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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되는 길에, 그녀가 있었다

싱가포르에서 필리핀 헬퍼 니젤과 함께한 첫 육아의 시간

by 담연


싱가포르에서 엄마가 되는 길, 필리피노 언니와 함께할 줄은 몰랐다

싱가포르에서 엄마가 되는 길에 니젤이 함께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가족 없이 이곳에 와 남편만을 의지하며 지내는 것도 벅찼는데,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까지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은 막막하기만 했다.

싱가포르는 조리원 비용이 매우 비싸고, 조리원을 이용하는 문화도 일반적이지 않다.
그래서 많은 엄마들이 출산 후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산후도우미나 헬퍼의 도움을 받는다. 우리도 그랬다. 니젤이 신생아 돌봄 경험이 있었기에 따로 산후도우미를 고용하지 않았고, 그렇게 출산 후 처음 마주하는 낯선 하루들을 니젤과 함께 보내기 시작했다.



우리의 첫 만남

니젤이 처음 우리 집에 오던 날이 아직도 선명하다.
출산을 한 달 앞둔 만삭의 몸으로, 나는 혼자 지하 1층으로 내려가 그녀를 맞았다.
택시에서 내린 니젤은 생각보다 작은 체구였다. 커다란 짐도 없이, 백팩 하나와 종이백 몇 개만 들고 필리핀에서 먼 길을 온 사람이었다.

나는 설렘과 기대가 컸지만, 니젤의 얼굴에는 긴장과 낯섦이 묻어나 있었다.
그날 곧바로 일을 부탁했다. 지금 생각하면, 처음 온 날부터 쉬지도 못하고 일하게 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당시에는 한인 그룹에서 조언받은 대로 ‘너무 편한 고용주로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섰다.
물 한 잔을 건네고는 다림질을 부탁했다. 피곤했을 텐데, 아무 내색 없이 묵묵히 일을 시작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1692252336453.jpg 니젤이 온 첫날, 정성스레 다려준 남편 셔츠. 만삭의 몸으로 늘 내가 하던 일인데, 누군가 나 대신 해주는 순간… 고마움에 울컥했다


출산과 함께 시작된 동행

출산을 앞둔 한 달 동안, 니젤은 정성껏 미역국을 끓여주었다.
무거운 몸으로 하기 어려운 집안일도 도맡아 주었다. 빨래를 널고, 청소기를 돌리고, 조용히 곁을 지켜주던 그녀 덕분에 큰 위로를 받았다.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더 편히 쉴 수 있도록,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조용히 배려하고 싶었다.

육아가 시작되면서 혼란스럽고 지치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니젤은 늘 곁에 있어 주었다. 엄마가 그리운 날도 많았지만, 그녀는 그 빈자리를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아기를 안아주고, 지친 나를 챙겨주며, 말 없이도 깊은 위로가 되어주었다.

가족이란 꼭 혈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힘든 순간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을 니젤을 통해 배웠다.
그 따뜻함이 없었다면, 내 첫 육아는 더 외롭고 고된 시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1년 8개월

이런 마음을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한 건, 니젤이 우리 집에 온 지 1년하고도 8개월이 지난 지금이다.
2년이 되면 떠날 수도, 혹은 또 다른 2년을 함께할 수도 있겠지. 어떤 선택을 하든, 늘 응원할 것이다.
육아로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나는 니젤을 떠올릴 것 같다.

우리의 시간은 언제나 웃기만 했던 건 아니다.
헬퍼를 고용하기 전, 에이전시와 통화하며 통금 시간과 하우스 룰을 정해야 한다는 사실에 많은 고민이 들었다.

다 큰 성인에게 통금이 필요할까?
새벽 6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일하게 하고, 일주일에 하루만 쉬게 하는 게 맞는 걸까?
결국 에이전시의 조언대로 휴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의 통금 시간에 서명했다.
그 순간, 내 자신이 너무나 냉정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미안했던 순간

니젤은 아무 말 없이 모든 걸 묵묵히 따라주었다.
그런데 한 번은, 평소처럼 조용히 집에 머물던 그녀가 휴일에 잠깐 외출을 나갔다가 5~10분 정도 늦게 돌아온 적이 있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내가 ‘어디야?’ 하고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은 없었다.
그리고 5분쯤 뒤,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그녀의 모습이 지금도 떠오른다.

그런데 그때 그녀의 표정은 너무 어두웠다.
무언가에 단단히 마음이 상한 듯한 얼굴이었다.
그 순간, 내가 화난 줄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한테 화를 내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신경질을 내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늘 성실하게 일하고 아이를 정성껏 돌봐주던 사람이었다.
단지 5분 늦은 걸로 서로 그런 기분이 오간다는 게 마음이 쓰였다.
오히려 걱정돼서 보낸 문자였는데, 그날은 괜히 서로에게 마음의 흠집이 났다.

그 일은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다.
언젠가 니젤이 우리 집을 떠난다면,
그렇게 속상하게 만들었던 순간들이 오래도록 미안함으로 남을 것 같다.



우리의 첫 육아, 함께한 기억

출산 후, 조리원을 건너뛰고 2박 3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작은 아이를 품에 안고 돌아오는 길,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길까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다.
집에 도착하자 니젤이 환한 미소로 맞아주었고, 자연스럽게 아기의 배꼽을 확인했다.

“비판텐이랑 소독용 알코올, 아기 면봉이 필요해요.”

병원에서는 탯줄 관리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없었고, 나 역시 따로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니젤은 준비물을 알려주고, 소독하는 방법까지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그 덕분에 아기 목욕을 시킬 때마다 걱정 없이 관리할 수 있었고, 일주일쯤 지나 탯줄이 예쁘게 떨어졌다. 그 순간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신뢰가 쌓이기까지

니젤은 30대 다른 헬퍼들과는 조금 달랐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었다. 그럼에도 아기 돌보는 일에는 익숙해 보였다.
사촌 동생을 키운 경험이 있어서일까, 이전 고용주 가정에서 쌓은 노하우일까.
1년쯤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니젤이 필리핀에서 약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모든 게 맞아떨어졌다.
우리가 먹는 약을 정리해주고,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적절한 약을 찾아 건네던 모습.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정말 똑똑한 헬퍼를 만났구나, 하고.



조금씩, 더 깊어지는 관계

하지만 니젤이 처음부터 그렇게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던 것은 아니다.
처음엔 오히려 불편하고 조심스러웠다.
‘내가 엄마인데, 왜 자꾸 육아에 관여하지?’
생판 남이고, 다른 문화·다른 나라·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기에 더 경계했던 것 같다.

아이를 두고 남편과 외출해야 할 때면 카메라로 아기의 모습을 계속 확인했고, 마음이 좀처럼 편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나도 다른 고용주들처럼 헬퍼에게 모든 걸 맡기게 될까?’

지금도 외출할 때면 카메라를 확인한다.
하지만 이제는 조마조마한 마음이 아니다.
이제는 안다. 니젤이 우리 가족을 얼마나 진심으로 아끼는지를.
생각해보면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맡겼다고 해도 결국 카메라를 들여다봤을 테니까.



오늘도, 함께

우리는 아직 함께하고 있다.
하루하루 쌓여가는 순간들 속에서, 니젤과 나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


20230929_072904.jpg 신생아 육아 20일차, 새벽 6시. 겨우 아기를 재우고 나와보니 베란다엔 니젤이 전날 널어둔 아기 빨래들이. 고맙고 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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