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시즌 中 '봄'
[3장]
기태와 연재, 서로 처음 만났던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이곳, 저곳을 다니다가 연재의 집으로 돌아온다.
핸드폰을 꺼내 게임을 하고 있는 기태와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연재.
연재, 기태 옆으로 와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기태 왜 그래?
연재 …….
기태 (연재에게서 빠져나가며) 뭐 하는 거야?
연재 생각했어. 아니 그냥 느껴봤어.
기태 뭘?
연재 너랑 붙어있어 봤다고.
기태와 연재, 서로를 바라본다.
잠시 후, 서로 웃는다.
기태 나 고향 내려가.
연재 짐은 다 쌌고?
기태 응.
연재 빼먹은 건 없고?
기태 없어.
연재 차 조심하고, 몸조심 하고, 사람 조심하고.
기태 알겠어.
연재 기태야, 고생 많았어.
기태 고생은 무슨. (사이 )우리 이제 따로 내려가는 거야?
연재 (웃으며) 응.
기태 (웃으며) 갈게.
연재 잘 가.
기태 (사이) 너도.
기태, 무대를 가로 질러 퇴장.
연재, 기태를 바라보다가 퇴장.
잠시 후, 나무에 걸려 있는 등이 깜빡거리면 승현이 등장한다.
승현, 책을 읽고 있을 때
아라, 등장.
승현 오늘은 장난 안 쳐?
아라 한번이라도 놀래야 할 맛이 나지.
승현 (사이) 아이쿠, 깜짝이야.
아라 하지 마.
승현 미안.
아라 메모지 많이 떼어갔네.
승현 응, 거의 다 떼어갔지.
아라 난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했잖아.
승현 그래도 떼야지. 그리고 네가 뗀 거잖아.
아라 오빠가 뗀 거지.
승현 그렇긴 하지. 그러니까 네가 뗀 거야.
아라 그래. 알겠어. 알아, 나도 알고 있어.
침묵.
승현이제 가야 돼.
아라응.
승현네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도 끝이 났고.
아라…….
승현내년에 보자, 아라야.
승현, 책을 놓고 천천히 나간다.
아라, 승현의 책을 본다.
아라 오빠, 오빠가 썼던 이야기. 마저 들려주라.
승현 응? (사이) 싫어했잖아.
아라 괜찮아 이젠.
승현 힘들 텐데.
아라 괜찮다니까. 아니다, 내가 말할게. (목을 풀며) 아아, 들어봐.
승현 …….
아라 백치 마녀는 왕자에게 조건을 걸었어. 자신과 사는 대신에 자신의 눈뜬 모습은 볼 수 없을 것이다! 엄포를 놓은 거야. 백치마녀의 소문은 사실이었어. 백치마녀의 눈에 들어온 모든 것은 사물이든
사람이든 그녀의 기억 속 공간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거야. 하지만 왕자는 승낙했지.
너무 푹 빠졌으니 따질 이유가 있겠어? 둘은 왕궁 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어.
물론 백치마녀는 눈을 뜨지 않았고.
승현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이웃 나라와 전쟁이 벌어지고 말았어. 왕자는 전쟁에 나가 게 되었지.
백치마녀는 왕자를 보내기 싫었어. 항상 옆에 있던 왕자가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터로 떠난다니까 너무 걱정스럽고 불안했던 거야. 그래서 백치 마녀는 몰 래 왕자의 뒤를 따라갔어.
멀리서나마 왕자의 목소리를 듣고, 왕자의 모습을 느끼 고 싶었거든. 백치마녀의 걱정과 달리
왕자는 용감했어. 전쟁터를 이리저리 누비고 다녔지.
아라 마침내 기나긴 전쟁이 끝나고 마지막 전투가 벌어지는 날, 왕자의 군대는 이웃 나라의 군대를
궁지로 몰아넣으며 멋지게 싸우고 있었어. 드디어 적들이 도망가기 시 작했고 왕자가 승리의
깃발을 높이 올린 그 순간, 왕자의 눈에 백치마녀의 모습이 보였어.
이 전쟁터에 내 부인이 왜 있지? 하고 시선을 뺏긴 찰나, 멀리서 날아온 화살이 왕자의 가슴에
박히고 말았어. 왕자는 말에서 떨어졌고, 얼마 못가 죽는 상 황이었지. 백치마녀는 달려 왔어.
자신 때문에 화살에 맞은 것이라며 미친 듯이 자 책했지.
(사이) 그렇지, 그것보다 싫었던 것은, 견딜 수 없던 것은 왕자가 자신 곁에서 사라진다는
두려움이었어. 백치마녀는 왕자를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왕자 없이는 살아갈 자신이 없었던 거야. 백치마녀는 눈을 뜨고…… 왕자를 자신의 눈에 담았어. 왕자는 사라졌고, 백치마녀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갇혔어.
화살에 박힌 모습 그대로.
백치마녀는 후회 했어. 왕자는 이제 영원히, 영원히 고통 속에 살며 울부짖어야 했 으니까.
(사이) 미안해. 내가 그 때 오빠를 몰래 따라가지만 않았어도, 내가 길 건너 오빠를 부르지만
않았어도, 난 그냥 오빠를 깜짝 놀래켜 주고 싶었던 건데…….
그냥, 그냥 오빠가 보고 싶었던 건데…….
승현 그때 나도 우리 아라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얼마나 반가웠는데.
아라 그런 일이 있고 나서도 이렇게 오빠를 붙잡고 있잖아. 죄책감이 아니라, 오빠 없이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그게 싫어서 이렇게 가둬놨어. 꼭 백치마녀처럼. 나 너무 이기적이다.
승현 백치마녀는 자신 안에 갇혀 있는 왕자를 풀어주기 위해 다른 마녀들을 찾아갔어. 그리고 물어봤지. 어떻게 하면 왕자를 꺼낼 수 있을까요? 그러자 다른 마녀가 말했어.
네가 가둔 것을 왜 나한테 물어보냐? 이렇게.
아라 (웃으며) 그게 뭐야.
승현 또 다른 마녀가 다시 말했어. 기억을 붙잡으려 하지 마. 그냥 지금의 널 보고 느끼 고 살아.
아라 기억을 붙잡지 않으면, 그러면 오빠는 사라지잖아. 내가 살아갈 수 있을까?
승현 응, 지금도 계속 살아가고 있잖아.
아라 하긴 지금 내 앞에 있는 오빠도 내 기억의 파편이니까. 마치 저 메모지들처럼.
승현 내년에는 이곳에 오지 말고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파편을 만들도록 해.
아라 알겠어. (사이) 오빠, 저기 메모지랑 사진 몇 장 안 남았는데 마저 떼가.
승현 (책을 벤치에 두며) 이건 아라가 가져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나무에 걸린 등이 깜빡인다.
승현, 퇴장한다.
아라 한 번만 안아주고 가지.
암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