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의 <모순>
고등학생 시절, 소설책을 달고 살던 내게 어른들은 공부 안 하고 왜 그런 책을 읽냐고들 했다. (물론 공부를 안 한 건 맞지만) 나중에 깨달았지만 소설책에서 획득한 가치관들은 여전히 내 삶을 지탱하고 있다.
학창 시절에는 나조차도 소설책이 인생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다른 생각 없이 오로지 재미만을 위한 독서를 했다. 그러나 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며 소설의 진면목을 깨닫게 되었다. 교수님들께서는 항상 질문하는 연습을 할 수 있게 도와주셨는데, 그게 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이슈를 향한 수많은 질문을 통해 본인의 생각을 정리하고, 그걸 표현할 수 있도록 수업을 이끌곤 하셨다.
그 무렵 양귀자의 <모순>을 읽었다. 정말 유명한 책이긴 하지만 그 책을 읽고 내내 가지고 있던 가치관에 큰 변화가 생겼다. 소설은 겉보기에 완벽히 대비를 이루는 쌍둥이 자매에 대한 이야기가 큰 줄기에서 이어진다. 주인공의 엄마는 겉보기에 불행을 줄줄이 달고 사는 것처럼 보이고 그 동생인 주인공의 이모는 모든 것을 다 이루고 우아하게 삶을 즐기는 듯 보인다. 처음엔 당연히 그 대비를 통해 주인공의 불행을 이야기하는 내용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결말 부근에서 이야기는 크게 비틀린다. 삶에 결핍은 필수적이다. 결핍이 있기에 삶은 활력을 얻고, 원치 않는 완벽은 권태를 부른다.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보니 사실은 주인공의 이모가 가진 삶의 권태를 부지런히 조명하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그걸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왜 멋대로 주인공과 그 가족들을 불쌍하다 평가했을까?
주인공인 진진과 억척스러울 만큼 열심히 일하는 그의 엄마, 철없는 동생을 통해 나는 우리 가족을 보았다. 진진의 입장에서 그의 이모를 보고 그의 자식들을 부러워했다. 책은 진진을 통해 ‘내가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결국 나는 진진의 이모가 가진 삶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가진 불행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아마 진진은 그의 이모부와 비슷한 사람인 나영규와의 결혼을 택했음에도 이모와 비슷한 길을 걷지는 않을 것이다. 진진은 이모의 권태를 인지적으로 공감했고 동시에 엄마가 결핍에서 얻어내는 활력을 이해했다. 본인이 가져보지 못한 삶으로 향하기를 결정한 진진은 용감하다. 그의 엄마가 가진 활력을 빼닮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가진 결핍을 증오해 왔다. 모른 척하고 짐짓 아닌 척 내빼곤 했다. 진진의 엄마가 결핍을 대하는 방식은 결론적으로 내가 나를, 내 가족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 불행은 눈앞에 마주해야만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결핍을 채워내는 과정에서 삶은 활기를 찾을 수 있다. 모든 게 완벽한, 평온한 상태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불행을 마주하고 이겨내는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행복을 깨닫는다. 인생이 지닌 이런 모순에서 인간은 인간다움을 얻는다. 본능만 따라서는 얻을 수 없는 복잡한 가치관인 것이다.
소설책은 이러한 복잡한 과정을 통해 마음 깊숙이 깨달음을 전한다. 재밌는 건, 같은 글을 읽어도 사람마다 가진 환경과 가치관이 다르기에 서로 다른 결론을 낼 수가 있다는 건데, 이게 소설만이 지닌 독창성이라고 생각한다. 직접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책들도 물론 좋아한다. 그러나 소설은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세상을 던져준다. 추상적인 소설의 세상에서 퍼즐을 맞추는 건 각자의 몫이다. 퍼즐의 완성본은 조금씩 다르다. 때로는 같은 사람에게서도 시기에 따라, 태도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난다.
끊임없이 질문하자, 스스로의 세상을 풍족하게 가꾸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