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오는 가장 큰 위기는 ’화‘에서 온다. 화가 나는데 참기, 화가 나지 않는데 화내기.
두 가지 위기에 적당히 대처하다 보면 분노를 조절하는 법을 체득하게 된다. 물론 쉽지 않다. 때로는 속이 터질 듯해 마음속에서나마 괴성을 지르곤 한다.
분노 다스리기를 나름대로 연구하며 깨달은 바가 있다. 온 세상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요즘, 모든 사회 문제가 분노와 맞닿아 있다는 것.
어린 시절, 세상 돌아가는 꼴을 알고자 하면 제공되는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은 지금보다 접근이 불편했고, 휴대폰에서 모르고 ‘nate’라는 버튼을 누르면 화들짝 놀라 뒤로 가기 버튼을 연타하기 일쑤였다. 모르는 정보에 접근하고자 하면 내가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 시절에 올슨 자매니 가십걸이니 하는 할리우드 이야기는 정말 관심 있는 이들에게나 알음알음 알려지는 정도에 불과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어느 날 알고리즘에 켄드릭 라마와 드레이크의 디스전이 뜨고 난 이후 나는 그들 디스전의 전체 내막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나는 국내 힙합에도 관심이 없는데!
그런데 사실 블레이크 라이블리의 갑질이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25세 이상의 여성과는 데이트를 안 한다느니 하는 사실이 우리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도대체 스위스에서는 친구가 집에 와도 밥을 안 준다는 사실에 내가 분노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과거라면 몰랐을 정보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마구 엉키어 들어오고, 심지어 그 정보에 분노하는 사람들의 반응마저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온다.
인터넷에 올려진 단면만 보고 사람들은 쉽게 분노한다. 그리고 그런 반응을 보며 우리는 분노에 서서히 무뎌진다. 인간관계를 쉽게 끊어내고, 화를 내도 되는 일인지 아닌지 확인받고 싶어 한다.
어이없는 행동을 한 친구와의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리고, 다시 화해했다는 후기가 올라온다면? 글쓴이가 호구니, 고구마라느니 하는 반응이 쏟아질 건 뻔하다. 어느 한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제삼자에게 비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러나 인터넷 속에서는 그저 하나의 ‘썰’로 대상화된다.
인생의 모든 에피소드가 사이다일 수는 없다. 인간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참고 견디는 순간 역시 꼭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들을 아이들은 그대로 답습한다. 양보하기와 참기는 ‘답답한 고구마’에 불과하며 ‘사이다’를 위해서는 그때그때 복수해야 한다는 게 요즘 아이들의 생각이다.
이미 쏟아진 정보를 주워 담을 수는 없다. 발전하는 과학을 막을 수도 없다.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는 세상에서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 역시 자주 중심을 잃기에 우리는 이제 스스로 판단하는 법을 연마해야 한다. 조그만 휴대폰 속 수많은 사연과 나를 분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앞으로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될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