "꽃과 과일"을 볼 수 있다.


전시장 안은 평일인데도 관람객이 꽤 많았다. 들어서자, 마티스의 야수파 그림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단순한 색감과 형체의 작품들이 강렬한 인상을 준다. 마티스는 거칠면서도 화려한 색감의 반 고흐와 세잔의 작품에서 크게 영감을 얻었다. 마티스와 친구들의 작품을 본 평론가가 야수 같다고 하면서부터 그들의 그림의 화풍을 야수파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색을 그대로 캔버스에 표현하지 않고 작가가 느끼는 감정을 색으로 표현한 그림들이다.


강렬한 색감이 대비가 되어 마티스의 작품은 보는 이에게 밝은 에너지를 주며 사람을 편안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보고 행복을 느낀다고 하는데 작품의 순수성 때문이지 않나 싶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가 UMAM과 니스시 홍보를 위해 제작한 포스터, 1949/ 마티스박물관


그의 사랑스러운 드로잉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간결한 선에서 주는 인상 깊은 이미지 때문인지 유난히 이쁘게 꾸민 거실이나, 카페, 공공기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드로잉 작품은 우리에게 친밀하고도 익숙하다.  


그가 암에 걸리고 휠체어를 타면서 탄생하게 된 '컷아웃' 작품들도 상당수 볼 수 있다. 종이를 오려 붙이며 새로운 화풍을 만든 마티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Blue Nude IV" 작품이다. 여성의 누드를 파란색으로 여백은 흰색 면으로만 표현했다. 상당히 단순화해 표현했는데도 역동적인 인체의 움직임과 아름다움까지 느껴진다. 파란색으로 심플하게 표현한 이 작품은 그가 오랜 기간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수집해 온 아프리카 조각상을 닮았다. 밑그림도 없이 종이를 잘라서 사람을 만든다니 아무나 할 수 있는 작업은 아니다. 휠체어에서 종이를 자르며 고뇌했을 노년의 화가는 그가 가진 예술성을 최대치로 끄집어내며 작품을 완성하며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았을 거라는 게 짐작이 간다. 

 

앙리 마티스, 뉘 블루 IV, 니스, 1952, 컷아웃, 종이에 붙이기, 캔버스에 장착, 103 x 74 cm, 장 마티스가 프랑스 정부에 기증, 니스 미술관, 1978, 오르세 


말년의 역작,  로사리오 성당의 테인드 글라스에 빛이 비치면 공간전체가 아름다운 예술작품이 되는 작품이다.  보고만 있어도 우물처럼 깊은 숙연함과 고요함,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행복을 그려나간 앙리 마티스, 자연 속의 대상을 밝음과 순수함을 담아내려 했던 거장 마티스의 세상을 들여다본 전시는 행복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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