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대단지 아파트에서 시작한 작은 김밥 장사 이야기
“김밥 장사를 시작했다.”
이렇게 말하면 다들 “와, 대단하다!”라고 해주지만, 사실 나에겐 꽤 소심한 시작이었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꽤 큰 단지다. 1000세대가 넘고, 주민들이 함께 쓰는 사고팔고 왓츠앱 그룹도 있다. 나는 혼자서 시작하는 아주 소박한 1인 사업자였기에, 굳이 멀리 나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 단지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선은, 우리 아파트 주민들을 대상으로 김밥을 팔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첫 번째로 한 일은 인스타그램 계정 만들기.
브랜드 이름도, 로고도 하나하나 직접 만들었다. 김밥 메뉴를 정하고, 시세를 파악해 가격을 고민하고, 남편의 도움을 받아 김밥을 싸는 과정을 영상으로 담기도 했다. 어쩌면 이 모든 건 꽤 오랜 시간 내 안에 품어왔던 ‘작은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원래도 김밥을 자주 만들었다. 가족들이 좋아하기도 하고, 나도 김밥 말기엔 제법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장사도 어렵지 않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도 있었다. 실제로 해보면 뭐, 금방 익숙해질 줄 알았다.
드디어 첫 개시일이 다가왔다.
500명이 넘는 이웃들이 활동하는 우리 아파트의 ‘사고팔고’ 왓츠앱 그룹. 그곳에 인스타그램 링크와 함께 첫 홍보 글을 올리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올리려니 손이 떨렸다.
“이 그룹은 중고 거래 목적 아닌가...? 내 개인 장사 홍보를 해도 되나...?”
망설이다 결국 이 그룹의 방장에게 조심스럽게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방장은 다름 아닌, 우리 아이와 함께 뮤직클래스를 듣는 아기의 엄마였던 것! 알던 사람이었다니, 괜히 마음이 놓였다. 그녀는 흔쾌히 “물론이지, 응원할게!”라고 답해줬고, 진심 어린 그 한마디에 나는 큰 용기를 얻었다.
그렇게 올린 첫 홍보글.
놀랍게도 바로 주문이 들어왔다.
야채김밥 한 줄. 단 한 줄이었지만, 나는 마치 열 줄을 받은 듯 심장이 쿵쾅거렸다.
게다가 옆 동에 사는 한국인 엄마 친구가 3줄을 추가로 주문해줬다.
그렇게 내 첫 장사의 주문량은 총 4줄.
김밥 4줄이면 평소 같았으면 20분도 안 걸렸을 일이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내 손끝은 긴장으로 굳었고, 야채 하나 올릴 때마다 심호흡을 했다.
이건 그냥 김밥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팔리는 음식’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뜻밖의 변수가 생겼다.
얼마 전 친정엄마에게 부탁해 공수한 김밥용 김. 대량으로 보내주셨고, 처음 써보는 김이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이상했다. 구운 김이 아니라서인지, 너무 얇고 눅눅했다.
겉면부터 축 처진 김은 김밥을 ‘맛없어 보이게’ 만들었다.
속재료도 훌륭했고, 계란도 곱게 부쳤는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싶었다.
그래도 다행히 손님들의 반응은 괜찮았다.
“맛있게 잘 먹었다”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기쁠 줄이야.
그리고 이어 들어온 두 번째 주문.
이번에는 6줄이었다. 나에게는 거의 ‘단체 주문’처럼 느껴지는 양.
이번엔 만반의 준비를 다 했다.
두 시간 전부터 재료를 손질하고, 계란을 지지고, 단무지를 물기 없이 짜고, 당근은 정성스럽게 볶고. 드디어 6줄의 김밥을 다 말았다.
이제 썰기만 하면 끝이다! 했는데…
밑면이 다 터져 있었다.
6줄 중 5줄이.
“어떡하지…?”
당황스러움에 머리가 하얘졌다.
지금 당장 김을 새로 살 수는 없었고, 손님 픽업 시간은 30분 후.
다행히 3줄을 주문한 다른 손님이 “한 시간 뒤에 가도 될까요?”라고 문자를 보내왔다.
하늘이 도왔다고밖에 할 수 없는 타이밍.
나는 후다닥 김밥을 다시 말았고, 시간 내에 무사히 전달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남편이 조심스레 건네준 택배 상자.
안에는 새로 주문한 ‘김밥용 칼’이 들어 있었다.
“더 열심히 해보라는 응원이에요.”
나는 그 한마디에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이미 시작했잖아.
이쯤에서 포기할 순 없지.
요즘은 김밥 한 줄 두 줄을 팔고, 그 소소한 금액이 계좌에 입금될 때마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전달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한다.
“나 오늘도 수고했어.”
장사란 게, 단지 ‘파는 일’만은 아니었다.
김을 고르고, 재료를 다듬고, 마음을 다잡고, 내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음식을 전하는 일.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내가 감당하고 있다는 것.
아가야, 엄마가 요즘은 조금 바쁘지만
엄마가 얼마나 마음을 다해 이 김밥을 만드는지,
언젠간 너도 알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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