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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최집사 May 28. 2020

뮤지컬의 교과서, <위대한 쇼맨> 재관람기

창작로서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꿈 중에, 가장 이루기 어렵고 멀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뮤지컬 영화 제작이다. 불가능에 가까운 꿈이긴 한데, 정말 이루고 싶은 꿈이기도 하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디즈니 영화를 늦게 입문한 탓에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뮤지컬 영화의 매력을 잘 알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디즈니 영화는 뮤지컬 영화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어쨌든 그 기초가 됐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니. 뮤지컬 쪽 일을 시작하고 나서 본 <겨울왕국>과 다시 본 <레미제라블>, <맘마미아>는 인상적이었다. 뮤지컬의 매력은 가지고 있으면서 영상매채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무대에서 이룰 수 없는 것들까지 이루어내는 흥미로운 장르였다.

뮤지컬 프로덕션에서 막 일하기 시작 할 때, <라라랜드>가 개봉했다. 그간 봐왔던 라이선스가 아닌 완벽한 창작 작품으로, 라라랜드는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저런 이야기도 뮤지컬이 될 수 있구나. 뮤지컬 영화로는 완성도가 부족했지만, 노래와 스토리가 각각 뛰어났기에 영화는 대박이 났다. 당시 처음 뮤지컬 창작쪽에 발을 들여 놓은 나에게는 '이 일을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준 영화였다. 연출님이 창작회의에서 시도때도 없이, 맥락도없이 자꾸만 <라라랜드>를 들먹이는게 좀 짜증났지만.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의 공식 포스터보다 이게 좋다.


이듬해 연말에 개봉한 <위대한 쇼맨>은 나에게 뮤지컬영화를 꼭 만들어보고싶다는 생각을 갖게 해 준 작품이다. 바넘에 대해 잘 알고있는 나는 궁금증으로 영화관을 찾았고, 영화를 보면서 대략 다섯번 정도 울었던 것 같다. '이게 무슨 바넘 얘기야.'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씨, 이거 대박이야."라는 생각이 먼저였다.

첫 관람을 정신없는 상태에서 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여운이 너무 많이 남았다. 일주일도 안 돼 다시 영화관을 찾았다. 두번째 영화를 볼 때는 더 많이 울었다.


코로나로 인해 <위대한 쇼맨>이 다시 극장에 걸린 것을 보고 이것참, 기뻐해야 하나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나에게 어떤 '자극'이 필요했는데 뮤지컬 영화의 정석이 다시 극장에 걸리다니. 가족들과 함께 3차 관람을 다녀왔다. 세 번을 봐도 재밌는 영화라면 말 다했지. 이번에는 공부하는 마음으로 관람했으니, 이 영화가, 이 뮤지컬이 왜 교과서인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세 번 보고 나니 명확해지는 것이 하나 있었다. 스토리와 음악이 너무나 조화롭게 어우러진다는 것. 두 말 할 것 없이 뮤지컬이 갖추어야 할 첫번째 덕목이다. <위대한 쇼맨>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This is me'는 개봉 이후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명곡이다. 커버도 많았고, 여기저기서 불렀다. 이 노래는 그냥 음원만 들어도 좋다. 그냥 노래 자체가 좋다. 하지만 이 노래가 무엇보다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순간은, 장면과 함께할 때 이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음악을 음원으로 들어도 머릿속에서는 서커스 단원들의 군무와 눈물어린 울부짖음이 그려진다.


인물들의 감정과 닥쳐있는 상황이 적합한 가사와 멜로디로 흘러나와, 그 외의 무대장치, 안무, 의상 등과 어우러질 때 뮤지컬 넘버는 빛을 발한다. 노래 따로, 장면 따로 좋은 뮤지컬은 좋은 공연으로 평가받지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넘버로 손에 꼽는 젠다야와 잭 에프론의 'Rewrite the stars' 역시 마찬가지다. 내 플레이리스트에 항상 들어있을 정도로, 이 노래는 그냥 노래 자체로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하면 유튜브 영상으로 영화 속 장면을 통해 이 음악을 듣는다. 공중곡예 속에 두 사람의 마음이 표현되는 이 넘버를 처음 영화에서 접했을 때  '연출이 천재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내가 이 씬에 얼마나 꽂혔었냐면, 공중곡예를 하는 젠다야가 너무 예뻐서 공중 후프 수업을 들었다. 물론 한 번 체험하고 '그냥 폴이나 타야겠다' 생각했지만.


난 영화 속에서 바넘보다 필립과 앤을 더 응원했다ㅋㅋ


나도 하고 싶어 후프여신


그래서 사람들이 <위대한 쇼맨>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뭐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어렵다. 실제로 이 질문에 내가 "영화 속에서? 아니면 그냥 노래로?"라고 되물었다가 상대가 "뭐가 달라?"라고 한 적이 있다.

다르다. 완전 다르다. 영화 속에서는 나에게 1등은 영화를 여는 넘버라고 할 수 있는 'A million dreams'이다. 세 번을 보면서 이 노래가 끝 날 때 마다 눈물이 고였다. 그 다음에 바넘의 딸이 다시 'A million dreams'를 부르는 리프라이즈에서도 눈물이 고인다. 다 알면서도 매번 그렇다. 뮤지컬 넘버가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지 명확히 말해주는 곡이다. 노래 한 곡 속에서 바넘은 가난한 어린시절부터, 첫사랑, 아버지의 죽음을 지나 장성한 청년으로 첫사랑을 아내로 맞이하며 한 집안의 가장이 된다. 리프라이즈 넘버까지 따지면 두 딸이 태어나고, 회사에서 해고당하는 순간까지 족히 20년이 넘는 시간을 노래 한 곡으로 표현한 것이다. 가진 것 없으나 누구보다 큰 꿈을 가지고 있었던 바넘을 표현한 가사는 또 어떻고. 그걸 또 아내와, 어린 아이들이 함께 부르는건 어떻고. 어린 아이의 목소리에서 갑자기 장성한 휴 잭맨의 목소리로 바뀌는 순간과 옥상 위에서 함께 춤추는 부부의 모습은 나한테 그런 로망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뭉클함을 줬다. (그런 로망은 전혀 없다 ㅋㅋ) 하여간 영화 속에서는 이 넘버가 나한테 1등이다. 하지만 반대로 음원으로는 잘 듣지 않는 노래이기도 하다.


그냥 넘버만 보자면 당연히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은 'This is me'나 'Never enough'가 좋다. 사실 노래가 다 좋아서 뭐가 1등이라고 말하기 어려운데, 어쨌든 이 영화가 뮤지컬로써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그게 확실하다. 노래와 스토리의 조화. 함께 가지 않으면 좀처럼 시너지가 나지 않는 것.


그런 의미에서 엔딩곡 'The greatest show' 역시 영상과 함께할 때 좋다.


물론 이 영화가 성공한데는 뛰어난 배우들과 프로덕션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2017년에 한참 프로덕션이 바빴을 때, 'This is me'의 시츠(사실 시츠인지 그냥 연습인지 모르겠다. 아마 연습같다.)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음악감독님이 배우들과의 연습자리에서 직접 이 영상을 틀어주며 '뭔가를 느끼라'고 말했다. 뮤지컬 넘버가 마치 찬송처럼 '아멘'을 외치게 만들 수 있구나. 'This is me' 넘버의 메인보컬 케알라 세틀은 캐릭터에 완벽하게 빙의되어 있었다. '누가 연습을 저렇게 하지' 싶을 정도로. 영화 속 장면을 보는 것보다 감동적이었다. 그런 배우들이 있었기에, 영화 속 장면이 더욱 전달력있게 만들어 진 것일테지.

사실 처음에 이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나의 관심사는 '배우들'이었다. 휴 잭맨이 바넘을 한다니? 잭 에프론이 나온다니?(학창시절 <하이스쿨 뮤지컬>의 '트로이'를 사랑했다), 레베카 퍼거슨은 그 <걸 온더 트레인>의 애나로 나온 그 레베카? 이렇게 쟁쟁한 배우들에, 작곡가들까지 빵빵하니 중박 이상은 치겠군. 생각했던 것이 역시나는 역시나였다.


하여간 이 영화는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해야 할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냈다.  <위대한 쇼맨>은 앞으로 어떤 자극이나 영감이 필요할 때 마다 찾게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뮤지컬에서는 스토리보다는 음악이 중요하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데, 내가 이런 다소 뻔한 이야기의 뮤지컬 영화에 열광할 줄이야. 개개인의 캐릭터를 정확히 살려내면, 다소 진부하거나 꼭 기발하지 않아도 스토리는 살아난다. 노래가 중요하다는 것은, 부정 할 수없지. '더' 중요하다는 데는 여전히 동의할 수 없지만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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