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나보다 소중해질 수 있을까
크면 알게 돼.
어른이 되면 알게 돼.
어린시절의 나는 김여사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서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엄마는 왜? 엄마는 어떻게?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정작 어른이 되서 알게 되는 건 전혀 다른 것이었다. 어른이 됐다고 알 수 있는 건 없다. 아무것도.
20살의 생일을 맞이 한 날에도, 대학을 졸업한 날에도, 첫 직장을 들어가던 날에도, 나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되는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나서 조금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새 해를 맞으며 스물 일곱살이 됐다. 받침에 'ㅅ'이 들어가면 20대 중반, 'ㅂ'이 들어가면 후반이라는데, 나는 빼박 사회가 인정한 20대 후반이 된 것이다.
이십대 후반이 된 나는 여전히 김여사를 이해하기 어렵다. 때로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머리가 따라가지 못하고, 그 반대의 순간이 되기도 한다. 대체 얼마나 더 어른이 되어야 하는걸까. 어른이 됐는데, 모르는게 너무 많다. 김여사는 이제 말한다.
엄마가 되면 알게 돼.
20대 후반이 되는 나에게, 김여사는 부쩍 결혼과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요즘 세상에 스물 일곱한테 무슨 결혼, 생각하다가도 김여사가 스물 넷에 나를 낳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인다.
나에게 더 고통스러운 일은 김여사가 '아이는 꼭 낳아야 돼'주의자라는 것이다. 결혼이야 당장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하고싶은 마음은 있지만 아이는 조금 다른 문제다. 내가 다른 생명을 책임질 수 있을까. 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그런데 김여사는 하여간 아이는 꼭 낳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거야 말로 절대 놓칠 수 없는 인생의 행복이라며.
김여사가 자식은 꼭 낳아야한다고 이야기 할 때 마다 나는 묘한 뿌듯함을 느낀다. 그 말이 나에게는 꼭 내가 김여사에게 좋은 딸이었다는 증거인 것 같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쉽지 않은 결혼생활을 한 김여사에게 자식이라는 존재가 세상 가장 무거운 짐이었다해도 고개를 끄덕였을텐데, 그녀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큰 보물이었다고 말한다.
너도 너 같은 거 하나 낳아 봐. 매일매일 이뻐서 까무러칠걸.
이 말을 들으면 감사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먼저 들지만, 조금은 씁쓸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그녀는 혼자 힘으로 나와 내 동생을 대학까지 보냈고,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엄마가 되어봐야 한다는 김여사의 말을 싫어하는 이유는 나는 김여사같은 엄마가 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설령 멀쩡한 남편을 만나고, 행복한 부부생활을 이어가더라도 엄마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와 희생을 과연 내가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을까.
요즘 어른들이 말하는 '이기적인'마음일지라도 나에게는 아직 내가 너무 중요하다. 엄마가 되면 나보다 더 소중한 것이 생기게 된다고, 다 그렇게 되는거라고 말 하는데, 난 그것도 싫다. 엄마라는 존재는 꼭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래도 스물 일곱 먹은 딸을 물고 빨고 하는 김여사를 볼 때면 다시 궁금해지곤 한다. 정말 그럴까. 정말 내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의 사랑이 엄마가 되면 생겨나는걸까. 내가 엄마가 되어 보기 전까지는 절대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이다.
김여사는 나의 어린시절을 회상할 때 마다 '천사같았다'고 이야기한다.
나를 가지고 있는 열 달 동안 정말 힘들었는데, 나를 안는 순간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왔구나 생각했다며.
김여사의 핸드폰에는 내가 '하내천'이라고 저장되어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천사라니.
이 낯간지럽고 송구스러운 이름의 무게를 나는 앞으로 어떻게 감당해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