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때로, 아주 조용한 손끝에서 시작된다
우리 집 헬퍼, 니젤은 아주 작은 체구의 여성이다.
키는 140cm 남짓, 몸무게는 40kg도 채 되지 않는다. 몸집은 작지만 마음은 결코 작지 않다.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 속에 단단하고도 묵직한 배려가 숨어 있다.
니젤은 주 1회의 휴일을 갖는다. 그러나 그 하루조차도 완전히 쉬는 법은 없다. 아침이면 조용히 일어나 침구를 정리하고, 세탁물 상태를 확인하고, 쓰레기통을 비워둔다.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것도, 인정받으려는 것도 아니다. 그는 그저 자신이 있는 공간을, 자신이 돌보는 가족을 위해 그렇게 움직인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보통 방으로 들어가 깊이 잠을 잔다. 아마도 그날 하루만큼은 자신의 체력을 회복하는 소중한 시간일 것이다. 그렇게 5시간 정도 푹 자고 나면, 다시 아무렇지 않다는 듯 조용히 일어나 집안일을 돕는다. 그의 리듬은 자연스럽고, 그 마음은 늘 일정하다.
오늘도 그랬다.
남편과 아이, 셋이 함께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니젤은 이미 깨어 있었는지 거실이며 부엌이며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불이 켜져 있고 공간이 정리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마치 퇴근 후 집에 돌아온 기분처럼, 고단한 하루의 끝에 위로가 되는 공간이었다.
“제가 샤워 시킬게요.”
니젤이 아이를 향해 손을 내밀며 자연스럽게 말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나도 발을 씻어야해서, 내가 씻길게요.”
그렇게 샤워를 마친 아이를 다시 니젤에게 건넸다.
나는 소파에 앉아 잠깐 숨을 돌렸다.
온종일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몸이 지쳐 있었기에, 그 짧은 틈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껴졌다. 문득 아이 쪽을 바라보았는데, 놀랍게도 젖은 머리가 단정하게 빗겨져 있었다.
깨끗이 감긴 머리카락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순간 가슴이 찌르르했다.
나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아이의 머리를 빗겨준 적이 없었다.
“어차피 짧고 숱도 별로 없는데 굳이?”
그런 생각을 했고, 솔직히 말하면 아예 빗질을 해줄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니젤은 항상 그렇게 해왔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아이를 씻기고 나올 때마다, 외출하기 전마다, 아니 단지 집 앞 산책을 나갈 때조차도 머리를 가지런히 빗겨주고 예쁘게 묶어주곤 했다. 작은 고무줄을 꺼내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나누고, 조심스레 묶고, “마미~ 예쁘게 했어요”라며 나에게 보여주곤 했다.
나는 그 손길이 단순한 일의 연장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그건 애정이고, 관심이고,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하지 못했던 것이기도 했다.
나는 엄마다.
하지만 엄마라는 이름만으로 모든 걸 다 잘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놓치고, 때론 잊고, 때론 지쳐서 애써 외면하기도 한다.
그런 내 곁에서, 내 아이를 나만큼이나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맙고도 벅차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참 다양하다.
누군가는 밥을 해주는 것으로,
누군가는 손을 잡아주는 것으로,
그리고 누군가는,
샤워를 마친 아이의 젖은 머리를 정성껏 빗겨주는 것으로 사랑을 전한다.
오늘 나는, 그 조용한 손끝이 전해주는 마음 덕분에
또 한 번, 사랑이라는 감정을 새롭게 배운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랑의 방식,
혹시 아주 작은 정성 하나는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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