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자유로워지는 법
신은 나의 약함을 통해 찾아오신다.
그는 나를 만나기 위해 나를 더 낮은 곳으로 이끄신다.
내가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는 곳, 오롯히 나를 대면하는 곳으로
나를 수치의 구덩이로 몰아 넣으신다.
따라서 우리가 수치를 겪을때 알아야 하는것은
그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초청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교만해질때
교만을 통해 나는 신이되고 신의 존재를 망각하며 그것이 나를 지배하게된다.
그럴때면 자비의 신은 사랑하는 자에게 친히 찾아 온다.
이해할수 없는 고통이라는 이름으로
교만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강력한 고통이 수반되어야 한다.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이 찾아올까 의문이 들 때
해답은 단 하나,
그가 우리를 자신과 같이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의심한다.
신의 존재를
하지만 고통을 통해
오늘도 나는 그를 만난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고통의 이유는 우리 존재의 이유와 같은것 같다.
따라서 고통은 우리의 삶에서 화두가 된다.
고통을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
고통에 처하면 피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어 진다.
그러나 고통을 내 삶의 성장 과정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때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수 있다.
50년의 호흡에서
삶의 어두운 터널을 지날때
때론 심연같은 어둠을 대하는 태도는 회피와 두려움 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물론 단번에 될 수는 없다.
숨이 멎는 그날 역시 고통은 함께 할 것이고
그날까지 피할수 없이 같이 가야하는 반면교사, 트레이너 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것을 온전히 통과하며 버틸 수 있는 근육을 만들면 된다.
오늘 또 한번 배운다.
나이기도 하면서 내가 아닌 어떤 존재가 나를 고통 가운데 밀어 넣는 것을 본다.
그러나 그것이 처벌이 아니라 함께 함을 의미하고, 근력을 키우도록 돕는 과정임을
고통은 가능성을 간직한 씨앗이다.
겁먹을 것도 그렇다고 무시할것도 아니다.
때로는 겸허하게 때로는 맞짱뜰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것의 의미를 알면 마주할 용기를 낼수 있다.
어제보다 조금만 더, 한뼘씩 한걸음씩
궁극적으로는 나의 고통을 통해 나 아닌것의 고통을 이해 하게 된다.
하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