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세상이 더 날카롭다.
삼일째 고열인 아이, 조여오는 마음
아이가 삼일째 고열에 시달리고 있다.
나는 이제, 예민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지쳐 있다.
새벽마다 불침번을 서며, 미지근한 수건으로 아이 몸을 닦아준다.
갑자기 일어나 토를 쏟은 아이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해열제를 먹이기 위해 한 숟가락이라도 넘기게 하려고 애쓴다.
나는 하루 종일, 오롯이 아이에게 집중하며 버티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어떤 것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날이었다.
사람들이 일 년에 서너 번 겪는다는, 뭐든 꼬이는 날.
이른 아침, 잠깐이라도 숨을 고르고 싶어 요가 수업에 나가려 했지만
갑작스레 수업이 취소되었고,
헬퍼 언니는 오늘따라 손이 느렸으며
부탁했던 토스트는 까맣게 타 있었다.
내가 수차례 보여주고 설명했던 레시피인데,
오늘만큼은 유독 너무 맛이 없었다.
게다가 사소한 질문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나는 어젯밤 아이 간호로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잔뜩 예민해진 상태였는데 말이다.
아침에 절여달라고 했던 배추는
티스푼 하나 소금만 넣고 절여놨다며
다섯 시간이 지나서야 말해주는 통에 결국 다시 내가 했다.
아이 이유식 재료를 사러 나간 마트에선
정육점이며 계산대며 평소보다 줄이 길었다.
점심엔 간단히 떡볶이를 사 먹었는데,
직원이 떡 하나하나를 집게로 세며 담는 걸 보며
속으로 ‘세월이네월아’ 하고 중얼거렸다.
아기는 열이 나고, 나는 배고프고, 지치고,
쉬지 못한 채 하루를 통째로 버티고 있었다.
저녁엔 한 달 전 예약해둔 레이저 시술이 있었고,
혼자였다면 취소했겠지만 남편과 함께한 약속이라 결국 다녀왔다.
아이가 기운 없이 누워 있는 모습을 두고 나오는 길은 너무도 무거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차도 막혔다.
남편은 저녁까지 먹고 가자고 했다.
아이가 아프다는 걸 뻔히 아는 사람이 왜 그러는지,
오늘은 정말 모든 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금 내가 겪는 이 사소하고 짜증 나는 일들,
모두 내가 마음에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이가 아프니까, 나도 숨을 쉴 수가 없다.
심장이 조여들고, 마음은 바싹 마른 나뭇잎처럼 여유가 없다.
그저 간절히 바라게 된다.
내 아이가, 제발.
내 옆에서 건강하게, 아프지 않고, 웃으며 자라주기를.
부디 이 작고 여린 몸이, 오래도록 건강하게 내 곁에 있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