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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희 Feb 11. 2024

사랑은 믿을 수 있는 감정일까?

시간이란 인내의 긴 터널을 지나고 나서야 견고해지는 게 사랑이다.

        

사랑이란 불완전한 감정      


이 그림은 동물화로 유명한 브리튼 리비에르의 아들인 휴 골드윈 리비에르(1860-1956)의 에덴동산이란 제목의 그림이다. 문학 내용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 그런지 그림이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것 같다.         

휴 골드윈 리비에르 (1860-1956), 브리튼 리비에르 아들

왕립 초상화 화가 협회 (Royal Society of Portrait Painters)의 회원, 문학적 주제(전설, 역사)     


회색의 도시 배경이 영국 런던의 비 오는 날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의 경계, 잎 하나 없는 앙상한 나뭇가지, 습기가 한 것 느껴진다. 그림을 보면서 흐린 날씨 탓에 으스스한 느낌이 들어서일까 이별이란 단어가 스치고 지나갔다.      

도시는 온통 회색빛이지만 그림 속 여인의 하얀 얼굴에는 홍조가 가득하다.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은 사랑하는 남자만 가득 담아 두었을 뿐 다른 것은 없어 보인다.      

화가는 여성의 얼굴을 정면으로 그려 그녀가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표현했지만, 남자의 몸은 측면으로 틀어져 있다. 남자의 마음은 그림을 보는 관람자의 몫이다. 사랑의 열기가 가득한 여인에 비해 남자의 마음은 알 길이 없어 궁금증만 자아낸다.     

불같은 사랑이 시작되면 내 안에는 그 사람만 존재한다. 화가는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캔버스에 담아내기 위해 회색 도시, 검은색 모자와 옷, 신발로 연출한 것 같다. 남자 손에 든 긴 검은 우산에 빗방울도 보는 이에게 심리적으로 영향을 준다. 


사랑을 많이 하는 쪽은 늘 불안하다. 화사한 여인의 얼굴에서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여자의 검은손이 보인다. 검고 칙칙한 두 손으로 남자의 손을 부여잡고 있다. 사랑이 한창 진행 중인데 여인의 검은손과 남자의 흰 손이 이들에게 다가올 불안한 미래 같아 보이는 건 괜한 걱정인가?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다면     


화가가 남긴 수수께끼를 풀기라도 하듯 그림을 멀리서 관망하고, 가까이 관찰하고, 내밀히 조사하듯 여러 차례 들여다보며 이런저런 단서를 찾아보려 애써봤다.      

이 그림은 모델을 연인으로 설정해 놓고 그렸는데 그림이 완성될 즈음 실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화가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현실에서 그들은 사랑하는 관계로 발전했다고 한다. 책이나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순전 독자를 위한 작가의 배려라더니 마음 흐뭇해진다.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이 담긴 그림을 보며 오랜만에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싹트면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인다. 호기심 가득한 고양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알고 싶어 하고 떨어져 있는 잠시도 보고 싶어 지며 소유하고 싶은 갈망이 가득해진다.      

나이가 들이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랑을 믿는다는 말처럼 위험한 말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날 열병처럼 찾아온 사랑, 시시때때로 폭발하는 열정, 사랑을 위해 뭐든 할 것 같았던 그 시절의 사랑은 아름다운 만큼 무모하고 위태롭다.      

남녀 간의 사랑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고자 하는 환상에서 시작되지만, 도파민 분비가 멈추는 순간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사랑이 변했다고 하지만 환상이 사라졌을 뿐이다. 아직 환상에 사로잡힌 상대는 끊임없이 사랑받고 있는지를 상대의 표정이나 말투로 확인하려 든다.      


    

인내의 긴 터널을 지나온 사랑     


가끔 저녁 산책을 하면 공원에서 마주치는 노부부가 있다. 노을빛이 더할 나위 없이 황홀한 저녁 무렵 몸이 불편한 할머니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들은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을 한 걸음 보조를 맞추며 공원을 걷는다. 사랑은 저들처럼 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알고 보니 젊어서 할아버지가 술과 도박을 좋아해 할머니가 고생하다 병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지인에게 들었다. 실망과 슬픔, 배신의 난폭한 감정으로 할머니가 망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들의 사랑이 더 이상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한때의 소나기처럼 수많은 갈등과 이별의 순간을 넘기고 이제는 좀 편안해진 걸까?     

현실에서 낭만적이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찾기는 어렵다. 설사 사랑의 결실로 결혼을 한다 해도 지속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뒤집어 놓은 양말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엉켜 붙은 머리를 하고 밥상에서 트림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게 현실판 결혼이다. 짜증은 쌓이고, 서로의 차이는 더 분명해진다. 상대방에 대해 실망하는 일이 생기고 잘못된 사랑에 대해 후회할 때도 있다.      

사랑을 지속하는 데에는 할머니의 인고처럼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시간이란 인내의 긴 터널을 지나고 나서야 견고해지는 게 사랑이다사랑은 하는 일도 이별을 선택하는 일도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사랑과 이별도 선택한 사람의 몫이다.      

그림 한 장을 보며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사랑과 이별에 대한 달콤 쌉쌀한 기억을 더듬어 보는 사이 밤이 짙어지고 있다.           


#살롱드까뮤 #미술에세이 #그림에세이 #공저 #스낵미술 휴 골드윈 리비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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