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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져니 Dec 02. 2024

[24.11.28] 골린이의 골프 첫 입문기

- 인도 구르가온 '클래식' 골프장

나는 반골 기질이 있다. 

모두가 yes를 외치는 상황에서 혼자 슬며시 'no는 아닌가?!' 생각할 때가 많다. 


남편의 인도 주재 파견이 결정 났을 때부터 

주변 사람들로부터 골프채를 꼭 사야 하고, 똑딱이라도 한 달 강습받고 출국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아니, 나는 남편을 따라 인도에 가서 해외 생활을 한다는 데 

왜 하나같이 골프, 골프 이야기만 하는지 도통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인도에 온 이후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의 첫 질문이

"골프는 치세요?"였다. 


한 번도 쳐보지 않았다는 나의 대답에 이어진 골프 예찬론,

인도에서 골프를 쳐야 하는 이유, 

골프가 왜 좋은지에 관한 이야기

나만 이해할 수 없는 각종 골프 용어로 가득 찬 대화들 속에서 


가끔은 고립되고, 혼자 동떨어져있음을 느끼면서도

속으로 확고하게 '난 절대 골프를 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난 인도에서 해야 할 게 너무 많았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바빴던 나의 지난날, 

살림과 육아로 가득했던 바빴던 일상에서 한 발 물러나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앞으로 하고 싶은 게 뭔지, 내 인생을 위해 무얼 준비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준비하는 일만으로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또한 인도 주재 생활을 즐겨야 하니, 

매일매일의 일상 속에서 낯선 인도도 탐험해야 하고, 

원어민들과의 대화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영어 공부도 해야 하고,

아이들의 학교 행사에 참여하고, 학부모회의 일원으로 봉사도 하고

해외 생활 중에 남는 건 추억뿐이니 수많은 여행의 기회를 부여잡아야 하고,

나의 비루한 몸뚱이로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위해 운동도 꾸준히 해야 했다. 


그런 나에게 골프란 사치에 가까웠다. 

운동을 정말 싫어하는 내가 

내 인생과 건강을 위해 꼭 운동을 해야 한다면

그건 짧은 시간 집중할 수 있는 헬스나 남편이 즐기는 테니스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확고했던 생각을 단숨에 무너뜨리는 엄청난 일이 발생했다. 


골프채 한 번 잡지 않았던 나를 골프장으로 데려간 두 언니.


"골프장 갈 때, 김밥을 싸가, 김밥 먹고 싶어? 가자. 내가 김밥 싸갈게......."로 시작한 대화는 

"골프장이 나들이하기 좋으니, 넌 가서 카트 운전만 해"로 끝났고

골프의 ㄱ 자도 모르는 나는

그전 날, 언니의 집에 들러 언니의 골프복을 빌려 입고 (언니의 말에 의하면, 인형놀이였다고.ㅎㅎ)

휘뚜루마뚜루 가벼운 마음으로 골프장을 갔다. 

(언니가 날 위해 골프화, 골프채를 빌려왔다. 감사할 따름이다.)


난 정말 좋아하는 언니들과 소풍 가는 마음으로 간 골프장이었다. 


생전 입어보지도 않았던 흰색 짧은 치마에 니삭스를 신고

내가 내가 아닌 것처럼 어색하고 낯선 마음으로 

골프장에 들어섰다. 


새벽 6시 반부터 서둘러 오픈런을 한 덕에

골프장에 우리가 첫 입장. 


싸늘한 새벽 공기 속에서 카트로 바람을 가르며 연신 춥다를 외쳤다. 


드라이버가 뭔지, 우드, 유틸리티, 어프로치, 퍼터가 뭔지도 모르는 나는

언니들이 하라면 하라는 대로, 

캐디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건네주는 채를 휘두르기 바빴다. 


그건 확실했다. 

아무 준비 없이 뭔가를 한다는 건 상당히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라는 것!!!


채도 처음 잡는 상황에서 드라이버로 공을 맞추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고,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캐디에게, 뒤에 기다릴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지는 않을까 어쩔 줄을 몰랐다. 


그때 나의 부끄러움에 일침을 가하는 언니!

넌 돈을 내고 이곳에 왔고, 우리는 신경 쓰지 않으니 부끄러워하지 마!


정말 다행인 건

그날이 한인 여성 골프대회라 대다수의 한국 마담들은 골프대회에 참석하느라 

그 골프장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 뒤를 따르던 두 명의 한국분들이 

우리를 점프해서 앞지르는 순간부터 

나의 민망함은 사라졌다. 


넓은 골프장에 우리뿐.


드라이버로 잘 맞지도 않는 골프공을 치고는 

카트로 도망가 

그나마 청명했던 하늘과 

초록초록한 잔디밭을 즐기며 놀다가

언니들 공이 그린에 떨어지면

그제야 어프로치와 퍼터를 휘두르며

홀에 공 넣기 놀이(!!)에 동참했다. 


어떻게 채를 잡는지도 모르는 내가 

어설프게 골프채를 휘둘러

우연찮게 궤적을 그리며 구르는 골프공이 홀 근처에 가기라도 하면

언니들이 연신 "굿 샷"을 외치며 칭찬하기 바빴다. 


내가.... 골프에 소질이 있나?!


우습게도 언니들의 환호와 칭찬 속에서 

나는 허황된 생각에 재밌고, 기뻤다. 


채를 처음 잡아 본 내가 얼마나 어설프고, 미숙했겠는가. 


그럼에도 자신감이 생겼던 건

백일기도를 드리듯 골프 연습을 백일을 채우겠다는 언니가 75일 즈음 연습을 했다는 데, 

드라이버에 골프공이 상공을 가로지르고

공이 제자리를 찾아 굴러가는 걸 실제 봤기 때문이었다. 


난 시간이 없어.

난 잘 못할 거야. 

라고만 생각했는 데, 


언니가 75일을 꾸준히 연습해서 저렇게 멋지게 골프를 친다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골프를 전혀 못 치는 나도 백일기도를 드리 듯 

집중해서 연습하면

적어도 드라이버로 공을 멀리 보낼 수 있고, 

함께 어울려서 골프를 칠 수 있지 않을까.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 


수많은 일들 속에서 어떤 것이 우선순위일지 고민하고, 

정작 11개월이 되어가는 인도 생활에서 

내가 얻은 것은 뭘까.

난 치열하게 무얼 위해 살았을까.

고민하는 와중에


골프를

정말 몰랐던 상태에서 채를 휘둘러 공을 맞출 수 있는 상태가 된다면

뭔가를 하나 이루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인도 골프장에서 노는 게 참 즐거웠다. 


좋은 환경, 

좋은 사람들,

좋은 시간들.


그게 골프장에서 가능하다면 

'no'만 외칠 것이 아니라

yes 속에서 노력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인도에서 애써야 할 것이 하나 더 늘어났다. 

곰이 굴 속에서 마늘과 쑥만 먹고 사람이 되는 것처럼

백일 동안 골프 연습장에서 꾸준히 채를 휘둘러

골린이를 벗어나 골프 마스터로 거듭나기를 

시도해볼까 한다. 


지금 고민은 그 백일기도를 언제 시작할까 하는 것.

아무래도 한국을 16일 다녀오니....

다녀와서 치성을 들여봐야겠다. 

골프장 가는 길에 만난 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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