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50
갱년기의 슬픔은 이전과 다른 무력함, 우울감, 욱하는 짜증에서 그치지 않는다. 김여사는 40대 후반을 넘어가며 부쩍 몸에 이상신호가 잦아졌다. 마음도 힘든데 몸마저 이전같지 않고, 그로 인해 마음이 더더욱 힘들어지는 악순환의 반복이 시작된 것이다.
2년 전(김여사가 48살 때), 김여사가 원인을 알 수 없는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장출혈로 인해 일상생활이 불가해 질 정도로 몸상태가 나빠져 거의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을 휴직하고 병원에 입원했던 적이 있다. 물론 평소에도 잦은 잔병치레가 있었지만 크게 몸져 누운 적이 없던 김여사가 입원한 채 기력을 차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표현하지 못했지만 두려움을 느꼈다.
김여사가 이제 마냥 젊지 않다. 이제 김여사는 무엇을 하더라도 항상 건강을 먼저 챙기고 걱정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그 나이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우연히 중년의 여성분들께서 우는 소리로 갱년기가 오면서 갑작스럽게 몸도 망가진다는 이야기를 하던 순간에는 그게 곧 김여사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올 해 김여사는 쉰. 거짓말처럼 추석 연휴 첫 날, 김여사는 어깨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오십견.
누가 이 병의 이름을 오십견이라고 지은걸까. 그 이름 때문에 더 늦을 수도, 어쩌면 오지 않았을 수도 있는 병이 오십이 된 김여사에게 찾아온 것 같았다.
마음 고생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지만 사무직으로 비교적 몸이 고된 일을 하지 않은 김여사의 어깨가 그녀가 오십이 되었다는 이유로 고장나기 시작했다.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어도(김여사의 말로는) 두통과 면역력 약화가 심해지고, 위염과 다래끼도 이전보다 잦아졌다. 김여사의 몸이 망가지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늙어가는 엄마'를 실감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김여사에게 우울증이 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갱년기에 대한 우울감이야 흔히 겪는 현상이지만, 내가 제일 두려웠던 것은 항상 밝고 당당했던 김여사가 갑자기 자신의 존재와 인생에 대해 허무를 느끼고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는 일이었다.
내 또래 친구들의 엄마들은 나보다 몇 년 앞서 갱년기를 겪었기 때문에, 소문으로만 듣던 엄마의 우울증이 현실이 될까 무척 두려웠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헌신하거나, 나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했던 엄마들은 갱년기에 들어 우울감을 많이 호소한다고 한다. 우리 김여사는 수많은 인생의 풍파 속에서 자존감을 지켜낸 먼진 여자였던 걸까. 그녀의 갱년기는 우울이라기보단 화였다.
여자의 50에는 정말 무언가 있는 것일까.
주변의 모든 것(특히 남편이)이 맘에 들지 않는다. 김여사의 갱년기는 그렇게 목소리가 커지면서 시작됐다. 짜증섞인 투로 열이 난다고,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어디가 안좋아졌다고 이야기하는 김여사를 보면 씁쓸하다. 아프지는 말고 짜증만 내지. 왜 몸까지 같이 아파지는걸까.
불같이 화를 내도 내 눈엔 아직까지 김여사가 소녀같다. 울지 않고 여전히 웃어줘서 고맙다.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작은 일에 신경질을 내도 그걸로 기쁘다.
그러니까 아프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김여사의 50이 더 이상 아프지 않게 집안의 유일한 여자인 내가 더 신경써야 한다는 책임감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무겁다.
울지 않고 차라리 짜증을 내줘서 고맙다고 말해야되는데.
그건 내 입장이지 아빠의 입장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