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수시 지원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제출해야 하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쓰고 나면 한번 보여 달라고 했는데 통 소식이 없더군요. 하루는 아이를 불러서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자기소개서를 쓰려고 지난 삶을 돌이켜 봤는데 엄마 손에 이끌려 학원을 전전한 것 말고는 기억에 남는 일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붙잡고 이틀 동안 지나간 기억을 복원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아이는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외국문화원에서 주관하는 영어교실을 가게 되었는데 우리말을 한마디도 안 쓰는 것이 원칙이었다고 합니다. 첫날 수업 중에 소변이 마려웠지만 영어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고 결국은 낭패를 보게 되었지요. 자존심이 유독 강했던 아이는 마음에 상처를 입었고 이후부터는 영어를 엄청 싫어하게 된 것뿐만 아니라 엄마한테 어떻게든 복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좋다는 학원은 다 들려 보내는 엄마에게 그 아이가 하는 복수는 엄마가 보내려는 학원을 안 가는 거였는데 그 뜻을 관철하기 위해 밥도 굶어보고 가출도 해보고 갖은 수를 써봤지만 결국은 고삐에 메인 소처럼 끌려가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아이가 택한 방법은 학원을 열심히 다니는 척하면서 학원 수업을 아예 보이콧 하는 거였어요. 처음 제 수업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앉는 것부터가 달랐습니다. 선생님을 바라보며 앉지 않고 90도로 삐딱하게 앉아 수업 내내 민속극의 말뚝이처럼 토를 달았습니다. 저는 그게 너무 신선해서 아이가 너무 좋아졌지만 아이는 나름 수업거부 투쟁을 하고 있었던 거지요.
엄마 앞에선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착실하게 맴돌이하는 척 굴었지만 아이 마음속엔 어서 엄마로부터 독립해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하는 꿈이 이글거렸습니다. 아이는 지구촌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일하는 특파원이나 내전 지역을 취재하는 종군기자가 되고 싶다고 하더군요. 고삐나 멍에를 풀고 진정한 자기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이야기였는데 무엇보다 어머니의 필드 바깥으로 나가고 싶은 열망이 커 보였습니다. 엄마를 떠나고 싶으면서도 엄마를 걱정하는 마음도 있어서 제가 자기 엄마의 전화를 잘 안 받거나 하면 엄마가 요즘 갱년기라 작은 일에도 서운해하고 외로워하시니까 선생님이 좀 잘 받아주시면 안 되냐고, 아들 둘 밖에 없는데 아들들은 엄마 마음을 잘 모르지 않느냐는 말까지 덧붙이곤 합니다.
이틀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그동안 알았던 아이의 모습은 너무나 단편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눈 밤에는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딘가가 조금씩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아이의 어머니나 아버지도 마찬가지고요. 물론 그 통증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당연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 통증이 없다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지요. 그러나 그 통증이 의미가 있으려면 그 통증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통증이 한 아이만의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 대부분의 것이고, 많은 경우 사회나 부모가 부추겨 괴롭게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 통증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고 통증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 조금이라도 덜어내려고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귀책사유가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