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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의 코가 가리키는 곳

우리 부부가 해석하는 사랑의 언어

by 담연

이제 막 스무 달을 채운 우리 아이는 한국어뿐 아니라 영어, 중국어, 그리고 광둥어까지, 네 가지 언어가 오가는 환경에서 자라고 있다. 덕분에 말이 일찍 트이거나 유창하진 않다.
어쩔 땐 나를 "마미"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엔 "마마"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빠는 늘 또렷하게 "아빠"라고 부른다.


현재 아이가 구사할 수 있는 단어는 이 정도다.
"베베" (강아지 이름), "할머니", "노", "노 웨이"(절대 안 돼), "나이나이"(할머니의 중국어 표현), "고"(가!), "고 어웨이"(저리 가), "고 아웃"(산책), "하이", "안녕", "바이", "바바이".
말 외에도 몸짓으로 의사소통하는 일이 많다.


요즘 아이가 자주 보이는 행동 중 하나는, 검지손가락으로 자기 코를 천천히 가리키는 것이다.


한 달 전쯤부터 '눈, 코, 입, 머리, 겨드랑이, 무릎, 발가락' 등을 가리키는 놀이를 시작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코'를 가리키는 걸 좋아한다.


재미있는 건, 우리가 "Where is your nose?"라고 묻지 않아도 스스로 코를 가리키는 순간들이 있다는 점이다.


낯선 이가 아이에게 인사를 건넬 때, 엄마나 아빠가 아이를 부를 때, 혹은 가족이 갑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에도 아이는 자연스럽게 자기 코를 가리킨다.


그 모습을 남편은 유난히 흥미롭게 바라본다.
“이건 ‘나예요’라는 뜻 아닐까?”
“혹시 ‘보고 싶어요’라는 의미일 수도 있어.”
그는 어느 날부터 아이의 이 단순한 몸짓에 이런저런 해석을 덧붙이며 진지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냥 우연히 생긴 습관이겠거니 하고 웃어 넘기는데, 남편은 그걸 하나의 언어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또 하나, 우리 아이는 무언가 말하고 싶을 때 "미미!"라는 말로 거의 모든 감정을 표현한다.
나는 처음엔 "마미", 즉 엄마를 부르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잠에서 깼을 때, 나를 찾을 때, 혹은 짜증이 날 때도 "미미!"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은 이 "미미"를 또 다르게 해석한다. 아이가 밥을 거부할 때, 옷 입히는 걸 싫어할 때도 "미미!"라고 하기 때문에, 남편은 이 말이 "노!"의 의미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이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필요가 생길 때마다 이 말을 꺼낸다.
도움을 요청할 때, 기분이 언짢을 때, 무엇인가 불편할 때. "미미"는 아이가 세상과 연결되는 창구인 셈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한 단어로 모든 걸 해결하는, 그 나름의 언어.


오늘 아침, 남편을 회사에 데려다주는 길에 아이의 행동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은 아이의 몸짓 하나, 말투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진지하게 분석을 이어갔다.
그 모습이 우스우면서도 참 고마웠다.

"이걸 이렇게까지 해석할 일인가?" 싶은 웃음도 났지만, 동시에 아이의 작은 표현에 마음을 기울여주는 남편이 참 귀엽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아이는 곧 자신이 원하는 바를 훨씬 더 분명한 언어로 표현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오면, 지금처럼 오묘하고 애매한 몸짓과 말투에 귀 기울이던 시간들이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이 시절의 우리를 다시 떠올리게 되겠지.


조금만 더 천천히 자라주기를,
그래서 이 사랑스러운 장면들을 조금 더 오래, 충분히 느끼며 지나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해석은 다를 수 있어도, 사랑하는 마음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집에도 그런 순간들이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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