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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젤이 더 신난 타오바오 언박싱

타오바오 상자 속, 아기 옷보다 더 귀여운 반응

by 담연

중국어에 능통한 남편은 분기마다 타오바오에서 이것저것을 합배송해 받는다.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바로 ‘피규어’. 보통 20~27kg 정도 되는 대형 피규어를 주문 제작해서 배를 통해 받는다. 제작만 해도 한 분기가 걸리니, 기다림의 미학이 필요한 일이다.


피규어가 제작되는 동안 남편은 자잘한 물건들도 함께 주문한다. 미니 선풍기, 가죽 닦는 수건, 핸드폰 케이스 같은 것들. 이 모든 것들은 중국 창고에 모여 있다가, 피규어가 도착하면 한꺼번에 싱가포르로 배송된다.


언젠가부터 남편이 내게도 타오바오에서 필요한 물건이 있는지 묻기 시작했다.


중국어가 서툰 나는 원하는 물건을 찾아 링크를 보내면, 남편이 대신 주문해준다. 처음엔 주로 옷을 주문했지만, 품질이 워낙 아쉬운 경우가 많아 귀여운 인형 키링이나 머리끈처럼 실패 확률이 낮은 것들로 바뀌었다.


그러다 더는 사고 싶은 게 없어져, 문득 아기 옷을 한 번 사보기로 했다.


생각보다 품질이 꽤 괜찮았다. 무엇보다 아기 옷은 한 철 입고 작아지면 못 입게 되니, 부담 없이 주문할 수 있다.


이번에도 아기가 좋아하는 엘사가 그려진 원피스와 체육복, 양말, 신발 등을 함께 주문했다.


하지만 배송은 늘 기다림을 동반한다. 남편의 피규어가 창고에 도착해야만 모든 물건이 한꺼번에 배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한 달에서 한 달 반 정도 걸린다.


드디어 택배가 도착하는 날.


우리 집 복도는 상자로 가득 찬다. 박스는 대여섯 개가 넘고, 무게도 꽤나 묵직하다.


남편의 피규어와 장난감, 잡다한 물건들… 상자를 열고 정리하려면 한 시간은 꼬박 걸린다.


그 와중에 내 물건, 아니 아기 물건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나는 절로 웃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어디선가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So cute!!!!” (너무 귀여워요!!!!)


니젤이다.


니젤은 아기 옷이 나올 때마다 누구보다 먼저 달려온다.


하나하나 손에 들고 바라보다가, 세탁할 것들을 골라 따로 챙긴다.


“I’m so excited when you have new clothes!” (아가야, 너의 새옷을 받을때마다 나도 너무 신난단다!)
라며 새 옷을 아기의 작은 몸에 살짝 대보기도 하고,


새 신발을 손에 들고는 말한다.


“She can wear!” (아기가 이건 신을 수 있겠어요!)


엄마인 나야 당연히 아기 물건이 도착하면 설렌다.


하지만 헬퍼인 그녀에게는 일이 하나 더 늘어나는 일이다. 세탁, 정리, 정돈…


그런데도 어떻게 저렇게 기뻐해줄 수 있는 걸까. 마치 자기 아이인 것처럼.


심지어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새 옷은 하나하나 손빨래를 해서 햇볕에 잘 말려 놓는다.


그 다음날, 우리 아기는 햇살처럼 따뜻한 새 옷을 입는다.


그래서 나는 요즘 타오바오에서 물건을 주문할 때면, 꼭 티셔츠 하나, 귀여운 손가방 하나라도 니젤을 위해 함께 고른다.


우리 아가를 사랑해줘서, 우리 아가의 물건을 좋아해줘서,


무엇보다 진심으로 기뻐해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담아.


그녀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우리 집엔 택배보다 더 큰 사랑이 도착한다.


택배 상자를 여는 니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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