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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최집사 Aug 03. 2022

내 생에 첫 반식

아침일기 챌린지 06

반려식물을 키우는 건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고양이와 달리 반식들은 불러도 답이 없고, 안고 예뻐할 수도 없고, 뿌리를 내린 곳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당최 나에게 어떤 신호도 주지 않고 죽어버리는...하여간 내가 일방적으로 사랑을 줄 뿐,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반식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건 이상하게도 절화에 관심을 가지면서다. 절화(꽃)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비교적 최근인데, 그 꽃 몇 송이가 나의 일상을 더 풍요롭게 채워준다는 사실에 참 고맙고도 묘한 기분을 느끼면서 나는 그냥 아무 이유없이 나를 위한 꽃을 사는 사람이 되었다. 예전에 꽃에 관심이 없었을 때 꽃 선물을 받으면 그냥 그대로 물에 담가놓곤 했는데, 이제는 흡사 플로리스트 급 전문가가 다 돼서 꽃 선물을 받으면 먼저 꽃다발을 풀고, 줄기를 닦고, 잎을 정리해주고, 줄기를 사선으로 잘라준 다음, 절화수명연장제와 얼음이 가득 든 물에 꽂아준다. 그렇게 하고, 안하고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절화는 내가 공을 들이는 만큼 오래 간다. 하지만 그래봤자 절화다. 지금처럼 무덥고 습한 여름엔 애를 쓰고 애를 써야 일주일이다. 물론 그게 절화의 매력이지만, 자연스럽게 화분 식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잘 못키운다 해도, 절화보다는 오래 갈 거니까. 절화를 보면서 식물과도 교감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일방적인 사랑을 주는 것 같지만, 그 사랑에 이 녀석들이 답한다. 꽃을 더욱 활짝 피우고, 고개를 더 빧빧하게 들고. 화분 식물도 그렇지 않을까. 더 그렇지 않을까.


엄마가 받아 오신 스투키를 나에게 주셨다. 아빠도 키우던 서양난 하나를 주셨다. 순식간에 반려식물이 두 개나 생겼다. 둘 다 과습에 약한 식물이고 물을 자주 주는 아이들이 아니다보니  손이 많이 가지 않아 키우기 쉽지만 교감이 적어서 아쉬웠다. (데려온 지 열흘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그냥 보고 예뻐만 했으니까ㅎㅎ)

그런데 최근 내 생일날 가까운 지인이 나에게 오렌지 자스민 화분을 선물해 주었다. 봄, 여름, 가을에는 항상 흙이 촉촉하게 젖어있어야 한다는, 꽃망울이 있지만 꽃을 보기 참 어렵다는, 그런 녀석이었다. 받자마자 시원하게 관수를 한 번 해 주고, 내 방 창가에 햇볕이 잘 드는 자리에 새 반식의 자리를 마련해줬다. 볕을 잘 받아야 한다고 하니, 새벽 내내 전쟁난 것 처럼 오는 비가 어서 그치고 쨍하니 볕이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기분이구나, 반식을 키우는 건.


그렇게 해서 나에게는 순식간에 세 반식이 생겼다. 잘 키울 수 있겠지, 벌써 걱정이 가득하지만, 최선을 다 해 보려고 한다. 내가 사랑을 주는만큼, 이 녀석들도 무럭무럭 자라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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