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는 같은 꿈을 꾸었다

김여사의 꿈

by 글쓰는 최집사

김여사는 지금 지방직 공무원이다. 90년에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공직에 몸 담기 시작했으니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는 셈이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생계에 뛰어든 김여사는 동년배 직원들에 비해 연차와 직급이 높은 편이다. 박봉으로 시작해 어렵게 혼자 나와 동생을 길렀지만 이제는 호봉도 쌓이고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김여사를 보며 '저렇게 똑똑하고 재능 많은 사람이 공무원을 하는 건가봐'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김여사는 멋진 사람이었다. 지금이야 너도나도 공무원을 하겠다고 혈안이 되어있는 시대니까 서울대생이 공무원시험을 준비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조금 머리가 커서 보니 김여사처럼 똑똑한 사람이 왜 이름있는 좋은 대학을 못가고 공무원을 했는지 의아했다. 공무원을 비하하려는 게 아니라, 줄곧 전교1등을 하던 김여사가 전문대학을 나와서 졸업 전에 취업전선에 뛰어든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모든 건 정해 진 운명이었을까. 김여사는 수능 당일 답안지를 밀려썼다.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김여사는 그때를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어린시절부터 학창시절의 흔적을 모두 모아둔 덕에 집에는 김여사의 성적과 총명함을 증명해 줄 자료들이 많이 남아있다. 사실 그런 자료들도 굳이 필요치 않은 것이, 김여사는 지금도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아는 것도 많다. 하지만 운 좋게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학교에 진학한 나와 달리 김여사는 고향의 이름없는 전문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래서 김여사의 꿈이 원래부터 공무원이었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김여사가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 한 건, 전문대에 진학하고 당장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가정 형편은 좋지 않았다. 오여사(외할머니)는 막내삼촌이 말도 못 할 때 과부가 되었고, 김여사는 맏딸이었다. 명불허전 김여사는 목표를 세운대로 공무원이 되었고, 오여사는 한 시름 놓게 되었다.

원래 김여사의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다. 교사도 공무원은 공무원이니, 공무원이 꿈이었다는 건 반은 맞는 말이다.


성적이 항상 우수했으므로, 교대에 가지 못하는 변수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수능시험에서 그렇게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김여사의 유일한 걱정거리는 키였다. 믿거나 말거나 당시 교원을 임용할 때에는 키 제한이 있었다고 한다. 김여사의 키는 157. 정확히 나와 같은 키다. 혹시라도 키 때문에 선생님이 못 되면 어떡하지. 그녀는 걱정했다. 걱정이 무색하게 그녀는 재수는 꿈도 못 꾸고 전문대를 진학했다.


장래희망도 유전인지, 나 역시 교사를 꿈꾸었다. 고등학교 입학할 때 까지 나의 1순위 장래희망은 교사였다. 글쓰는 일에 로망을 품고 있었지만 그건 말 그대로 로망이었고, 현실적으로는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가르치는 일은 즐거웠다. 적성에도 잘 맞았다. 대학을 다니면서 교직이수도 가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포기했다. 오히려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면 내가 글쓰는 일을 쉽게 포기해버릴 거라는 결론에 다다랐기에.


대학 생활 내내 나는 과외로 용돈 벌이를 했다. 아이들의 성적과는 별개로 나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꽤나 사랑받는 선생님이었다. 과외를 하면서 어린시절 김여사가 나에게 일본어, 주산, 한자같은 것들을 가르쳐주던 때를 늘 떠올렸다. 김여사는 정말 좋은 선생님이었나. 나도 그러고 싶었다.

어쩌면 과외 학생 집 문 밖을 나가면 절대 들을 수 없는 호칭이어서 그랬을까. 나는 '선생님'이라는 말이 듣기 좋았다. 그러고보니 김여사는 한 번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불린 적이 없겠구나. 김여사가 나에게 좋은 선생님이던 시절, 그녀를 한 번이라도 선생님이라고 부를걸.








나: 엄마랑 나랑 똑같네

김여사: 뭐가

나: 엄마도 나도 둘 다 한 때 교사 꿈꿨는데 못 했잖아

김여사: 그런가..

나: 아쉽지 않아? 어느 평행세계에서의 엄마는 교사가 되어서 애들 가르치고 있을 수도 있는데.

김여사: 글쎄 뭐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있겠지. (별안간 웃는다)

나: 왜.

김여사: 넌 내가 답안지 밀려쓰는 바람에 태어난거야.

그때 내가 답안지 안 밀려쓰고 전문대 안갔으면 니 아빠 안 만났을거고, 너도 안 태어났을거 아냐.

나: 그렇게되나? 엄마는 그걸로 만족할 수 있어? 아쉽지않아? 나 만났으니까 된거야??

김여사: 푸하하. 말 하면 너 상처받을 거 같아.


김여사에게 감동을 기대한 내가 바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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