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심리학도가 조금 배운 내용들
많은 이론이 증명하듯 개별 인간의 성격과 인성, 능력 형성에 가장 중요한 것은 주된 양육자의 태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본주의 심리학의 대가 '에릭슨'은 태어나서부터 노년까지 인간 발달의 과업을 8단계로 나눠 제시한다. 발달의 각 단계별로 주요 수행 과업과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중요하게 습득하는 특질이 있다고 한다.
1. 신뢰(희망)/불신
아기는 태어나서 주된 양육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양육자가 아기의 기대를 일관성 있게 반응하고 아기의 욕구가 충족하면 아이는 양육자를 '신뢰'하게 된다. 인간에게 중요한 신뢰의 감정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에 대한 신뢰, 상대에 대한 신뢰, 상황에 대한 신뢰까지 영역이 확장된다.
신뢰는 긍정적 정서를 수반한다. 따라서 긍정적 신뢰 경험을 가진 아이는 '희망'이라는 미덕으로 세상을 탐색할 용기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욕구와 보살핌의 충족을 거부당한 아이는 신뢰의 반대인 '불신'을 품게 되고 이것은 스스로에 대한 불신, 타인에 대한 불신 등 나와 나 외의 모든 것에 대한 부정적 감정으로 연결이 된다.
인생에 있어 이 단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첫 단계가 잘못되었다면 첫 단추가 잘못 꿰어져 나머지 단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불신의 감정, 부정의 감정을 기본적으로 착장하고 모든 것을 그 바탕에서 판단하게 된다.
2. 자기 감(의지)/의심
아기에서 조금 자라면서 아이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진다. 세상을 스스로 주체가 되어 탐색하고자 하는 열망이 끓어오르는데 이때 양육자가 아이를 믿지 못하고 통제하려고 한다면 아이는 '자기 감'을 가질 기회를 제지당하고 '의심'을 키우게 된다.
활발하게 탐색하고 기회를 얻어 앎과 체험과 경험을 하게 되면서 자기도 할 수 있다는 효능감을 키울 수 있고 다음에도 도전할 수 있다는 의지가 생긴다.
그러나 매번 저지당하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아이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으로 어떤 일을 스스로 해나가는 힘을 기르지 못하게 된다.
즉 아이를 믿지 못하고 통제하려는 부모, 아이를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소유물로 간주하는 부모는 꿈틀대던 아이의 자존감의 싹을 잘라버리는 것이다.
자존감이 낮은 아이는 자기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존재 또한 바르게 정립되지 못하게 되어 주체대 주체로서의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결과를 보이게 되는 악순환을 이룬다.
3. 주도성(목적)/수치심
학령기 아이들은 부모를 벗어나 또래 집단과의 주로 '놀이' 등의 상호작용이 중요한 발달의 과업을 이룬다. 이미 전단계에서 신뢰와 자기 효용성을 키운 아이들은 자기주장과 타인을 인정하고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주도성'과 더불어 동시에 타인을 인정하며 사회성과 발달과제를 수행해 나간다.
그러나 자신과 타인에 대한 불신과 의심으로 전 단계를 통과한 아이들은 또래와의 관계에서도 자기주장을 펼치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되며 소극적이고 자신 없는 태도로 인해 또래에서도 소외되고 '수치심'을 가지고 스스로를 더욱 고립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4. 근면성(경쟁력)/열등감
또래와의 상호작용뿐 아니라 또한 학업 성취에 있어서도 발달단계를 거친다. 학업이나 과업에 대하여 스스로 노력하는 '근면성'과 자세를 배우고 결과에 대한 인정을 받으면서 스스로에 대한 '경쟁력'을 체험한다.
그렇지 못한 의심이 많은 아이는 순수한 열망으로 노력을 하기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에 시간을 쏟고 스스로를 황폐하게 만든다. 여기서 다른 친구들의 근면성이나 경쟁력에 대한 인정이나 자기반성보다는 '열등감'으로 한 번 더 인지를 왜곡하는 결과를 보인다.
5. 자아정체성(신뢰)/역할혼미
성인초기에는 주로 의미 있는 이성과의 관계를 통해 성역할을 발달시킨다. 이러한 관계를 통해 신뢰를 획득한다. 성역할에 대한 자아 정체성을 정립하며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에 과업을 수행하지 못하는 '역할 혼미'를 겪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 다하는 연애를 왜 못하는가? 이전 발달단계에서 발달 과업이 완수되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신뢰, 주체성, 자기 효능감이 아니라 의심, 불신, 수치심, 열등감에 고착되어 연애도 어려운 것이라고 본다.
6. 친밀감(사랑)/고립
성인 중기는 결혼을 하고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친밀감'을 형성하고 '사랑'의 감정을 획득하게 된다.
다시 한번 반복하지만 결혼은 하였으나 신뢰, 주체성, 자기 효능감이 아니라 의심. 불신, 수치심, 열등감에 고착된 부부 관계는 함께 살고 있으나 소통과 친밀함,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 아닌 '고립'의 길을 가게 된다.
자 여기까지가 50까지라고 본다. 이제 내 나이다. 50 이전의 삶이 초창기의 신뢰를 얻지 못하여 희망이 없는 삶으로 살아왔다면 50에는 이 고리를 끊고 다시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7. 관대함(보살핌)/침체
중년 이후의 삶은 안정되고 가족과 사회에 좀 더 관여하게 되어 '보살핌'을 주고받는 삶이다. '관대함'을 가지고 주변을 돌보지 못한다면 '침체'가 오고 역시 고립되는 쓸쓸한 노년을 계속이어가야 한다.
50년이라는 시간 동안 초창기 양육 환경에서 획득하지 못한 미덕으로 인해 수십 년을 손상된 감정으로 살아오고, 왜곡된 인지의 틀에 스스로를 이유 없이 괴롭히고, 의심병으로 주저하며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였다.
초창기 발달 과업의 성취는 전생애를 통해 정서, 성격, 인지, 능력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것이 엄아가 아이를 안아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라는 점이 매우 흥미롭기만 하다. 인간은 작은 세포에서 시작하였으나 우주를 탐구하는 능력에 까지 그 확장성이 무한 하지만 작은 것에 진리가 있다는 말이 새삼 다가온다.
100세 시대를 딱 반절로 접어 50부터 새로 시작한다고 생각해 보기로 했다. 51살에는 새로운 1살이 되어 내가 나를 사랑으로 양육하고 보살피고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해 본다. 그래야만 마지막까지 과업을 잘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이다.
8. 자기 통합(지혜)/절망
노년기에는 자기 인생을 돌아보면서 긍정적으로 '자기 통합'을 하게 되면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마지막에도 부정적인 관점, 스스로를 믿지 못하여 여전히 주저한다면 인생의 끝은 '절망'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인생이 마지막 라운드에 웃는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전 발달 과업들을 리셋할 필요가 있다. 비록 초창기 발달단계에 문제가 있었고 그 연결고리로 인해 수십 년간 고통당했다. 이제 그 실체를 알았으니 이제부터 내가 나를 제대로 양육하면 된다.
우리는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잘 알아야 한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의 감정을 잘 헤아리고 반응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견고한 믿음에 서서 세상으로 거침없이 나가야 한다. 그리하면 너와 나가 동등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관계에서 주는 행복을 발견할 수 있고 종국에는 죽음의 문 앞에서 자기 통합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