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여자에게 펭수란

덕질은 정신건강에 이롭다

by 글쓰는 최집사

가족끼리 사진을 공유하기 위해 만든 네이버 밴드에, 어느날 김여사가 펭수의 사진을 잔뜩 올려놓고는 이렇게 코멘트를 달았다.


펭수 없인 사나마나.


아직 펭수가 우주대스타가 되기 전, 몇몇 매니아들 사이에서 인기있던 시절이었다. 나도 잘 모르는 펭수를 김여사가 어떻게 알고 벌써 없으면 사나마나 한 존재까지 된 걸까.

궁금한게 있으면 네이버보다 유튜브를 먼저 찾는 세대인 나와 달리 김여사는 유튜브에도 별로 관심이 없고 TV도 잘 보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우주대스타가 되기 위해 남극에서 헤엄쳐 한국으로 왔다는 10살배기 자이언트 펭귄에게 빠져서 덕질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학창시절부터 나의 아이돌 덕질을 공감해주고 함께해주던 김여사였지만, 김여사가 먼저 덕질을 시작한건 처음이라 어리둥절했다. 펭수의 짤은 가히 귀엽고도 쓸모가 많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정도의 귀여움과 사이다를 줄 수 있는 덕질의 대상이 더 많이 존재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까지 펭수에 '치이지'않았다.


반면 김여사는 펭수에게 제대로 치였다. 얼마 전 51번째 생일을 맞이 한 김여사는 2030 부하직원들에게 펭수를 전파하는 열혈 전도사다. 펭수 영상을 굳이 찾아서 보지 않는 내게도 침을 튀기며 '우리 펭수가 이번에 얼마나 귀여웠는지'에 대해 전한다.


마치 아이돌 덕질을 하는 여고생처럼 김여사는 펭수의 일거수 일투족을 확인한다. 그런 김여사에게 펭수의 매력이 무엇인지 물었다. 뻔하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귀여운 외모에, 뻔뻔하고 당당한 행동. 나에게는 왠지 모를 그로테스크함을 주는 펭수의 초점 없는 눈마저 김여사는 사랑이라고 말했다. 펭수에게 빠져있는 김여사를 보며 '혹시 이것도 호르몬의 작용일까'생각했다.

그러기엔 펭수는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대세인 게 확실하니, 갱년기의 증상으로 의심하기는 섯부르다.


갱년기의 김여사는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감수성과 생각들을 탑재하게 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과 펭수 덕질 사이의 상관관계를 추측하기에는 어렵다.

다만 김여사의 갱년기에 펭수가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덕질이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것은 사이언스니까. 펭수 다이어리를 나와 내 동생 것까지 사전 예약을 해 놓고, 펭수가 나온다며 감기는 눈을 부릅 뜨고 12시 넘어서까지 연말 시상식을 시청하는 김여사의 모습이 낯설지만, 그래도 반가운 마음이 든다. 갱년기 김여사에게 '갱년기 증상 완화' 효과가 있는 약이 생긴 기분이다.


2020년에 11살을 맞이한 연습생 펭수의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한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김여사를 위해서.






나에게는 여느때와 다름 없던 퇴근하는 길, 카카오톡으로 알림이 왔다.

펭수 이모티콘이 나왔다는 알람.


나는 1도 관심 없지만 재빨리 이모티콘을 사러 들어갔다.

김여사에게 선물하기를 누른다.


가끔 귀여운 이모티콘을 선물하면 '돈 아깝다'며 혀를 차던 김여사는

바로 펭수 이모티콘을 활용해 행복한 마음을 표현했다.


미친 귀여움이라며.


백마디 말보다, 펭수 이모티콘 하나가 김여사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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