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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주리 Jan 26. 2024

깔딱수 18화 - 시절인연

시절 연인이 있나 보다.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다 보니 많은 사람이 오고 갔다. 그 당시엔 평생 갈 것 같았던 사람도 지금 어디에 있는지 연락도 되질 않는 사람이 있다. 있을 때 그들도 최선을 다해 일했고 좋은 사이였다. 하지만 그만둘 때 다들 사정이 있어서 나갔을 텐데 남은 자는 그저 서운함이 남는다. 서운함은 원망으로도 표현되기도 한다. 배려와 이해가 있다면 인계인수가 매끄러울 텐데 끝이 아름답지 못한 사람들이 간혹 있다.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저런 사람한테 내 피 땀 눈물과 정성을 쏟았다는 생각에 억울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도 나는 그들에게 나의 전부를 바쳐 대했을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이양이 잔소리할 때가 있다. 제발 마음 다 주지 말라고 말이다. 그러다 상처받는 건 마음 준 사람이라고. 잔소리를 들으면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그게 잘 되질 않는다. '있을 때 잘해' 이 말이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어서 옆에 있으면 간 쓸개 다 빼주는 호구 전문이다. 좋은 걸 어떡하라고. 그렇게 생겨먹은걸. 이양의 잔소리도 흘려듣지는 않지만 태생이 그런 사람이라 어쩔수 없다. 그렇게 말하는 이양도 좋아하는 회원이나 어머니들한테 말하는 목소리가 다르다. 가족들은 가증스럽다고도 한다. 갑자기 콧소리와 저세상 애교를 부리며 전화할 때면 허벅지까지 닭살이 돋는다. 

10여 년 전 팀장일때 일이다. 우리 팀에 너무나도 이쁜 신입이 들어왔다. 맘도 말도 자세도 이뻐서 팀장으로 데리고 있을 때 다른 팀장들이 부러워하던 선생님이었다. 어른들이 하는 말 중에 "이런 이쁜 게 어디서 왔노?" 그게 딱인 친구였다. 팀장 자리 바로 옆에 끼고 가르쳤다. 가르치면 가르치는 대로 잘도 따라 해서 칭찬을 하느라 입이 아팠다. 내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져서 주위에서도 그만 좀 하라고 할 정도였다. 본인도 일 열심히 해서 본사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럼 팀장인데 잘 도와줘야지. 내가 가진 노하우를 다 알려주고 데리고 다니면서 실습까지 시켜줬다. 노하우를 가르쳐 줬다고 내 것이 없어지는 게 아닌 일이라 더욱 힘을 쏟았다. 

신입이는 선배들한테 예의 바르게 해서 지국에서 인기 쟁이었다. 회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아서 소개도 많이 들어왔다. 고맙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니 더욱더 끼고 가르칠 맛이 났었다. 그런 친구가 나를 하도 따르고 좋아해서 내가 딴 맘을 먹었었다. 남동생이랑 짝을 지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머리가 어떻게 된 거다. 밤에 일 끝나고 팀장님~ 하면서 전화하고 만나고 이야기하는 게 좋단다. 그래서 동생 이야기를 살짝 했었다. 매주 소개팅을 나가는데 지겹다고 해서 한번 만나보라고 했었다. 팀장님 동생이면 무조건 좋단다. 말도 이쁘게 하는 녀석. 

남동생도 소개팅이 지겨울 때였다. 자리를 만들겠다고 하니 둘 다 좋다고 했다. 소개팅은 아니고 그저 밥이나 먹자고 했다. 둘 다 편하게 보자고 해서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두 사람이 같이 있으니 환상적인 그림이었다. 내 눈에 뭐가 씌었나 보다. 젊은 사람들이라 처음 만났는데도 전에 알았던 사람처럼 이야기도 잘하고 스스럼이 없다. 이거 이러다 한식구 되는 거 아닌가? 혼자 착각에 빠졌다. 동생도 신입이도 하하 호호 분위기는 이미 한식구였다. 나는 혼자 뿌듯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나서 이리도 좋아하다니. 하마터면 날 잡자고 할 뻔했다. 분위기 좋으니 둘만 있으라고 하고 빠지려고 했더니 둘 다 강하게 잡는 게 아닌가? 이건 뭐지? 좋으면 둘만 있고 싶을 텐데 쑥스러운가 싶었다. 그런 애들이 아니기에 더 이상했다. 

다음날 둘에게서 정중한 거절 의사를 받았다. 동생은 신입이가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다. 그럴 리가 없다. 남자친구랑 헤어져서 소개해 달라고 졸랐던 아이다. 매주 소개팅 나가고 있다고 해서 자리를 만든 거라고 했는데 남동생은 다시 알아보라고 했다. 신입이는 갑자기 맘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일부러 그 사람 자극하려고 소개팅 다닌 거라고 했다. 뒤통수 제대로 맞은 기분이었다. 남동생은 그 짧은 시간에 남자친구 있는 걸 어찌 알았단 말이지 놀라웠다. 눈치도 없고 어리바리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연애 고수였나 보다. 결국에 자리를 만든 나만 뻘쭘한 사람이 되었다. 소개팅 아무나 하는 게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몇 달 후 신입이는 신입 딱지를 벗자마자 그만둔다고 했다. 그만두는 사람들의 이유는 수만 가지다. 그중 뭐 하나를 말했는데 기억도 나질 않았다. 갑작스러워서 모두 다 놀랐다. 그 당시 나는 지구장 발령이 나서 일하던 조직에서 팀장 두 명을 데리고 일하고 있을 때였다. 담당 팀장도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었다. 마음을 먹은 사람을 돌리기에 역부족이었다. 본사 교육팀장도 와서 말렸다. 워낙 싹싹하고 야무지게 일을 해서 본사에서 데려가려고 했던 교사라 본사에서도 비상이었다. 딱히 다른 곳을 가려고 나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편히 알바나 하면서 지내겠다는데 어이가 없었다. 뜬금없이 왜 그러냐고 말리고 어르고 해도 말을 안들었다. 심지어 눈에 뭐가 씌운 것 같았다. 이상했다. 하지만 본인이 그만두겠다는데 도리가 없다. 그때 처음 그만두는 그 친구 때문에 눈물을 흘렸었다. 첫정을 듬뿍 준 신입이라 그랬을까? 


시간이 한참 지난 어느날 친한 지구장 결혼식에 가게 되었다. 회사 동료들이 다 같이 축하해 주러 가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 그 이쁜 신입이랑 얼마 전 그만둔 남자 팀장이 아이를 안고 왔다. 이건 무슨 장면이지? 아무리 계산해도 하늘에서 아이가 뚝 떨어져야 말이 된다. 없던 아이가 나타났다. 그리고 둘은 회사 다닐 때 맨날 싸우던 사이였다. 서로 못 잡아먹어서 주위에서 말리던 사람들이었다. 신입이가 유일하게 만만하게 대했던 옆 팀장인데 나이도 15살이 더 많다. 그리고 그 남자 팀장은 집도 뭐도 없다는 게 문제다. 그런 남자를 만나겠다고 내 동생을 싫다고 한 거다. 갑자기 시어머니 모드가 된 우리 선생님들. 신입아 이게 무슨 일이냐?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무슨 노래 가사도 아니고 뜬금없이 저 팀장이랑 아이는 뭐냐? 닥달 아닌 다그침 폭격을 했다. 남의 결혼식장에서 우리의 취조에 남자 팀장은 죄인이 돼서 쭈그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신입이가 먼저 회사에 있던 유일한 남자 팀장을 유심히 보았단다. 똑똑한데 회사에서 인정도 못 받고 있는 게 짠해서 구박을 하다가 정이 들었단다. 정만 들면 되는데 사고를 쳐서 회사를 다닐 수 없었다는데 세상 야무진 게 사랑에 눈멀어서 보이는 게 없었나 보다. 이미 집에선 쫓겨나서 단칸방 얻어서 혼인신고만 하고 산다고 했다. 등짝 스매싱을 날려도 시원찮은 놈이다. 그 팀장 다른 회사에 취직해서 처자식 먹여살린다고 고생깨나 한 얼굴이다. 그러면서 얼굴은 싱글벙글이다. 도둑놈 같은이라고. 15살이나 어린 신부를 데리고 살면서 좋단다. 전에 동생 소개할 때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직장도 번듯한 남자라고 소개했는데 그게 눈에 안 들어왔단다. 돈도 없고, 차도 없고, 집도 없는 그 남자가 좋은 자기를 믿을 수 없어서 그렇게 소개팅을 한 거라고 한다. 누가 말려도 안되는 게 사랑인가 보다. 그것도 자기 복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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