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들린 춤
*이야기의 모든 내용은 허구도 진실도 아니다. 어느 누군가의 속삭임일 뿐이다.
어느 무용 학원의 이야기다.
서울 중심가에 위치한 모 무용 입시학원에는 특이한 규칙이 있다. 밤 10시 이후부터 새벽 2시까지는 연습실 사용이 불가한 것이다. 표면적 이유로는 안전 문제를 들었다. 그러나 새벽 2시 이후로 사용 가능한 것으로 보아, 비단 안전 문제만은 아닌 듯했다.
무용과 대학 입시가 한창 진행 중이던 가을 무렵, 입시생 정희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여름에 보았던 학원 모의고사에서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부도 썩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이러나저러나 실기에 목숨을 걸어야 할 판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학원은 밤 10시에 문을 닫았다. 한날한시가 급했던 정희는 몰래 학원으로 들어갔고 행여 들킬까 핸드폰 빛에 의지해 연습을 하였다. 며칠간 어둠 속에서 움직이다 보니 온몸에 멍이 들었다. 스트레스 때문에 목이 쉬어 버리고 머리카락까지 빠졌다. 그런 노력 때문이었을까, 정희의 실력은 차츰 좋아졌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감이 벅차오를 정도였다. 얼마 후, 학원에선 정시 입시를 위한 막바지 모의고사를 실시하였다.
정희는 모의 고사장에 들어가 그동안 갈고닦았던 실력을 뽐냈다. 평소 되지 않던 동작마저 해내는 등, 전과 다른 자신의 모습에 놀랄 지경이었다. 마무리를 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심사위원들에게 인사를 하려는 순간, 싸늘하게 굳어있는 심사위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뭐가 잘못됐나?’
찝찝한 마음으로 고사장을 나온 정희는 숨죽여 결과를 기다렸다. 이내 결과가 발표되었고 정희는 경악하며 주저앉았다. 정희의 순위는 번외였다. 점수를 매길 수 없는 수준이란 것이다. 처참한 심정으로 눈물을 닦고 있을 때 정희의 담당 선생님이 다가왔다.
“정희야 얘기 좀 하자. 상담실로 와.”
정희는 터덜터덜 교무실로 들어섰다. 그런 그녀를 보고 다른 선생님들이 수군거렸다. 정희는 부끄러운 마음에 빠르게 상담실 안으로 들어섰다. 상담실엔 미리 도착해 있던 담당 선생님이 모의고사 녹화본을 보고 있었다.
“정희야…….”
“저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담당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희가 울음을 터뜨려 말했다. 선생님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정희를 달랬다.
“네가 열심히 했다는 걸 안다. 수업 때 보니 많이 늘었어.”
정희는 선생님의 위로에 간신히 울음을 삼켰다. 그러자 선생님이 조심스레 물었다.
“정희야 혹시 밤 10시 이후에 학원에 들어왔니?”
약간의 죄책감에 정희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선생님은 혀를 끌끌 차고는 모의고사 녹화본을 정희에게 보여주었다. 정희는 힐끔 녹화본을 보았다.
고사장에 반듯이 선 자신의 모습. 뒤이어 음악이 나오고 자신의 무용이 시작된다. 부드러운 춤사위가 매우 아름다웠다. 그렇게 잘 흘러가던 무용이 어느 순간 무너지기 시작했다. 점점 과격해지더니 허우적거림으로 바뀌었다. 손으로 몸과 다리를 퍽퍽 치는 것은 기본이고, 중간중간 비명에 가까운 괴성을 질렀다. 심지어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바닥에서 뒹굴기까지 했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보다 기괴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자신이 저런 동작을 했다니……. 말이 되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연습했을 때 왜 온몸에 멍이 들었는지, 목이 쉬고 머리카락이 빠졌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둠 때문도 스트레스 때문도 아니었다. 녹화본 속 기괴한 동작 때문이었다. 정희가 말문이 막힌 채로 멍하니 있자 선생님이 중얼대듯 말했다.
“규칙은 괜히 있는 게 아니야. 다신 밤 10시 이후에 연습하지 마. 아니 학원 근처에도 오지 마.”
선생님이 정희에게 당부하고 상담실을 나섰다. 다른 설명은 없었다.
정희는 끔찍했던 경험을 뒤로하고 다시 연습에 매진했다. 밤에는 학원이 아닌 따로 돈을 들여 다른 연습실을 잡고 연습을 진행했다. 차츰 실력이 되살아났고 이상한 동작 또한 나오지 않았다.
그해 겨울, 입시를 성공적으로 마친 정희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지하철 역사 내, 대형 모니터에서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화재 사고 현장이었다.
불에 휩싸인 건물들과 자동차들……. 가장 끔찍한 건 몸에 불이 붙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괴로움에 울부짖으며 이리저리 몸을 뒹굴고 있었다. 안타까운 장면을 보고 있자니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서둘러 발을 돌리려는데 문득 엉망으로 치렀던 학원 모의고사가 떠올랐다. 손으로 온몸을 치고 머리카락을 뜯으며 바닥에서 뒹굴던 자신의 모습이.
무용학원은 왜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연습을 금지했을까? 무용 학원 이전, 그 건물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정희의 눈동자엔 모니터 속 화재현장 피해자들의 모습이 깊이 스며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