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사의 결혼생활
한번쯤은 내 인생에서 너무나도 큰 일을 겪게 되는 순간이 있다. 때로는 '그 일'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꿔놓거나, 두 번 다시 그 일을 겪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곤 한다.
나에게도 '그 일'이 있었다. 스물 여섯 길지 않은 인생에서 벌써 두 번의 사건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아빠라는 존재로부터 시작됐는데, 나를 낳아 준 생물학적 아빠, 김여사가 선택해서 결혼하고 나를 함께 낳은 그 남자 말이다.
나는 현재 그 아빠와 연락조차 잘 하지 않고 있다. 내가 중학교에 진학 할 무렵, 김여사는 그와 갈라섰다.
부모님의 이혼이 나에게 작은 일은 아니었으나, 나에게 '그 일'은 엄마가 나에게 "아빠랑 이혼할 거란다"라고 말 한 것 따위가 아니었다.
나는 아빠의 핸드폰으로 다른 아줌마에게 문자가 온 것을 제일 먼저 확인 한 사람이다. 아빠 핸드폰을 가지고 놀던 중 받게 된 그 문자를 확인 한 순간의 모든 것이 아직 내 머릿 속에 남아있다. 오히려 문자 내용은 10년이 지난 지금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밖에 모든 것이 내 머리속에 생생하다.
그 곳이 외할머니 댁이었던 것, 내 손에 쥐어졌던 핸드폰에서 울렸던 진동, 문자를 확인하고 동생과 앉아있는 아빠를 슬쩍 바라본 일, 곧바로 안방으로 가서 김여사와 오여사(외할머니)에게 내가 본 것을 이야기 한 일.
그 당시 아빠의 핸드폰 벨소리까지 기억난다. 이루의 까만 안경. 당시 제일 유행하던 노래였다.
김여사는 그를 용서했다. 둘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는지 모른다. 하지만 집안에 한참 찬바람이 불고 난 후, 우리는 다시 이전처럼 지냈다. 김여사는 점점 더 어두워져갔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최고의 여자였고, 그 무렵 나에게도 사춘기가 지나가고 있었기에, 김여사의 마음보다는 질풍노도인 나의 마음이 더 중요했다.
지금 스물 여섯의 나에게 그때의 김여사가 고민상담을 했더라면 나는 끝까지 듣지도 않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당장 끝내. 한 번 그랬는데 두 번은 못해? 나도 그런 아빠 필요 없어.
하지만 순진무구하게도 나는 한 번으로 끝날 줄만 알았다. 이 아픔은 계속해서 우리 가족 사이에서 회자되겠지만, 그냥 그냥 그렇게 지나가 버릴 줄 알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이번에는 김여사가 직접 그의 핸드폰을 확인했고, 두 사람은 마침내 끝이 났다.
그래서 나에게 두 사람의 이혼이 충격적이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았다. 나에게 큰 사건은 내가 그 문자를 확인한 제일 첫번째 사람이었다는 것이지 두 사람이 이혼한 것은 아니었다.
김여사가 이혼을 한 후 얼마간 나는 이런 자책에 시달렸다. 내가 그때 모른 척 했더라면. 내가 그 문자를 보고 엄마에게 그대로 일러바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 때의 나는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엄마에게 그 얘기를 꺼냈을까. 돌이켜보면 그 이야기를 꺼내던 나에게는 약간의 설렘 같은 것도 있었다. 이런 엄청난 사건을 처음 알게 된 것이 나라는 것에 흥분했고, 드라마같은 일이 우리집에 일어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빠라는 존재가 없어진 것에 대해서는 크게 아쉬움이 없었다. 아빠는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 존재감 없는 사람이었고, 가족은 커녕 자기 목숨 하나 부지 할 돈조차 벌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맨날 친구들과 술을 먹고 와서 김여사를 화나게 하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오히려 부모님의 이혼은 나의 사춘기에게 좋은 핑계거리가 되었다.
3년 정도 지난 후, 김여사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두번째 결혼에 골인했다. 그는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고, 비슷한 아픔을 가진 머리가 조금 벗겨진 남자였다. 창밖으로 엄마와 웬 아저씨가 함께 차에서 내리는 걸 보고 드디어 김여사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무렵 나는 사춘기가 지나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제서야 나에게도 김여사의 아픔을 돌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홀로 오롯이 그 고통을 견뎌냈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김여사에게 '그 일'은 딸이 남편의 핸드폰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말해줬던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니, 사실은 나는 김여사에게 '그 일'이 정확히 알 수 없다. 내가 헤아릴 수 없었다. 다만 김여사에게 '그 일'은 나에게처럼 간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여사는 스물 셋 꽃다운 나이에 그를 선택해 결혼했다. 스물 넷에는 나를 낳았고, 육아휴직도 충분히 쓰지 못하고 다시 직장에 출근해야 했다. 3년 뒤에는 둘째가 생겼고,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젊음과 아름다움은 모두 나와 내 동생을 위해 바쳐졌다.
비록 지금은 아무것도 없지만 무엇이라도 해내리라 믿고 결혼 한 남편은 번번히 사업을 말아먹기 일쑤였고, 쥐꼬리만한 공무원 월급으로 딸과 아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워내야한다는 부담감이 그녀를 짓눌렀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다 크지도 못 한 상황에서 무능력한 남편은 바람이 났다.
내가 스물 네 살이 되던 해, 대학생으로서의 마지막 학기를 되돌아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여사는 이 맘때 나를 낳았구나. 그녀는 정말 쉽지 않은 결혼생활을 했다. 그럼에도 한 번도 누군가를 탓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도 김여사같은 어른이 될 자신은 없다.
내가 중학생이 되던 때에는 반배치고사라는 것이 있었다.
입학 전에 시험을 보고, 그 시험 성적에 따라 반배정을 하는 다소 웃긴 시험이었는데, 그 시험 전날 밤 김여사는 이제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나에게 거의 '당한것'과 다름이 없었다는 그녀의 첫 경험 이야기를 했다.
이해는 못하고 막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내게 한참을 나긋하게 이야기하던 그녀가 별안간 웃었다.
시험 앞둔 딸한테 별 이야기를 다 한다며.
그러곤 김여사는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김여사가 이혼을 결심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