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살 여자가 호주에서 느낀 것

나에게 돈 쓰는 법 배우기

by 글쓰는 최집사

김여사는 '아끼는 습관'이 몸에 밴 사람이다. 넉넉하지 못했던 환경 때문에 그런 사람이 된 것일테지만, 반대로 그런 사람이기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 버텨냈다고 할 수 있다.

경제적 환경이 변한 지금은 오히려 최근에는 미니멀라이프를 실현하겠다며 옷이나 가방, 악세서리 같은 것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절약 좋지.

문제는 그 절약이 유독 본인에게만 향한다는 점이었다. 집안의 주인님들(고양이들)을 위해서는 백만원짜리 캣타워도 고민없이 사고, 집안이 온통 고양이 놀이동산이 되어가고 있는데도 자꾸만 새로운 선물을 찾아나서면서 고가의 립스틱 하나는 비싼게 무슨 소용이냐며 고개를 젓는 50살의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마음은 참 그렇다.

자기 돈으로는 명품은 커녕 옷 한 벌을 사면서도 며칠을 고민하는 김여사이기에, 김여사에게 선물 할 일이 있으면 나는 늘 김여사가 자신의 돈 주고는 절대 사지 않을 법 한 비싼 화장품이나, 악세서리들을 선물하곤 했다.

나이 오십이면 이런거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며 쥐어주면, 김여사는 이런걸 뭐하러 돈아깝게 샀느냐고 타박하면서도 수줍은 미소를 감추지 못한다. 사실 나보다 김여사가 돈도 훨씬 잘버는데.


그런 그녀가 최근에 출장차 호주와 뉴질랜드를 다녀왔다. 나의 여행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곳으로 떠나는 김여사에게서는 해외출장에 대한 들뜬 마음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열흘 이상 부재하는 사이 아빠가 주인님들을 잘 돌볼 수 있을지, 장거리 비행이 고되지는 않을지, 김여사의 머릿속엔 걱정만이 가득했다.


가서 신나게, 재미있게 즐기고 와 엄마!

일부러 신이 난 투로 말했다. 물론 일하러 가는거지만, 기왕 해외에 나가는거 신나고 재미있게 보내다 오라고. 더군다가 출장지가 공기좋고 아름다운 자연으로 유명한 호주이니.

김여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영 뜻대로 되지 않는 듯 했다.


2주 뒤 다시 집에 내려갔을 때 김여사는 자랑하듯 호주에서 사 온 것들을 내보였다.

한국에서 사면 20몇만원 한다는 고가의 화장품과 건강보조식품. 평소 김여사라면 여행을 가서도 돈을 아끼는 사람인데 출장을 가서 신나게 카드를 긁고 왔단다.


내가 제일 중요하지. 내가 없으면 자식이 무슨소용이고 남편이 무슨 소용이야.

오늘의 삶을 즐기는 호주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김여사는 무언가 깨닫고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여자들이 특히 더 그렇잖아. 자식들, 남편한테는 좋은거 사입히고 먹이고 하면서 자기한테는 돈을 안쓰잖아. 김여사가 힘주어 말했다. 쓸데 없는걸 사겠다는 건 아니지만, 쓸땐 쓰고 살아야지.


예상치 못한 김여사의 이야기에 기쁨보다는 놀람이 더 컸다. 옆에서 쏘아대는 딸의 안쓰러움과 속상함 섞인 잔소리에도 끄떡없던 그녀가 출장 한 번에 그런 생각을 하다니. 호주를 향해 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김여사는 누군가의 가족, 엄마, 아빠이기 전에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호주 사람들과 그 나라 문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김여사는 변하고 있다. 아주 긍정적으로.

50대를 맞아 부쩍 약해진 체력을 극복하고자 취미로 킥복싱을 배우기 시작했고, 갱년기에 좋다는 음식들도 챙겨먹는다. 새로운 것들을 지나치지 않고 하나씩 시도해보고자 한다.

갱년기를 맞은 엄마들이 겪는 고통과 힘듦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용기와 마음가짐을 가지고 돌아온 김여사가 매우 반갑다.








그 날 김여사는 나에게 20만원짜리 무스탕 코트를 사주었다.

김여사를 닮아 남들에게 쓰는 돈에 비해 나에게 쓰는 돈에 유독 박한 나는 상상도 못 할 가격인지라 입어보고 돌아섰지만, 계속 그 코트에 미련이 남은 나의 손목을 박력있게 낚아 챈 김여사가 다시 매장으로 돌진했다.


엄마가 사줄게. 우리 이쁜 딸을 위해 그것도 못 해주겠어.


오늘도 비싼거 다 필요없다고 아울렛 매대를 지나친 김여사는, 엄마찬스라는 말 앞에 다시 한없이 약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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