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워낸 사랑에 대하여
신이 어디에나 함께 있을 수 없어 엄마라는 존재를 만들었다는 진부한 이야기가 있다.
내가 이 말에 별다른 감동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나는 나의 신이 언제나 함께 있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엄마라는 존재가 언제나 나와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여사는 내가 태어날무렵에 사회 초년생이었다. 많은 것이 보장되었으나 지금보다 훨씬 더 경직 되고 고지식한 공무원 사회의 일원이었고, 때문에 갓난아기인 나를 두고 금방 직장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나의 유년시절의 대부분을 외할머니 댁에서 지냈고, 김여사는 아침먹을 때 잠깐, 밤에 자기 전에 잠깐 만나는 사람이었다. 어디에나 함께 할 수 없어 엄마를 만든것이 맞다면 나에게 엄마는 김여사보다는 오여사(외할머니)인 것이 맞다.
대학시절, 여성사 수업 시간에 조별 토론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양육에 대한 가치관을 나눈 적이 있는데, 나는 그 때 한가지 이상한 점을 느꼈다. 나는 엄마 손에 자라지 않은 아이 치고, 그것에 대한 불만과 불평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한 친구는 말했다. 나는 어렸을 때 엄마 손에 자라지 못해 엄마가 너무 미웠다고.
또 다른 친구는 말한다. 나 역시 같은 이유로 미래에 아이가 생기면 일을 그만두고라도 꼭 내 손으로 키우고 싶다고.
나는 그들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나는 말했다.
엄마가 일을 하느라 나를 돌봐주지 못했다고 해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잖아?
대부분의 친구들이 내 말에 동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또 한번 충격이었다.
그래서 가만 돌이켜 생각을 해보니, 나의 어린시절 추억에는 김여사보다는 오여사가 훨씬 많았다. 학교에서 진행되는 각종 행사에 김여사가 참여한 것은 손에 꼽는 일이었다. 김여사는 늘 일때문에 바빠 집에 늦게 들어왔고,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공부나 입시는 내가 스스로 할 일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다. 나는 김여사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고.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는지, 그 사랑에 익숙해져있다 사회에 나와서는 호되게 감기에 걸리고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그래도 그것들을 가뿐히 이겨낼 수 있는 면역도 함께 생겨났으니, 사랑의 힘은 정말 대단했던 셈이다.
김여사는 언제나 나를 믿어주었다. 그리고 말해주었다.
내가 얼마나 예쁘고, 대단하고, 멋진 사람인지를. 예쁘지도 않은 나에게 예쁘다고 말하고, 평범한 나에게 대단하고 멋지다는 말을 아끼지 않아 스스로도 그런 줄 알고 자랐다.
김여사가 나를 믿어주었기 때문에, 스스로도 나를 믿고 무엇이든 도전하고 실천해나가는 사람이 되었다.
김여사의 외벌이로 풍족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나의 마음에는 영양이 가득한 씨앗들이 심겨졌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지만, 만약 신께서 대놓고 해줄 수 없는 것이 있어 엄마를 만든거라면 나는 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난 사람이다. 신은 김여사를 통해 굽은 길을 걸어도 구김살은 없이 자라나게 해주셨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김여사를 바라보면, 이제 김여사의 구김살은 내가 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에 나와 내 동생을 이렇게 사랑이 가득한 사람으로 키워내 준 건 아주 멋진 일이라고, 그리고 김여사가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50세여서 자랑스럽다고, 귀에 딱지가 앉게 말해줘야겠다.
김여사는 애정표현에 대해서 만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감정을 표현하려고 하는 편이다.
다 큰 딸내미 입장에서는 대략 난감한 순간들이 다수 있는데, 그래도 김여사의 그런 점이 싫지는 않다.
못생긴게 이뻐죽겠어~~
김여사는 오늘도 대낮에 사람 많은 곳에서 내 엉덩이를 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