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새벽일기

서울살이 몇 핸가요 1

사당, 나의 첫 서울살이

by 글쓰는 최집사
서울살이 몇 핸가요
언제 어디서 왜 여기 왔는지 기억하나요

창작뮤지컬계의 전설인 <빨래>의 대표 넘버 '서울살이 몇 핸가요'의 가사다.

<빨래>는 초연부터 전 기수 통틀어 3번을 봤는데, 고등학교 때 처음 보고는 그냥 재미있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대학 입학 후 두번째 공연을 보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그 때 비로소 나는 내가 서울살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서울살이'라는 말 속에 함축된 고단함과 아픔, 외로움의 무게를 알게되고 난 후에는 한동안 동경했던 서울이라는 도시가 너무나 무자비하고 건방지게 느껴졌다.

그래. 건방지다라는 말이 꼭 맞는 것 같다.

도대체 니가 얼마나 대단한 도시길래. 니깟놈의 도시에 사는 대가로 이렇게 고달프고 외로워야 하는 걸까.


19살의 끝자락, 나는 야자를 하던 도중 대학 합격 통지 문자를 받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그 문자는 세상이 나에게 가르쳐 준 행복의 전부였으니까.

스무살의 1월, 나는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공무원인 엄마 덕에 공무원 자녀들을 위한 외부 기숙사에 방 하나를 얻게 되었다. 사당역 근처. 근처라고 하기에는 매우 외진 곳에 있어 역이나 편의점을 가려면 기숙사 셔틀버스를 타고 7분정도 나가야 했다. 시설도 그저 그랬고 불편했지만 서울이라는 낯선 도시에 처음으로 생긴 나만의 공간이었다.

물론 그 공간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지만 내 룸메이트였던 언니는 기숙사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사실상 나만의 공간이나 다름 없었다.


나라는 사람을 자각하기 시작한 이후 내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청주를 떠나오면서 서운한 마음이 컸지만 내심 아름다운 미래 같은 것을 상상했다. 스무살 어린 아이들의 대부분 그렇듯 난생 처음 부모님의 품을 떠나 독립하는 것에 대한 두근거림과, 서울에 이름있는 대학에서 꿈같은 캠퍼스 생활을 펼쳐갈 나의 모습.

서울이라는 도시에 와서 대학을 다니면 그런 삶은 자동으로 따라오는 줄만 알았다.


서울은 그 어떤 도시보다도 더 외지인이 많은 도시이다. 사실은 처지가 비슷한 외지인들이 모여서 서로를 적으로 상정하며 안타까운 레이스를 펼치는 곳. 그 레이스에 합류하던, 합류하지 않던 외로운 건 매 한가지인 도시.

사당에서 살기 시작한 첫 달은 꽤 자주 밤에 울었다. 원래도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이었지만, 연고도 없는 도시에 혼자 지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고향에서 함께 서울에서 온 친구들의 얼굴도 자주 보기 힘들었고, 난생 처음으로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물론 학교생활은 즐거웠다.

대학친구는 진짜친구가 아니라고 나를 겁주던 sns와는 달리, 나는 친구들과 곧잘 친해졌고, 친한 동기 선후배들과는 졸업한 지 2년 이상 지난 지금도 종종 만나며 잘 지내고 있다.

대학생활은 나에게 서울이라는 도시에서의 연고를 만들어주었다. 솔직히 그들이 없었다면, 나의 서울살이는 백만배 천만배 더 어려워졌을 것이다.


첫 서울 살이를 사당에서 해서 그런지 사당은 어쩐지 고향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사당에서 왕십리까지 통학을 하면서 알바를 하다가 쓰러진 이후 엄마는 학교 근처의 자취방을 마련해주었고, 정확히 1년정도 머물렀던 그 기숙사에서 나오게 되었다.

이제 걸어서 학교에 갈 수 있다고 좋아했는데 왠지 모르게 자꾸 그 허름하고 불편했던 기숙사가, 셔틀버스를 타던 사당역 2번 출구가, 때로는 걸어서 역까지 내려왔던 그 길이 생각이 났다.

1년간 그 곳에서 살면서 서울살이의 단맛 쓴맛 짠맛 감칠맛까지 봤기 때문일까. 아직도 사당을 떠올리면 왠지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물론 행복의 미소는 아니다. 대학 1년의 치기어리고 어리숙했던 내가 살았던 그 곳. 그 곳도, 그 때의 나도 종종 그리워지곤 한다.


그 기숙사에는 내 눈물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을까.

그 곳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눈에서도 계속해서 눈물들이 강을 이루어 흐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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