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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상한 짓을 했을까?

애착 정신화 하기

by 푸른페스큐

자기를 알지 못하고 내가 중심에 서있지 않는 사람은 불안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모호함을 견디지 못하고 현재에 머무르지를 못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못하게 한다. 불안에 정복당한 마음은 무언가를 추구하며 바쁘게 움직인다.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정신은 안전감을 느끼지 못하고 종종거리며 헤매게 된다.


어떤 사람은 무언가를 해야 될 것 같은 강박을 느낀다. 확인한 것을 또 확인하고 의미 없는 시도들을 반복한다. 모호함을 견디지 못하고 무엇인가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은 감정에 휩쓸려 나도 모르게 이상한 짓을 하게 되고 나중에야 '내가 왜 그랬지?'라고 자주 말하게 된다. 내가 사라질 것 같고 감당하기 힘든 위협적인 상황에서 통제감을 확보하기 위해 중간 대상에 몰두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심각해지면 중독이 된다. 특정한 상황에서 나도 모르게 단 것이 생각나거나 술, 담배를 찾고 타인에게 의지하는 관계로 회피하기도 한다. 인간관계에서도 불안은 나의 의도와 상관없는 행동을 해서 관계를 어렵게 만든다. 애꿎은 사람이 미워지기도 하고 불안의 감정을 행동화하여 화를 내기도 한다.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을 타인에게 전가하기도 하고 그것이 타인 안의 불안과 공명하여 더 큰 상처로 돌아오기도 한다. 강박, 중독, 투사 등 성격과 인간관계에서 많은 부분이 나를 알지 못한 불안에서 기인하는 것들이다.



정신화 mentalization는 나와 타인의 행동의 이면에 감추어진 생각, 감정, 욕구, 의도, 신념 등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삶은 정답이 없고 모호함의 연속이다. 내면을 이해할 수 있으면 삶의 다양한 상황에서 현재에 머물러 나를 볼 수 있고 의지적으로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이 알지 못한 무의식적 힘에 의해 이끌려 다니는 이유는 안전감과 신뢰의 부족 때문이다. 나는 충분히 능력이 있고 세상은 안전하다는 기본적 전제가 있어야 근본적인 불확실성의 불안함을 받아들이고 여기에 머물러 나를 드러낼 수 있다.


세상은 안전하고 충분히 탐색할 수 있다는 믿음은 초기 양육기의 애착 관계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 세상에 대한 믿음뿐 아니라 자기에 대한 믿음과 타인에 대한 신뢰를 동반한다. 나와 타인의 내면을 이해하는 정신화 역시 상호 신뢰로운 안전한 애착 관계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 안전한 애착은 초기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지지받고 수용된 경험에서 나는 충분히 소중한 사람이고 실수해도 괜찮다는 안전감을 가지면서 형성된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나의 존재와 능력에 대한 신뢰와 타인. 세상에 대한 신뢰를 키워나가게 된다. 반대로 불안정 애착은 거부당하고 비일관적 양육 환경에서 세상은 위험하고 나 스스로도 믿을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진 게 한다. 이러한 신념은 자기와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지금 여기를 긍정하지 못하고 회피하거나 공격하려는 불안과 방어를 키우게 된다. 즉 나는 억울하다는 피해의식의 무의식적 반응에 집중하여 자신과 현재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 어렵게 된다.


초기 양육기의 애착과 정신화가 성인의 삶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나 역시 40대에 되어서야 회피, 투사, 중독, 불안 등을 감지하였다. 이게 뭘까, 이 불편함이 어디서 왔을까를 생각하면서 심리학 책을 읽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결국 애착과 정신화의 가장 큰 문제는 현재를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나와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나는 괜찮고 세상은 안전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답임을 알게 되기까지 참 먼 길을 돌아온 것 같다. 이제는 조금씩 지금 여기에 머물러 모호함을 수용하는 연습을 해나가고 있다. 지금 여기에 머무르니 가을 창밖의 나무가 보이고 바람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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