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퍼 언니가 맡은 일, 내가 맡은 일 — 전업맘으로서 다시 생각해본 역할
나는 싱가포르에 오기 전까지, 누군가를 고용해 함께 살게 될 줄은 몰랐다.
헬퍼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었다. ‘같이 사는 도우미’라니, 내 삶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이곳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며 살아가다 보니, 많은 가정이 헬퍼와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나도 자연스럽게 그 흐름 속에 들어오게 되었다.
헬퍼 언니와 함께 살게 되면서 처음엔 고마움보다 어색함이 컸다.
생활 공간을 함께 쓴다는 것, 그리고 매일을 같이 살아간다는 건 생각보다 복잡한 감정들을 동반한다.
시간이 지나며 익숙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나는 자주 고민한다.
‘이건 내가 해야 하나? 아니면 언니가 해주는 게 맞을까?’
‘이 정도는 알아서 해줬으면 좋겠는데…’
나도 모르게 점점 기대치가 높아지고,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실망도 하게 된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라는 건 혹시 만능 슈퍼맨 같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모든 걸 척척 알아서 해주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채주는 그런 존재를 원했던 건 아닌지.
하지만 우리 집 헬퍼 언니는 한 사람일 뿐이고, 우리는 몇백만 원씩 급여를 주는 고용주도 아니다.
내가 기대하는 만큼, 그녀도 인간이고, 쉬고 싶고, 놓칠 수 있고, 지칠 수 있는 존재다.
그런 생각이 들고 나니, 오히려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전업맘이다.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신경 쓰느라 나름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나는 이 집의 주인이고, 이 아이의 엄마’라는 마음가짐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내 아이를 키우는 건 결국 나다. 누가 돕는다고 해도, 그 아이의 중심에 있는 건 엄마다.
그렇기에 나는 헬퍼 언니와 경쟁하거나 불만을 품기보다는,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한 팀’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내 아이를 함께 돌보고, 우리 집을 함께 가꾸어가는 동료이자 가족 같은 존재.
그녀 덕분에 내가 조금 더 숨을 쉴 수 있고,
그녀의 수고 덕분에 우리 집이 조금 더 단정하고 따뜻할 수 있다면,
그건 내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존중과 배려로 충분히 보답해야 할 일이다.
사실 우리 헬퍼 언니도 처음에는 내가 집안일에 대해 이런저런 요청이나 지적을 하면,
얼굴이 붉어지고 표정이 굳어지곤 했다.
말도 없이 툭툭거리며 감정을 숨기지 못할 때도 많았고,
그런 모습에 나도 종종 상처받곤 했다.
하지만 몇 번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서로 감정을 나누면서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내가 무언가를 지적해도 전처럼 얼굴을 붉히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웃으며 “미안해요, 제가 고칠게요. 다음엔 더 잘할게요.” 하고 부드럽게 말해준 뒤
조용히 자기 일을 묵묵히 이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참 고맙다.
이제는 언니도 나를 조금 더 이해해주는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그런 태도를 마주할수록 나도 반성하게 된다.
나도 언니처럼 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야겠다.
더 따뜻한 말투, 더 부드러운 시선으로 함께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는 쇼핑센터 가는 우리 콘도 셔틀버스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오랜만에 본 한국인 엄마와 나란히 앉게 되었다.
그 엄마도 아기를 키우고 있었고, 싱가포르에 산 지는 4년 정도 됐다고 했다.
그런데 그동안 헬퍼를 일곱 번이나 교체했다고 하더라.
나는 조금 놀랐고,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첫 번째 고용한 언니와 계약을 연장하면서 지금까지 잘 지내오고 있구나.’
그 말 한마디가 나를 또 돌아보게 했다.
‘언니가 우리 집에서 그만큼 잘해주고 있는 거였지.’
‘그런데 나는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있던 건 아닐까?’
헬퍼 언니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나 역시 완벽한 엄마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같은 공간에서 부딪히며, 함께 나아가고 있다.
조금씩 맞춰가고, 때로는 부딪히고, 또 다시 이해하고, 다듬어가는 사이.
그게 가족이고, 그게 함께 살아가는 삶 아닐까.
오늘도 나는 전업맘으로서, 이 집의 엄마로서,
우리 집을 더 따뜻하게 만들기 위해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헬퍼 언니와 함께, 한 팀으로 잘 살아가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