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부테스
세이렌의 목소리와 그들의 꽃핀 초원을 피하라.
키르케의 경고에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의 노래를 피하기 위해 동료들의 귀를 밀랍으로 봉하고, 자신은 돛대에 묶인 몸이 됩니다. 노래의 마력에 취한 오디세우스가 풀어달라고 발버둥을 쳐도 동료들이 흔들림 없이 밧줄을 더욱 단단히 묶도록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죠.
그리스 전설 아르고나우타이의 부테스. 부 테스는 이아손이 황금 양피를 구하러 콜키스로 떠날 때 그와 항해를 함께 하는 아르고 배의 선원 중 한 명입니다. 그들에게도 세이렌의 노래는 항해의 최대 장애물이자 공포였고요. 그러나 원정대에는 오르페우스가 있었죠. 그는 리라를 연주해 폭풍을 잠재우고 안테모에사 섬에서 세이렌의 노래를 물리칩니다. 다만 부테스는 홀로 금기를 끊고 세이렌의 유혹에 끌려 바다로 뛰어듭니다. 일탈인 줄 알면서도, 그것이 죽음으로 닿은 길인 줄 알면서도 말입니다.
애초에 아르고나우타이의 길은 빼앗긴 왕좌를 되찾기 위한 탐색의 과정이었습니다. 데살리아의 이올코스의 왕 크레테우스가 죽습니다. 왕위는 자연히 아들 아이손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복형 펠리아스(아이손의 어머니와 포세이돈 사이에서 남)가 왕위를 가로채고 동생을 감금합니다. 유배지에서 아이손은 아들을 낳고 그가 바로 이아손이지요. 이아손은 장성해서 이올코스로 돌아와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게 되고 이에 펠리아스가 콜키스의 황금 양피를 가져오면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공언합니다.
황금 양피를 찾는 길은 곧 죽음의 길입니다. 살아서 귀환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펠리아스가 공언한 것이겠지요. 그러나 이아손과 아르고 원정대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 갑니다. 그들은 하르퓌아이에게 고통받는 피네오스 왕을 구해주고 콜키스로 가는 길과, 모든 배를 난파선으로 산산조각 내어 버리는 암벽을 지나가는 비책을 알게 됩니다. 이렇듯 콜키스로 가는 길은 미지의 공포로 가득한 세계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하나의 관문을 넘어 다음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러나 부테스는 그 문에서, 그 길에서 저만치 벗어난 자입니다. 명문가의 자식으로 승선했지만 그에게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동기가 없습니다. 당연과 당위를 넘어 왜 그래야만 하는지, 이 길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회의를 품은 자입니다. 그래서 그는 시선을 돌립니다. 그리고 그저 노래의 아름다움이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되어 노래에 몸을 맡깁니다. 리라의 선율로 야성의 소리를 이기려는 인간들을 등지고 홀로 깊은 해저로 잠수해 들어갑니다. 아름다움을 향해 잠겨 들어간 그의 맹목.
오늘은 부테스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