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 친할머니를 떠나보내드리고
작년 가을과 올 봄, 난생처음으로 가까운 가족인 조부모님의 죽음을 겪었다. 작년 가을에는 외할아버지께서, 얼마 전에는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90안팎의 고령이셨던 두 분은 모두 어떤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그 점을 제외하고는 두 죽음은 나에게 너무나도 달랐다. 나에게 너무나 다른 의미인 두 죽음을 겪고나서, 문득 내가 두 죽음을 자꾸만 연결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죽음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슬픔. 어쩌면 죽음에 당연하게 따라붙는 수식어, 슬픔에 관한 것이었다.
작년 추석 연휴의 첫날,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이전 다른 글에도 적은 적이 있지만, 나에게 외할아버지는 아버지같은 존재였다. 고등학교 진학 전까지 부모님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 언제나 나의 등하교를 책임지던 사람, 내 연필을 책임지고 깎아주던 사람, 내 저녁식사를 준비해주는 사람, 모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였기에 나에게 있어 그의 죽음은 큰 슬픔일 수 밖에 없었다. 죽음과 슬픔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문제의 시작은 이것이었다. 사실 나의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와 법적으로 혼인관계가 아니다. 때문에 나와도 법적인 가족이 아니다. 나의 '진짜' 외할아버지는 엄마가 아주 어렸을 때 알콜중독으로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는 혼자 삼남매를 악착같이 키워내셨다. 그리고 내가 태어나고 얼마 안 있어, 공사장에서 일하시던 외할머니가 풍채 좋고 인상이 좋은 남자를 만나면서, 나에게도 외할아버지가 생겼다. 어렸을 때는 그저 그런 줄만 알았다. 외할아버지가 본처와 자식들을 나몰라라 하고 다른 살림을 시작하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고 알 방법도 없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것도 내가 성인이 된 이후였다. 가히 충격이었지만, 그렇다고 비난하거나 평가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자상한 아버지와 같은 사람일 뿐. 누가 뭐래도 내 할아버지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말 일이,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진짜 문제가 되었다. 법적인 가족이 아닌 우리는, 할아버지의 장례에 대한 어떠한 권한도 없었다. 몇 년 전에 연락을 주고 받기 시작한 할아버지의 친 자식들이 모든 것을 해야 했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도 그게 마냥 달가울리가 없었다. 병원에 입원하신 채 코로나로 면회도 못 하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죄송한 마음과 안타까움이 밀려오는 와중에, 현실적인 문제들이 우리 가족을 가로막았다. 결국 우리는 조문객의 신분으로 겨우 한 번,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누러 갈 수 있었다. 그 사실이 너무 거대한 돌덩이처럼 내 마음을 눌러서, 마음껏 울지도 못했다.
그는 누가 뭐래도 내 할아버지였다. 죽음 이후의 슬픔은 언제나 남은 자들의 몫이고, 사는 동안 그를 사랑했던 이들의 몫이기에, 나에겐 그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껏 슬퍼할 수가 없었다. 그가 한 어리석은 선택으로 인해, 그가 나의 법적인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해, 그리고 내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인해. 공적인 자리에서 나는 슬퍼할 자격이 없는 사람 같았다. 그런 내 처지가 어이가 없고 슬퍼서, 한동안 이유없이 툭툭 눈물이 났다.
약 열흘 전엔, 친할머니께서 요양원에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거동이 불편하시고 고령이신지라 요양원에 계셨지만 모든 가족들이 인정할만큼 기운이 좋으시고 정정하셨다. 그런 할머니가 아침밥까지 잘 드시고 갑자기 돌아가셨다. 연세가 연세인지라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할 건 없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가실 줄은 그 누구도 예상을 못했다.
서울에서 엄마를 통해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제일 먼저 생각한 건 '오늘 일정은 어쩌지'였다. 정확히 코로나 격리로 인해 잔뜩 밀린 일들이 덤비던 시점이었고, 그 날도 이제 막 외출을 하려고 옷을 입던 중이었다. 조모상이라고 하면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이해해 주고 배려해 줄 터였지만, 문제는 내가 그러고 싶지 않았다는 거였다. 장례를 치르는 3일간을 다시 아무 것도 못 하게 될 게 뻔한데, 오늘 정해진 일은 마무리 하고 싶었다. 엄마한테 여쭤보니 아직 장례에 대해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으니 천천히 와도 된다고 하셔서 약간의 안도와 함께, 일 마치면 바로 청주로 내려가기 위해 짐을 싸고 옷을 갈아입었다.
죽음 당연히 안타깝고 슬프지만, 친할머니의 죽음은 나에게 외할아버지의 죽음만큼 슬픈 일은 아니었다. 외할아버지와 똑같이, 친할머니도 나에게 '진짜' 할머니는 아니다. 부모님은 재혼으로 만나셨고, 나는 지금의 친할아버지 친할머니를 고등학교 들어갈 무렵 처음 만났다. 자주 뵙는 사이도 아니었고, 그나마 코로나 때문에 근 3년은 얼굴도 못 뵈었다. 그렇다. 내가 외할아버지께 가지고 있는 깊고 다양한 '추억'이 친할머니에게는 없다. 함께 한 시간도 추억도 없으니 그 죽음이 나에게 큰 슬픔으로 다가오지 않는 건 어찌보면 당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이 나를 자꾸만 위축되게 만들었다. 난 왜 슬프지 않을까. 그 사실이.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면서, 나는 난생 처음으로 유족들이 입는 상복을 입어봤고, 가까운 사람들의 부조를 받았다. 장례에 참여하면서 나는 이미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나실 외할머니를 떠올렸다. 그래서 슬펐다. 사람들에게 할머니의 부고를 전할 때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사람들이 나에게 보내 준 그 따뜻한 말 한마디, 한 마디들에, 나는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다.
'그렇게 슬프진 않아. 죄송스러운 마음은 있지만, 나는 괜찮아. 사실 몸이 좀 힘들어.'
절대 입밖에 낼 수 없는 이 말을 삼키며 세상 모든 유족들이 으레 하는 대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만큼 충분히 슬프지 않다는 사실에 슬펐던,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 때문이 아니라 장례식장에서까지 시작된 친척 어른들의 잔소리와 훈계 때문에 힘들었던 이상한 장례식이었다.
내가 자꾸만 두 죽음을 함께 떠올리는 이유는, 두 죽음 앞에서 내가 충분히 슬퍼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이다. 하나의 죽음 앞에선 너무나 슬펐지만 내색할 수 없었고, 또 하나의 죽음 앞에선 슬프지 않아서 죄책감이 들었다. 갑작스럽게 두 조부모를 떠나보낸 요 사이가, 내 인생에서 꽤나 오랜 시간 남아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