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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순간이 지나간 자리엔

그 아침,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았다

by 담연

지금 이 순간이 내 삶의 빛이라면

하루의 조각들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


중학생 시절, 나는 내 다리를 오래 바라본 날이 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법한 순간이었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피부가 매끄럽게 느껴졌다. 괜히 혼자 감탄하며 ‘이 감촉을 꼭 기억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주름지고 거칠어질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나는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사랑하는 법을 아주 어린 나이지만 배워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늘 아침, 나는 또 하나의 장면을 가슴 깊이 간직하게 되었다.


아이는 샤워실 바닥에 앉아 작은 물장난감들을 모아놓고 놀고 있었다. 물을 튀기며 까르르, 맑은 웃음소리가 터졌다. 그 웃음이 욕실 문 너머로 흘러나와 집 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옆에선 남편이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고, 우리 둘은 동시에 아이에게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말없이 함께 웃었다.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시간이 아닐까.’


무엇 하나 대단한 일이 일어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세 식구가 함께 있는 이 아침, 웃음이 흘러나오는 이 평범한 풍경이

이토록 벅찰 수 있다는 사실이—그 자체로 기적 같았다.


남편을 회사에 데려다주고, 저녁 무렵 다시 그를 픽업하러 가는 길에

나는 아침에 느꼈던 감정을 조심스레 꺼내어 말했다.


“오늘 아침에… 아이 웃는 거 보면서, 그냥… 너무 좋았어. 아, 이게 내 인생에서 제일 반짝이는 순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운전석에 앉은 남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 순간 참 좋았어. 아이가 웃고, 너랑 나랑 같이 보는 게… 그냥 좋더라.”


그 대답이 괜히 뭉클했다. 그 장면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우리 둘이 함께 바라본, 우리 셋의 풍경이었다.

우리는 그 길로 청소기를 맡기기 위해 서비스 센터에 들렀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싱가포르의 정돈된 거리, 안전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그 위로 펼쳐진 맑은 하늘과 부드러운 구름들.

그 모든 풍경이 오늘따라 유난히 고요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몸은 생리로 인해 무겁고 조금 예민해졌지만, 마음 한켠엔 오히려 설명할 수 없는 평온함이 깃들어 있었다.

‘지금이 내 삶의 전성기일지도 모르겠다.’

프라임. 그렇게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이런 순간들은 나에게 단지 ‘감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찬란함은 내 안에 작은 불을 붙이고, 그 불빛 덕분에 나는 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아기에게 더 웃어주고, 남편에게 더 다정해지고, 나의 삶을 조금 더 정성 들여 살아내고 싶어진다.


그 짧은 순간들이 결국 나를 더 사랑하게 만들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엄마, 더 좋은 아내, 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만든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몸이 점점 무거워지자, 나는 남편에게 투정처럼 털어놓았다.

“나 오늘 왜 이렇게 우울하지… 생리 때문인가 봐.”


그러자 남편이,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한마디 던졌다.

“아까는 인생의 찬란한 시기라며? 프라임이라며? 지금 누구랑 사는 거지…?”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 아침엔 눈부셨다가, 저녁엔 우울해지고, 그 와중에 또 웃기도 하는 하루.

이렇게 감정이 오르내리는 하루 속에, 나는 오늘을 또 하나의 기억으로 새긴다.


찬란한 순간은 특별한 날에만 찾아오는 게 아니라—

이렇게 평범한 하루 속에도, 문득 문득 빛을 머물다 간다.

그리고 나는 그 빛을 원동력 삼아, 내 사람들을 더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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