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김여사가 말했다

마냥 젊은 줄 알았던 엄마의 갱년기

by 글쓰는 최집사
아무래도 나 갱년기인가봐


김여사가 처음 이렇게 말하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 때 김여사의 표정이나, 그 말을 들을 때 내 가슴 속에서 났던 소리도 기억한다.


갱년기? 김여사가?


당황스러움과 놀람의 감정을 누르고, 최대한 태연하게 되물었다. 왜?

"그냥... 욱하고, 더워서 잠을 못자겠어. 생리 끝날 때가 됐지 이제."

"그래요?"


다시 태연하게 대답하고는 그 밖의 것들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김여사는 내가 무언가를 더 물어주고, 신경써주기를 바랬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리고 혼자 생각했다.

김여사가 갱년기라니. 벌써?


나에게 김여사는 언제나 젊은 엄마였다.

나와 두 바퀴 띠동갑인 김여사는 내 또래 친구들의 엄마 중 가장 젊었다.

엄마가 젊은 것이, 엄마가 예쁜 것이 나는 참 좋았다.

김여사는 나에게 언제나 친구같은 젊은 엄마여서, 김여사에게 갱년기가 올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김여사의 충격고백에 가만히 손을 꼽아보니, 김여사는 벌써 50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서울살이를 하느라 자주 마주하지 못하는 사이 김여사에게도 갱년기가 왔다.

나의 20대가 너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고 투덜거리는 사이, 김여사의 40대도 끝이 나고 있었다.


김여사는 갱년기에 대해 크게 슬퍼하거나 우울해하지는 않았다.

다만 약간의 한숨조로 말했다. 폐경이다.

최근 들어 생리 주기가 더 불안정해졌다는 것.

진짜 끝났나? 싶을 쯤 생리가 찾아오는 일이 많아졌다고 한다.


"엄마, 요즘은 폐경이 아니라 완경이라고 해."
완경이라는 말에 그녀는 의외로 함박미소를 지었다.

"그 말 참 좋다."

해맑게 웃는 김여사를 보면서 생각한다.

김여사는 80넘은 할머니가 돼도 소녀같을 것 같아.


생리가 다시 찾아오면, 김여사는 "뭐야, 안 끝났어?"하고 투덜거린다.

나는 그 투덜거림 안에서 약간의 안도를 본다.

그러면 나도 진심을 담아 이야기한다.

"나도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어김없이 등짝스매싱이 날라온다.


4050 여성이 겪는다는 제 2의 사춘기.

갱년기가 김여사에게도 왔다.


김여사의 갱년기는 김여사 자신에게보다 딸인 나에게 더 큰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친구같은 젊은 엄마.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기준에서 바라본 김여사였다.

이제는 김여사 그 자체를 바라보고 싶다.

김여사의 인생 전반전을 돌이켜보고, 그녀의 후반전을 진심으로 응원하고싶다.


김여사가 주인공인, 김여사의 이야기를 시작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김여사는 생리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 그녀는 진심을 담아 말한다.

이 지긋지긋한 것. 제발 좀 끝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