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그리고- 2장(2)>

그리고 시즌 中 '봄'

by 이작가야

[2장-(2)]


조명이 바뀌면 아라는 벤치에 있고, 승현은 책을 읽으며 돌아다니고 있다.


승현 왕자는 백치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찾아 다녔어. 결국 백치가 살고 있는 마을을 찾아냈지!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왕자에게 백치를 만나면 안 된다고 계속 말렸어.

백치 근처에 간 것들은 사람이건 사물이건 모두 사라져 버린다고, 그럼 죽 는다고 말이야.

백치가 아니라 마녀였던 거지.

아라 백치에 이어서 이번엔 마녀야? 정말 나 생각하고 쓴 거 맞아?

승현 맞아, 아라는 백치인데 어쩔 때는 마녀거든. 특히 요리할 때.

아라 요리 뭐?

승현 요리할 때 마치 실험 하는 거 같아. 조금이라도 잘 못 건들면 음식이 터질 것 같거 든.

(눈치보고) 이야기마저 들어봐. 그래서 왕자는 몰래 백치마녀의 집으로 갔어.

(사이) 겁이 조금 나기도 했고.

아라 아주 대단한 왕자 나셨어.

승현 왕자는 창문으로 집 안을 몰래 들여다봤어.

때마침 백치마녀가 방으로 들어오더니 거울을 본 거야. 그리고 왕자는 거울에 비친 백치마녀의

모습을 보고 말았어.

아라 왜? 이제 왕자는 마녀를 보고 돌이라도 됐겠네?

승현 (예민하게) 아니야, 그건 원래 있는 이야기잖아. 다시 들어봐. 왕자가 거울에 비친

마녀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러니까 집이 구조가 이렇게 되어 있고, 창문이 여 기 달려 있으면, 거울이 방 안에…….

음, 여기, 그래 여기 위치해 있고 마녀 가 여기…….

아라 백치마녀의 집은 안 궁금하니까 빨리 내용이나 말 해.

승현 알겠어. 자세히 말해 주려고 했지. 그러니까 왕자는 반한거야.

아라 반해?

승현 응, 마녀가 예상외로 너무 아름다웠던 거지.

아라 (기분이 좋아지며) 역시 나를 생각하며 쓴 게…….

승현 (말을 끊으며) 그래서 왕자는 물불 안 가리고 뛰어 들어갔어. 마녀는 깜짝 놀랐고, 눈을 감은

채로 구석으로 숨었지. 그 모습을 본 왕자는 정신이 든 거야. 아, 내가 잠시 미쳤었구나.

한 나라의 왕자가 이러면 안 되지. (아라에게) 제가 잠시 폐를 끼쳤습니다.

창밖으로 그대의 얼굴을 본 순간 첫 눈에 반하고 말았습니다. 부디 제 부인이 되어 주십시오.

아라 (승현을 따라하며) 하지만 전 마녀라고 불리 우는 몸. 어찌 당신을 따라갈 수 있겠 습니까? 흑흑.

승현 맞아, 그거야. 왕자의 청에도 마녀는 따라갈 수가 없었어.

하지만 왕자의 끈질긴 설 득 끝에 마녀는 마음을 돌렸지. 그리고 마녀는…… 음…….

아라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승현 (앉으며) 왕자와 마녀는 왕궁으로 들어가서 행복하게 잘 살았어. 끝.

아라 끝?

승현 끝.

아라 재미없어.

승현 재미없지. 큰 사건이 없으니까. 그래도 왕자와 백치는 행복하게 잘 살잖아.

아라 응?

승현 남들은 허무하다고 할 지 모르지. 하지만 남들이 재미있다고 하면 왕자와 백치는 불행해지잖아.

난 우리가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 재미없고, 허무하더라도 우리는 행복하게.

마치 왕자와 백치처 럼. 내가 너무 이입했나?

아라 응, 심하게. (사이) 여전히 멋있어 우리 오빠.


아라, 승현에게 다가가 안기려 하면 나무에 걸린 등이 깜빡거린다.

승현, 등을 보더니 나무에서 메모지 한 장을 떼어내고 퇴장.

승현이 사라진 곳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아라.

조명 바뀌면 기태와 이든 등장.

둘은 울고 있는 아라를 발견한다.


기태 또 있네?

이든 아는 사람이야?

기태 응, 아침에 봤어. (작게) 완전 또라이야. 약간 미친 것 같기도 하고.

이든 정말? 안 그렇게 생겼는데.

아라 들리거든요? 이리와요. 전 내려갈 거예요.

기태 아, 네. 그러시구나. 든아, 여기 앉자.

이든 그래. (아라에게)안녕히 가세요. (나무를 보고)신기하다. 뭐가 이렇게 많이 붙어있어?


아라, 갑자기 뛰어 들어온다.


아라 (큰 소리로) 안 돼!


아라, 나무 앞에서 이든을 막아선다.

한치의 움직임도 없다.


이든 (당황하며) 네? 뭐가……?

기태 아, 그 메모지 만지면 안 돼. 저 분 추억이 담겨있고 뭐 그런 거야.

이든 네……. 몰랐어요.

기태 헤어진 사람 기다려요? 오늘 바람 맞으신 것 같은데. 그렇게 궁상떨어 봤자 아무 소용 없다니까?

나 봐요. 그 쪽처럼 궁상맞지 않고 얼마나…….


아라, 눈물을 훔친다.


기태 (아라를 보고)울어요? 아니 왜 계속 뜬금없이 우는 건데? (이든에게) 내가 방금 뭐 실수 했어?

이든 궁상맞다 그랬잖아.

기태 아, 미안해요. 그렇다고 울 거 까진 없잖아.

아라 당신 때문 아니에요. 걱정 마요.

기태 (사이) 거기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여기 와서 같이 한 잔해요. 맥주 남는데.

이든 저 여자도 같이?

기태 왜? 둘보다 셋이 낫지.

이든 그래, 그게 낫지, 훨씬 낫지!

기태 뭐야. (아라에게) 여기 와 앉아요.

아라 아니에요. 가볼게요. 메모지 건들지 마요.

이든 알겠어요. 얼른 가요, 가. (기태에게) 그런데 메모지에 뭐가 쓰여 있는 건데?

기태 나도 몰라. 왕자가 백치마녀인지 뭔지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 그런 내용 인가봐.

좋겠다. 왕자와 백치는 행복하게 살겠지. 난 이별의 아픔을…….

아라 (화내며) 그 쪽이 어떻게 알아요? 왕자와 백치마녀가 행복할 지 어떻게 아는데요?

기태 네? 아니 뭐, 대충 동화 같으니까. 그냥 난 내 신세 한탄 한 건데…….

아라 뭐 알지도 못하면서 행복이니 뭐니 말하지 마요. 아침부터 정말…….

당신 때문에 오늘 하루 다 망친 건 알아요?


아라, 벤치 끝에 앉는다.

기태에게 손을 내민다.

이든, 기태와 아라 사이에서 눈치를 보고 있다.


기태 뭐요?

아라 맥주 한 캔 달라고요.


기태, 아라에게 맥주는 건넨다.


기태 (속삭이며) 맞지 또라이?

이든 상또라이네.


아라, 맥주 캔을 따서 원 샷 한다.

이든, 맥주 캔을 따서 원 샷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기태(이든에게)천천히 마셔. (아라에게)아라 씨, 건배 한 번 하시죠?


아라, 말없이 기태와 건배를 하면 이든이도 따라한다.


기태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소개나 제대로 합시다. 전 권기태라고 해요.

이든 전 이든이에요.

아라 …….

이든 이, 든. 성이 이, 이름이 든. 이든.

아라 조아라에요.

기태 조아라 씨.

아라 네. (사이)아이 조아라, 매우 조아라, 하염없이 조아라.


침묵.


아라 조아라-! 할 때 그 조아라.

이든 이 언니 진짜 재미없다.

아라 제가 언니에요?

이든 언니 아니에요?

아라 나이가?

이든 스물여덟인데 빠른 이라 스물아홉이랑 친구에요. 기태가 스물아홉. 저는 스물여덟.

아라 언니 맞네.

기태 아라 씨, 나 아침부터 궁금했던 건데 저 메모지가 뭐 길래 그렇게 애지중지 하는 거예요?

아라 …….

기태 아니에요, 말하기 힘들면 하지 않아도…….

아라 기억? 그런데 지울 수 없는 뭐 그런?

이든 어머, 낭만적이다. 무슨 기억인데요?

아라 저기 붙어 있는 메모지 하나하나가 모이면 그 사람이 되거든요.

그래서 하나라도 떨어지면 안 돼요. 저는 잊으면 안 되거든요.


침묵.


기태 왜 잊으면 안돼요? 그 사람이랑 약혼이라도 했어요? 아니면 결혼? (사이) 이혼?


기태, 이든 웃는다.


아라 (웃으며) 약혼도 결혼도 아니었어요.

기태 잊어야지 그럼. 새로운 사람 만나야지.

이든 이 언니 조금 고지식한 스타일이네. 빨리빨리 다른 남자 만나고 그래야죠.

아라 이든 씨는 빨리 잊혀 지나 봐요.

이든 아니, 난…… 남자를 만나 본 적이 없으니까…….

기태 얼마나 지났어요? 헤어 진지?

아라 5년?

기태 5년? 큰일 났네, 큰일 났어. 그런데 아직도 이러고 있어?

아라 제가 잘못했거든요. 그래서 그 사람이 떠난 거라서.

기태 살인, 절도, 폭행이라도 했어요? 이렇게 속죄하고 있게?

아라 네. 맞아요.

기태 네?

아라 살인이요.

이든 (기태에게) 이 언니가 그 남자 묻은 거 아니야?

기태 뭔 소리야.

아라 (웃으며)그런 건 아니에요. 내가 참 별소릴 다한다.

(맥주를 마시다가) 기태 씨, 메모 지 무슨 내용인지 궁금하다고 했죠?

기태 네, 뭐.

아라 어느 한 왕국에 왕자가 살았어요. 그리고 그 왕자가 결혼할 때가 돼서 신붓감을 찾 기 시작했죠.

그런데 이 바보 같은 왕자가 수많은 신붓감을 놔두고 백치를 찾아 결 혼 하겠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원. 그래서 왕자는 수소문 끝에 백치를 찾았어요.


기태, 이든 아라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음악이 흐른다.

승현, 연재가 나와 동화의 주인공이 되어 무언극을 진행한다.


기태 오, 찾았어요?

이든 (관심 없는 척) 그래서요?

아라 백치가 살고 있는 마을로 왕자가 들어서니까, 글쎄 이 백치가 마녀라고들 이야기하는 거예요.

근처에 가면 다들 사라진다고, 그건 죽어 없어지는 거라고.

마을 사 람들이 왕자를 말리기 시작한 거죠.

이든 왕자는 왜 그런 여자를 만나러 갔대?

기태 이유가 있겠지. 계속 들어봐.

아라 왕자는 겁이 났지만 그래도 어떡하겠어요? 한번 뱉은 말은 지켜야지.

왕자는 창문 을 통해 몰래 마녀의 집을 훔쳐봤어요. 거울에 비친 마녀의 얼굴을 봤는데 글쎄….

이든 어떤데? 뭐, 왜? 왕자가 돌이 되고 만 거야?

아라 아니, 마녀가 너무 예쁜 거야. 왕자는 물불 가리지 않고 백치마녀의 집으로 쳐들어 갔어요!

기태 예쁘면 쳐들어가야지. 왕자가 남자네!

이든 박력 넘쳐!

아라 백치이자 마녀인 여자는 눈을 감고 구석에 숨어있는데 왕자가 고백을 한 거야.

미안하다고, 그런데 너무 아름다워서 첫 눈에 반했다고. 나와 함께 궁에 갈 생각이 없냐고!

이든 가야지! 뭐하고 있어, 따라 가야지 왕자가 왔는데!

아라 마녀는 싫다고, 싫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왕자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죠.

결국 둘 은 궁으로 들어갔어요.

기태 궁에서 마녀가 무슨 일을 꾸미겠네!

이든 아니야, 왕과 왕비가 마녀를 내 쫓을 거 같은데! 그 다음 내용이 뭐에요, 언니?

아라 (사이) 둘은 왕궁에서 행복하게 살았어요.

이든 응?

기태 네?

이든 뭐야, 장난치지 말고.

아라 정말 끝인데. 둘은 행복하게 잘 살았어요.


음악이 사라진다.


이든 별 거지같은.

기태 허무하네.

이든 내가 이런 이야기 듣자고 오밤중에 이런 공터를 와선.

아라 조금 허무하긴 하죠. 그래도 나름 작가가 지은 건데.

기태 아, (나무를 가리키며) 잊어버리면 안 될 그 분?

아라 네. 출판은 안됐지만요.

이든 정말 다행이에요. 이거 출판 됐으면 망했어요.

아라 (웃으며) 그런가? 전 이제 가봐야겠네요.

이든 네, 이제 정말 가시는 거죠?

아라 내일 새벽에 다시 와야 하거든요.

기태 약속?

아라 아, 네. 약속.

기태 들어가요, 얘기 잘 들었어요. 그런데, 뭔가 찝찝하네요. 허무하지만 행복한 결말인 데…….

백치 마녀는 왕궁에서 잘 살았어요?

아라 뭐, 자신을 받아준 왕자한테 미안한 마음에 더욱 열심히 살았겠죠.

기태 열심히 산 게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아라, 기태를 빤히 바라본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머뭇거리다가 인사한다.


아라 즐거웠어요.

기태 네, 저도요.

아라 (나무를 보며) 그 백치 마녀가 행복하지만은 않았겠네요. 행복해지고 싶었을 텐데.

기태 네?

이든 잘 가요, 언니.


아라 퇴장.


이든 쌀쌀한데, 이제 그만 내려갈까?

기태 그럴까? 벌써 어두워졌네.

이든 우리 집으로 가는 거지?

기태 응? 아, 맞다.

이든 뭐가?

기태 생각났다. 여기 아래가 연재랑 처음 만난 곳이다.

이든 또 연재 언니 얘기야?

기태 아니, 그냥 생각나서. 왜 여기로 오고 싶나 했더니, 바로 밑에 있는 공원에서 처음 만났거든.

정말 떨렸었는데, 난생 처음 소개팅이라. 이 곳을, 그 때를, 까맣게 잊고 있었어.

이든 알았으니까, 얼른 가자. 나 추워.

기태 잠시만 있다가. 잠시만.


연재 등장.

연재, 기태와 이든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놀라 소리를 낸다.

기태, 소리에 놀라 연재를 본다.


연재 미안, 여기 있는 줄 몰랐어.

이든 어, 언니, 안녕하세요.

연재 어, 어. 나 갈게.

기태 잠깐만 연재야. 아니, 이제 연재 누나인가?

연재 왜?

기태 아니, 왜 그냥 가? 같이 한 잔 할까? 하나 남았는데.

연재 뭐?

이든 그래요 언니, 이리와요.

기태 얘기나 할 겸. 뭐 어때 우리 이제 다 친구사이잖아.


침묵.


연재 그래. (벤치에 앉으며) 좋네, 여기.

기태 좋지. 연재야 여기 바로 아래가…….

연재 건배! 든이도 오랜만이다. 이렇게 봐서 좋다.

이든 그러게요. 든든하게 패버리신다 그래서.

연재 아직 유효하긴 한데.


연재, 맥주를 마신다.

셋, 서로 말없이 앉아 있다.

가끔가다 과자 봉지 소리나 맥주 마시는 소리만 들린다.

이든, 기태와 연재 사이에서 눈치 보다가 일어난다.


이든 나 이제 가봐야겠다.

기태 어디 가? 여기 있어.

연재 그래, 여기 있어. 더 얘기하다가 가.

이든 내가 있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연재 괜찮은데 왜?

기태 응, 우리 아무렇지도 않은데?


이든, 자리에 앉는다.

다시 말이 없다.

이든, 다시 일어난다.


이든 내가 약속이 있었는데…….

기태 (소리치며) 앉아!

연재 (소리치며) 앉아!


이든, 앉는다.


기태 왜 든이한테 소리 질러?

연재 뭐가? 내가 언제 소리 질렀는데?

기태 방금 질렀잖아. 아, 아직도 얘한테 질투 하는 거야?

연재 질투? 내가 왜 질투를 해? 그리고, 너나 얘 말마따나 내가 나이가 많은데 소리 좀 치면 어때?

기태 좋겠다, 나이 많아서.

연재 그래, 나이 많은 여자랑 사귀니까 그렇게 쪽팔리던?

기태 내가 언제 쪽팔려 했는데?

연재 쪽팔리니까 집에만 쳐 박혀 있던 거 아냐?

기태 그래서 나가면? 돈 없다고 징징거릴 거 아냐?

연재 너 날 그런 여자로 봤어?

기태 너야말로 날 그런 남자로 봤냐? (사이)됐고, 옛날 얘기는 그만하자.

연재 그래, 그만하자. 너한테 질릴 대로 질렸다.

기태 뭐? 질려?

연재 그래, 질렸다고. 너한텐 이제 아무 느낌 안 들어.

기태 그래, 나도 너한테 질렸다. 남 생각은 티끌만치도 안 하는 너한테 뭘 바라겠냐.

연재 내가 무슨 생각을 안 했는데? 나 너 배려 많이 했어.

기태 배려 한다는 애가 나 일자리 구하고 있을 때 네 빽 으로, 낙하산으로 들어가라고 말을 해?

연재 그게 뭐가 어때서? 취업난인데, 감사 합니다- 하고 들어와도 모자를 판에?

기태 쪽팔리게 어떻게 그래?

연재 일자리 못 구해서 전전긍긍 하는 게 더 쪽팔린 거야. 아니다, 넌 안 구한거지?

집 에서 빈둥거리기 밖에 더 해? 그것도 내 집에서.

기태 아니야.

연재 뭐가 아니야?

기태 일 안 구한 거 아니라고.

연재 집 청소도 안 하는 애가 무슨.

기태 했어. 빨래부터 방청소, 화장실 청소 내가 다 했다고!

연재 근데 변기에 다 튀어있어?

기태 나 너 생각해서 앉아서 쌌어, 알아? 그리고 알바도 했어. 해서 돈도 모았다고.

네가 싫어하는 김가네 안 가려고, 좋은 식당 가려고 조금 씩 모았었다고!

연재 뭐?

기태 내가, 깜빡하고 안 들고 나왔는데 다시 돈 가지러 너 네 집 가기 그래서…….


침묵.


기태 나도 노력 많이 했다고, 요즘 서로 조금 그런 것 같아서…… 겁나기도 하고 그래서…….

(소리치며) 그런데 나도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는 걸 어떡해?

(작게) 솔직히, 솔직히 네가 나보다 훨씬 잘났고…….

아니 그냥, 그냥 나한테 네가 과분한데…….

연재…….

기태 (이든에게) 나 지금 뭐라는 거야?

이든 나한테 묻지 마.

기태 (연재에게) 그러니까, 아직 나는…….

연재 기태야.


기태, 연재 서로 본다.

침묵.


기태 5년째 되는 날 잊은 건 정말 미안했어.

연재 아니야. 난, 난 그냥…… 나도, 미안해.


침묵.

이든, 결국 못 참고 일어난다.


이든 나, 정말 갈게.

기태 든아, 우린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연재 맞아, 괜찮은데.

이든 내가 안 괜찮아. 둘 다 정말 이기적이다. 나 이제 보내줘. 보내 주라 제발.


기태, 연재 같이 고개를 끄덕이면

이든, 울먹이며 퇴장.


연재 그만하자고 말 할 때는 몰랐는데, 그 때는 정말 아무것도 너한테 안 느껴졌는데.

기태 연재야.

연재 아니더라. 너 없어지고 나니까, 집이 너무 텅 비어있더라.

기태 여기 바로 밑에 공원.

연재 우리 처음 만났던 곳? 정말 많이 떨었는데.

기태 넌 소개팅 많이 해봤을 거 아냐? 나이가 있는데.

연재 나이 있다고 많이 하는 건 아냐.

기태 나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여기가 그 공원이라는 거.

연재 나도 잊고 있었어. 걷다보니 여기까지 왔는데 위에서 어떤 여자가 울면서 내려오 는 거야.

기태 아, 그 또라이.

연재 또라이?

기태 아니야.

연재 그래서 네가 처음 만났던 날, 나한테 했던 말이 떠올라서 올라와 봤더니 여기 네가 있네. 신기하게.

기태 내가 뭐라 그랬지?

연재 여기로 올라갈래요?

기태 여길?

연재 응, 나 힐 신고 있었는데. 산길을 오르자고?

기태 내가 정신없어서 그랬어. 너무 떨렸거든. 네가 너무 예뻐서.

연재 (사이) 뭐야-!

기태 뭐가-!

연재 너랑 있으면 이렇게 좋은데…… 왜 그렇게 지루했을까 그동안.

기태 글쎄, 사실 나도 그랬으니까.


기태, 연재에게 다가간다.

연재, 기태를 본다. 서로 머리가 맞대어 지곤 웃는다.

기태와 연재 키스한다.


연재 춥다. 내려가야지.

기태 응, 그래야지.

연재 우리 같이 내려갈까?

기태 (사이) 같이 내려가자.

연재 좋아. 그런데 우리, 또 이런 상황이 오면…… 지금 그냥, 그냥 그런 거면…….

기태 그런 생각이 들 때 따로 내려가면 돼. 지금은, 지금은 같이 내려가는 거고.


기태와 연재, 일어서서 다시 한 번 키스한다.

멀리서 이든이 등장하여 둘의 키스를 훔쳐본다.

기태와 연재, 팔짱 낀 채로 퇴장.


이든 등장.

약간 취해있다. 벤치로 온다.


이든 (멍하니) 거지 같은 세상.


나무에 걸린 등등 깜빡 거린다.


이든 뭐야, 이거? 불이 들어오는 거였네?


승현, 등장.

메모지를 떼는 승현.


이든 뭐야, 그거 떼면 안 되는데. 어떤 또라이가 그거 지키고 있어요.

승현 …….

이든 저기요, 그거 떼시면 안 된다고요. (사이) 그런데 언제 올라와 있었어요?

승현 (이든을 보고) 이거 내 거예요.

이든 네? 아, 네. (사이 )아까 그 또라이 남자 친구 분?

승현 네?

이든 아니에요. (혼잣말로) 못 잊었네. 혼자 와서 저거 떼고 있는 거 보면.


승현, 메모지를 몇 장 더 떼고 벤치에 앉는다.

이든, 승현 옆에 앉아 승현을 본다.


이든 신비로우신데요?

승현 아, 네.

이든 아까 보니까 아라 하트 승현이라고 쓰여 있던데, 승현 씨 맞죠?

승현 네.

이든 (사이) 네.


침묵.


승현 어두운데 안 내려가세요?

이든 가야죠. 그런데 잠시 혼자 있고 싶어서요. 아, 뭐 승현 씨는 괜찮아요. 여기 있어도 되요.

승현 네.

이든 제가 오늘 차였거든요. (사이) 그래, 차인 게 아니라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한 건 데…….

그냥 차였다고 생각할래요. 차였다는 건 좋아한다 말이라도 했다는 거니까.

난 근데 좋아한다 그 말을 못하겠어요. 오늘은 꼭 한 번 해보려고 했는데…….

저도 참 답답한 성격이에요. 그렇죠?

승현 뭐, 그럴 수도 있죠.

이든 답답하긴 해도, 전 이게 좋아요. 아직도 좋아하고 있거든요. 계속 기회를 노릴 거 에요.

오연재 그 년은 긴장 좀 해야 될 걸요? 저기요, 나 어때요? 나 괜찮지 않아 요?

승현 그럼요. 충분히 예뻐요.

이든 어머, 나한테 반하셨네. 승현 씨도 한 번 생각해 볼게요. 그런데 아라 언니랑은 왜 헤어졌대?

(얼굴 보며) 딱 보니 승현 씨가 걷어 찰 입장은 아닌 거 같은데.

승현 …….

이든 말 못할 사정이 있으시겠죠. 사람 일이 다 그래요- 승현 씨도 그런 거겠죠 뭐.

나도 승현 씨도 사람인데 그런 것 쯤 하나 가지고 있어야지.

안 그러면 재미없어서 어떻게 사나? 그렇죠?

승현 그렇죠. 그런데 이든 씨.

이든 네? (사이) 내 이름 어떻게 알았어요?

승현 (웃으며) 전 아닌데.

이든 뭐가 아니에요?

승현 이든 씨가 그랬잖아요, 사람이면 말 못할 사정 하나씩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이든 그런데요?

승현 전 아니라고요. 사람.


나무에 걸린 등이 깜빡거린다.


이든 깜짝이야! 갑자기 깜빡거리고 난리야!


승현, 퇴장.


이든 어머, 죄송해요.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질렀어요. 저 원래 이런 사람 아니거든요.

(사이) 뭐야, 어디 간 거야 이 새끼, 아니 이 사람. 뭐가 아니라고 했는데…….

(사이) 기억났다. 빨리 내려가야겠다. (사이) 살려주세요!


이든, 비명을 지르며 내려간다.

나무에 걸린 등이 깜빡 거리다가 사라지면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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