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스 마켓, 웨딩마켓 자전거릭샤 타고 탐험하기
찬드니 촉 지하철역에서 내리면 바로 재래시장이 연결된다.
영어 수업 학생들을 데리고 일 년에 한 번 이곳을 찾는다는 마야 선생님은 시장 가는 방향을 헷갈려했다.
선생님도 지하철을 잘 이용하지 않고 찬드니 촉도 자주 찾는 곳이 아니니 우리와 같이 여행자 신세.
표지판을 따라 시장을 향해본다.
좁은 골목길을 굽이굽이 빠져나가는 데 역시나 수많은 노점, 사람을 만난다.
필드 트립 전, 선생님이 우리를 모두 모아놓고 여러 번 당부한 이유가 있다.
사람 많은 곳이라 길을 잃을 수도, 일행을 놓칠 수도 있으니 개인 행동 하지 말고 서로가 서로한테서 눈을 떼지 말라고.
유치원 현장학습 가는 것 마냥 선생님의 발걸음에 맞춰 조심스레 낯선 찬드니 촉을 걸어본다.
좁은 골목길을 벗어나 큰 대로변으로 나가니 제일 먼저 자전거 릭샤 아저씨가 우릴 맞이한다.
정신없이 걷는 와중에 간간이 보이는 흥미로운 상점 앞에 멈춰 서서 이것저것 설명해 주시는 선생님.
"들어가서 구경할래?" 물어보시는 데 아무도 대답이 없다.
이 혼돈의 한가운데 서서, 정신줄을 부여잡고 있는 사람들에게 쇼핑이란 사치에 불과한 것인가.
그다지 눈길을 끄는 게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인도 전통옷, 사리나 레헹가 등을 사려면 델리 시내 상점에 가지 말고, 이곳 찬드니 촉에 와서 쇼핑을 하라고 한다.
같은 제품을 도매가로 정말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고 한다.
내년 아들의 결혼을 앞두고, 선생님과 그 따님도 이곳에 와서 옷을 장만할 예정이라고 했다.
나도 조만간 들려 인도 전통옷을 하나 장만해 봐야겠다.
파티나 행사와 같이 입을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인도 유적지에 가서 인도옷을 입고 사진 한 번은 찍어 보고 싶다.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교통 체증이 워낙 심한 인도이다 보니 자전거 릭샤는 제한된 곳에서만 허락되어진다고 한다.
손님을 기다리다 지쳤는지 길 가에 릭샤를 세워두고 그곳에 몸을 구겨 잠을 청하고 있다.
길 위든, 릭샤 위든 어디서나 잘 자고, 잘 눕는 인도 사람들.
삶이 고단해서일까.
짐수레보다 훨씬 큰 짐을 싣고 운반하는 아저씨에게서도
그가 감당해야 할 짐의 무게뿐 아니라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찬드니 촉은 타지마할을 건축한 샤자 한 왕의 거리였기에 오래된 건축물이 꽤 많다고 한다.
건물 보수를 하지 않은 경우는 많이 낡은 상태로 방치되어 있긴 하지만, 저 건물, 땅의 가치는 엄청나게 비싸다고.
다만 재산을 물려받은 자손이 해외에 있는 경우, 이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 그대로 두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길거리 바버샵 할아버지.
거울이며 미용 장비를 갖추고 하얀 옷을 멋지게 차려입고는 손님을 기다리는 중.
인도 사람들의 옷차림은 검정, 회색 무채색 계열을 선호하는 한국인들과 달리 참 경쾌하다.
알록달록 다양한 색채를 별다른 거부감 없이 조화롭게 활용한다.
덕분에 인도에서의 내 옷차림도 덩달아 화려해졌다.
마치 흑백텔레비전 속에서 살다가 컬러텔레비전의 세계로 넘어온 거 마냥, 사람의 옷차림뿐 아니라 주변 광경도 총천연색으로 빛난다.
Khadi 가게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물레로 만든 면, 모직물을 카디라고 하는데, 인도에서는 간디가 비싼 영국 의복으로부터 경제적 자립을 얻기 위해 생산을 장려한 직물이다.
우리의 목적지인 스파이스 마켓.
길거리에 다양한 향신료를 판매하고 있는데, 인도가 전 세계 향신료의 50%를 점유하고 있다고 한다.
시장을 들어서기 전부터 각종 향신료 냄새가 코 끝을 찌른다.
마스크를 하고도 재채기가 멈추지 않네.
우리끼리 왔으면 거리에서만 휘리릭 돌아보고 돌아왔을 거리이건만 인도 선생님을 따라다니니 좁은 골목, 건물 안, 계단 위 미로 같은 곳들을 탐험할 수 있어 좋았다.
워낙 좁은 공간이라 길 한 편으로 조심스레 걷는데, 무거운 짐을 옮기는 인도인들과 자꾸 마주친다.
그네들의 일을 방해하지 않고 싶은데 의도치 않게 자꾸 길을 막게 되어 미안함이 앞선다.
길거리 짜이는 나의 최애 음료이건만, 선생님께서 마실 거냐고 묻는데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지난주, 극심한 장염으로 계속된 설사, 오한, 발열로 고통받았던 시간들이 날 겁쟁이로 만든다.
인도 생활이 12개월 차이건만, 나의 장은 당최 인도에 적응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원인이 무엇인지 여전히 파악이 안 되는 상황 속에서
우유를 끊고, 찬물, 얼음을 조심하고
난 또 뭘 내 삶에서 제약해야 하는 걸까.
길거리 짜이를 맛보는 소확행조차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아 포기해야 하다니.
장염이 계속된다면 센 항생제를 먹어야 하지 않을까.
건강검진을 받아봐.
식습관을 바꾸거나 식단 조절을 해야 하지 않겠어.
많은 조언들 속에서 나는 어느 길로 가야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늘은 장염을 앓지 않기를 바라며
하루하루 조심스레 외줄 타기를 하는 중이다.
좁은 계단을 올라 건물 3층으로 향하니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내 눈앞에 닥친 것들에 급급할 게 아니라,
한 발 물러나 보거나
위로 올라가 보면
다른 시각으로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높은 곳을 좋아하나 보다.
언제나 익숙함 속에서 낯섦을 추구하고
다른 시각,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고, 생각하고 싶어 하기에
그렇게
좁은 계단을 오르고,
높은 산을 오르는 시간을 견뎌
너른 경치를 감사할 여유를 즐기나 보다.
삶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오늘 찬드니 촉에서의 인도인들의 삶이 당장은 힘들고 버겁게 보였지만
부디 집으로 돌아갔을 때 가족과 웃으며 만족스럽고 행복한 일상을 보내길 바라본다.
정신없었던 스파이스 마켓을 빠져나와 자전거 릭샤로 웨딩 거리를 구경하기로 했다.
원래는 자전거에 3명이 탈 수 있다지만, 안전과 우리의 무게(?)를 생각해 한 자전거당 2명씩만 탔다.
마른 체격의 아저씨가 우리를 태우고 좁은 골목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데
새삼스레 나의 몸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지고, 죄책감이 들었다.
종종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기도 하고, 힘겹게 페달을 밟으시며
뒤돌아 환하게 웃으시는데
영어로 소통이 안돼서 뭐라 하시는지 알아듣기는 어려웠다.
신촌 하숙집에 살 때에도 좁은 골목길, 정신없이 드리워진 전깃줄에 마음이 무거워져 남긴 사진이 있었는데
이곳에 비할 바가 아니다.
엉키고 설킨 저 전깃줄들이 과연 제 역할을 할까 싶으면서도, 합선으로 큰 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대혼돈의 찬드니 촉.
인도 영어 선생님 덕분에 조금은 더 가까이 인도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릴 적 '체험! 삶의 현장' 프로그램을 보며, 일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의 위대함을 느끼며
노동의 치열함 속에서 편안한 나의 삶에 부끄러움과 감사함을 동시에 깨달았다.
오늘은 인도판 체험! 삶의 현장,
그 한가운데에서
나의 일상에 감사함을
그네들의 노동에 위대함을 느끼며
내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치열하게 살아보자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