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 집안의...

갱년기 엄마를 둔 딸의 무게감

by 글쓰는 최집사

현재 우리 가족은 여러집 살림을 하고 있다. 부모님은 충북 청주에, 나는 서울에, 동생은 수원에서 군생활을 하고 있으니 세 집 살림이라면 세 집 살림일 수 있겠다.

서울에서 청주까지 버스로 1시간 30분. 정확히 고향집에 도착하기까지 2시간. 멀지 않은 거리 덕에 내 또래 친구들에 비하면 한 달에 한두번 꼴로 꽤 자주 고향집을 찾아가고 있다.


평일에 일을 하고 주말에 고향집을 다녀오는 것이 육체적으로 피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그렇듯 고향과 가족은 나에게 큰 힘을 준다. 하지만 최근들어 피곤한 일정 속에서도 내가 꾸역꾸역 고향집으로 향하곤 했던 진짜 동기는 따로 있다. 김여사의 갱년기.

그녀의 갱년기 증상이 시작 된 이후 나는 어느정도 의무감을 가지고 고향집으로 향하고 있다.


현재 나는 서울 살이 중이고, 동생은 군대 살이 중이기 때문에 청주 집에는 김여사와 아빠, 세 마리의 고양이 뿐이다. 그것이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니었지만 최근들어 갱년기 아내와 갱년기 남편(남자들도 갱년기가 있다 하더라)의 대립이 잦아졌으므로,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나 스스로 이 집안에서의 어떤 책임감 같은 것을 많이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갱년기 여자에게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나는 그것이 응당 남편이어야 맞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역시 딸이다. 남자 둘 여자 둘(고양이 셋)로 구성 된 우리 집에서, 갱년기인 김여사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딸인 나이다.

남편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근본적으로 김여사를 이해하기 어렵고(이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무엇보다 김여사가 그의 도움을 원치 않는다. 갱년기가 시작되고 남편의 일거수 일투족이 꼴보기 싫어졌다는 김여사는 이러쿵 저러쿵을 그녀의 남편에게 말하고싶지 않다. 그녀의 남편 역시 이러쿵 저러쿵을 말 할 성격이 아니다.


그러한 연유로 김여사는 가족 구성원 중 주로 나를 보고 싶어하고, 찾는다. 만난다고 해서 별다른 특별한 것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할 일은 그저 김여사가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다. 김여사에게 요즘 어떤 일이 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직장생활은 어떤지, 주인님들이 또 무슨 사고를 치지는 않았는지.

펭수 이야기를 하며 깔깔거리는 김여사의 이야기를 그저 들어주는 것. 그리고 맞장구쳐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하지만 그 사소한 일마저 큰 무게감을 느끼게 할 만큼 중요하다.


또한 갱년기 아내를 둔 아빠에게도 나의 도움이 절실하다. 갱년기 빌런이 나타났을 때, 그를 보호해 줄만한 사람은 나 뿐이므로. 내 역할은 갱년기 김여사의 멘탈을 케어해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빠가 조금 덜 공격당할 수 있게끔 돕는 것도 있다. (안타깝게도 공격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김여사의 잔소리가 시작되면 한 마디씩 아빠 편을 거들고, 괜히 고양이들을 팔아 보고, 아빠한테는 갱년기 아내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보듬고 이해할 것을 적당한 애교를 섞어 이야기한다.


그렇게 나는 이 집안의 중재자이자 힐러이자 고래 등에 낀 새우이자... 뭐 그런 딸을 맡게 되었다. 아직까지는 부모님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으로 그럭저럭 즐겁게 해내고 있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진짜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드는 요즘이다.






약 5년 전 늦둥이로 태어난 남사친이 엄마가 갱년기라 힘들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나는 '엄마의 갱년기'라는 것의 실체를 본 적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 때 친구는 말했다.


내가 아들이라 도움이 못 되는게 속상하네.


그때는 그 말에 공감하며 말했다.


그치. 아무래도 아들이 도와주기 힘들지.


김여사의 갱년기가 시작되고 저 때의 대화를 떠올리면 늘 아쉽다.

아들이라 도움이 못 된다는 생각부터가 틀렸던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