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아내와 그녀의 남편
내가 김여사의 갱년기 증상을 본격적으로 느끼기 시작한 건, 다름 아닌 아빠를 대하는 태도에서였다.
김여사의 갱년기는 부부에게 결혼 7년차를 기점으로 찾아왔다. 다른 부부들에게는 결혼한지 2-30년차에 찾아 올 일이 우리 부모님에게는 남들보다 3-4배 빨리 온 것이다. 물론 30대의 7년차 부부와 4,50대의 7년차 부부는 결이 다르다. 완전히 다르다. 그래도 김여사와 아빠는 항상 다정하고 금슬좋은 부부였다.
내 인생의 두번째 아빠는 첫번째 아빠와는 아주 다른 사람이다. 그는 표현이 좀 서툴긴 해도 정말 둥글고 따뜻하며, 성실한 사람이다. 모난 구석이 없고 무엇보다 유머감각이 풍부하다. 나는 그 점이 제일 좋았다.
시덥지 않은 이야기에 김여사가 웃는게 좋았다. 아빠는 예민하고 날카로운 김여사를 언제나 둥글게 감싸주었고, 내가 둘 사이의 관계를 깊이 있게 알 길은 없으나 언제나 날카로웠던 김여사는 아빠 앞에서는 비교적 무뎌졌다.
무뎌졌던 김여사의 칼날을 다시 갈아 준 것이 바로 갱년기였다. 그리고 그 날은 유난히 남편을 향했다.
두 자식을 모두 서울로 보내고 난 김여사의 곁에는 남편만이 남았다.(물론 고양이 세 마리도 남았다) 이전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둘만 남게 되자 거슬리기 시작한 걸까. 아니면 콩깍지가 벗겨지기 시작한걸까. 김여사는 그의 모든 것들이 꼴보기 싫어지기 시작했다.
김여사는 본인의 입으로 자주 아빠가 정말 '꼴보기 싫어졌다'고 얘기했다.
이 증상은 올 해 더 심해져 아빠를 향한 김여사의 말투에는 기본적으로 짜증이 배어있다. 둥글기만하던 아빠도 이제 마냥 둥글게 받아주지 않는다. 집에 내려가면 두 사람 사이에 한숨과 언성이 잦아진 것을 느낀다. 친구들이 '우리 엄마 아빠는 맨날 싸워'라고 고개를 저으며 내뱉던 말들이 이제는 이해가 된다. 싸움과는 거리가 멀었던 두 사람이 요즘은 틈만 나면 투닥이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집에는 김여사와 아빠 말고도 고양이 세 마리가 있다. 사실상 우리 집의 주인님들인데, 주인님들이 없었다면 아빠는 눈 뜨고 봐주기 어려울 정도로 더 불쌍해졌을 것이다.
이 마법의 생명체들은 사람의 기분을 황홀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어 순식간에 김여사의 마음을 녹여버린다. 김여사는 퇴근 후 대부분의 시간을 주인님들과 보내고, 주인님들 덕에 웃는다. 비록 신분이 집사가 되었지만, 그건 아빠에게는 정말이지 다행인 일이다.
물론 고양이로 인해 아빠가 더 혼나게 되는 일도 발생한다. 섬세하지 못한 아빠는 꽤 자주 주방과 거실을 분리하는 방묘문을 열어놓기 일쑤고, 현관 중문을 닫는 일도 자주 잊으신다. 우리집에 고양이가 없다면 상관없지만 고양이가 있는 이상 김여사에게 걸리면 잔소리 폭탄을 면할 길이 없다.
김여사는 이전보다 더 집요하게 아빠를 비난한다.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일이 있으면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성격은 점점 급해지고, 순간순간 언성을 높인다. 아빠가 틀렸고, 김여사가 맞다는 것을 집요하게 파해친다.
제 아무리 성격 좋은 아빠라도 근 몇년간 심해진 잔소리 폭격을 견뎌낼 재간은 없다. 집에 사람이라고는 아빠 뿐이고, 김여사는 주인님들에게는 절대 분노의 화살을 돌리지 않으므로.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딸이기 때문에 김여사를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제 3자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저 잔소리를 내가 듣고 김여사의 성격을 내가 받아줘야 한다고 생각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갱년기로 인해 고생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아빠를 너무 몰아세우지 마시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모녀간에 한동안 한숨 섞인 이야기가 오고갔다.
나: 아빠한테 너무 짜증내지 마요
김여사: 나 짜증 안내고 말로 하는데
나: 아닌데 다 짜증인데
김여사: 그래?
나: 조금은 엄마가 물러서주고 그래요. 잔소리 해도 안바뀌는거 엄마도 알잖아.
김여사: 그러니까! 아직 귀에 못이 덜 박혀서 그래
나: (절레절레)
김여사: 너도 알지? 엄마 원래도 한 성격 하는데. 갱년기오고 더 심해져서...
나: 그러니까 아빠가 얼마나 불쌍해~
김여사: (푸하하)불쌍하긴
나: 문 열어놓고 그러는거야 잔소리할 만 하지만 잘못한 것도 없는데 넘 짜증내지마셔요. 아빠같은 아저씨도 없어~
김여사: 착해. 니 아빠.
그 말을 뱉고 김여사가 씁쓸하게 웃었다.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김여사가 이야기를 하면 듣는 사람이어서.
딸내미가 말투 지적을 하면 '그런가?'하고 고민하는 시늉이라도 하는 사람이라서.
그 날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오래도록 두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상극인 사람 둘이 만나서 같이 사는 일은 참 힘든거구나. 난 두 사람이 조금 더 연인처럼 지냈으면 좋겠는데.
50대 부부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는걸까.
김여사의 엄마 오여사는 모두가 인정하는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다.
살벌한 육두문자는 기본이고 오랜시간 응축 된 화병으로 맥락없이 폭발하기도 하는 오여사.
김여사는 그런 오여사를 보며 늘 '저렇게 되지는 않으리라' 다짐했다.
며칠 전 부모님과 같이 장을 보고 집에 들어가는 길,
김여사는 배고파했다가 더워했다가, 추워했다가 끝내는 막걸리를 카트에 넣는 아빠를 향해 가시를 날렸다.
아빠는 나지막히 나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니 엄마 할머니같아지는거 같어.
김여사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도 정말 저렇게 될까, 한숨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