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크고 내 결을 떠나면 그땐 조금 더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 수 있을 거야"란 기대를 하며
"그때쯤에는 차를 안 타고 뚜벅이로 살 수 있겠지 "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시골생활에 차가 없다는 건 조금 더 불편을 감수하고 부지런해야 하니, 쉽사리 놓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드디어 오늘 기회가 생겼다
친구의 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배낭에 텀블러 우산, 책 한 권, 노트 내게 꼭 필요한 것만 챙기고, 추운 날씨에도 잘 견딜 목도리, 모자까지 장착하고 집을 나섰다
걸어 나가니 우리 집 고양이 미유가 산책을 가냐고 같이 가자고 여느때처럼 따라나섰다
나의 쓰레기 줍기 파트너였던 미유는 오늘도 함께 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길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으니 미유가 애교를 부리며 내 다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날 배웅해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차가운 공기와 들녘의 억새가 햇빛에 반짝인다
기다리던 친구의 차를 얻어타고 경주 산내까지 가며 우리는 이야기꽃을 피었다
운전을 안 하니 어깨의 힘도 빠지고 창밖 풍경에도 스스럼없이 눈길이 갔다
" 운전 안 하면 이렇구나 " 운전기사가 있으면 참 좋겠단 생각을 잠시 한다
일을 마치고 다시 친구의 차를 타고 시내로 나와 이제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정류소가 어디 있는지는 알지만, 버스 요금도 몰랐던 난 옆에 서있는 외국인이랑 같은 여행자의 마음이다
집에 가는 버스가 올까 안 올까 살짝 걱정을 하며 시간을 보았다
다행히 15분 안에 버스가 왔고 버스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누군가와 나란히 앉아야 하는 것도 어색 하지만 대중교통이니 얼른 아무곳이나 엉덩이를 붙이고 사람들을 살며시 곁눈질로 관찰한다 부산에서 타는 시내버스와 달리 시골버스는 마치 인도 버스와 비슷하다
거리도 멀고 속도도 빠르고 바깥에서는 겨울을 보내는 자연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다른 이들처럼 핸드폰에 마음을 뺏길 시간이 없다
얼른 작은 창 사이로 오후를 마감하는 햇살을 바라본다
내려야 할 타이밍을 잘 찾을 수 있을까? 집 근처에 가서는 내림벨만 계속 눈에 들어온다
다행히 길에 나만 내려놓고 버스는 떠나버렸다 이제부터는 잘 걸어서 집에 도착하면 된다
큰 길을 건너 시골길을 천천히 올라갔다 그런데 매일 차로 지나갔던 그 길은 그길이 아니었다
나무 한 그루, 땅의 촉감, 바닥의 쓰레기, 무덤 위로 비치는 햇빛, 오래된 집들의 자태가 모두 새로웠다
코끝으로 맡은 시골길의 냄새도 유난히 더 깊게 느껴지며 이 모든 감각들을 빠르게 지나가며 살았구나 싶었다
시골길에 눈처럼 뿌려진 쓰레기들은 인도 길과 흡사해서 놀랐다 어떻게 이렇게 쓰레기가 많지?
멈추고 천천히 봐야 보이는 것들
보다 보니 금세 집에 도착했다 몸에 살짝 열기도 나고 추위도 사라졌다
우리 동네에 다 왔을 때 하늘에서 여우비가 내렸다 내가 집에 오자마자 시간 맞춰 비 내리는가 싶어 고마웠다
들썩거리며 운전하고 달렸던 그 길을
걸으며 사색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내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또 다른 방향으로 변화할 기회를 가졌다
차를 놓고 다닐 기회를 스스로 조금 더 만들어 볼 용기가 기꺼이 생겨난다
#시골에서차를놓으면#보이는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