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모카와 크림이의 험난한 입양기
라떼 2세들은 차근차근 집에 적응해갔다.
가장 먼저 용감하게 거실로 나와 준 건 '모카'였다. 남매 중에 가장 용감하고, 붙임성도 좋고, 덩치도 있는 편이라 아마도 라떼 2세들의 대장격인 아가였다. 라떼만 발광하며 달려들던 장난감에 가장먼저 반응을 보인 것도 모카였다. 쪼끄만 주제에 맹수 행세를 해서, 물고있는 장난감을 뺐으려고 하면 으르릉거렸다. 과몰입이 주특기였다.
몸 전체가 치즈태비이고 앞뒷발이 모두 흰색 양말을 신고 있어 앙증맞기 그지없는 생김새였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거실로 나와 탐색을 시작하더니, 이내 우리 집안 모닝엔젤이 되었다. 아침에 방문을 열고 나오면 방문 앞에 벌렁 누워 잠들어있다가 눈을 비비며 깨곤 했다. 우리 가족도 그런 모카에게 푹 빠졌다.
모카는 네 마리의 남매 중 유일한 딸랑구(어렸을 땐 사실 율무도 암컷인 줄 알았다)유자와 유독 쿵짝이 잘 맞았다. 두 녀석 모두 사냥놀이에 적극적이고 깨발랄 포텐 가득한 아깽이여서 그런지 유독 둘이 붙어있는 모습이 자주 보였고, 어디선가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가보면 두 녀석이 서로 목을 물고 레슬링을 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모카가 입양을 갈 때, 유독 '유자가 허전해하겠구나.' 생각했다.
여러 사람에게 아이들 입양 문의가 왔지만 준비한 설문에 성실하게 답해주고, 많은 소통을 나눈 분들과 진지한 입양 논의를 진행했다. 모카의 입양자분은 대학생으로 자취중이었고, 곧 졸업 후 가족의 집으로 돌아 갈 예정이었다. 수컷 고양이를 입양하기를 원했고, 모카의 사진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다고 한다. 고양이를 키워본 적은 없었지만, 부모님 집에 강아지가 있다.
나는 우선 가족들의 동의를 제대로 받아달라고 요청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도 막상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하면 여러가지 어려움 앞에 아이를 유기하는 일이 허다한데, 가족들과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을 제대로 고민하고 생각하지 않고 입양을 결정하는 것은 곤란했다. 그리고 강아지와 고양이는 생활습관부터 성향까지 모든 것이 다르기 때문에 모카에게 맞는 환경을 조성해달라고 요청했다. 입양자분은 며칠 뒤에 확신이 섞인 회신을 주었다. 모카를 위한 환경 조성과 함께 모카를 가족으로 맞아 평생 사랑을 주며 살겠다는 다짐을 전해주었다. 그렇게 모카는 자기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평생 가족을 찾게 되었다.
크림이는 모카와 성격이 반대였다. 겁도 많고, 소심한 성격으로 항상 구석자리에서 우리를 몰래 지켜보는 고양이었다. 그래도 우리 집에서 한 달 이상을 적응하면서, 사냥놀이를 사랑하는 듬직한 고양이가 되어갔다.
크림이는 치즈태비에 눈가에 흰색 아이라인, 커다란 귀가 인상적인 미묘였다. 사람 손을 즐기진 않지만 신사적이고 조용한 고양이를 찾는 사람에게 적합한 반려묘였다.
크림이의 입양자분이 그런 성향이셨다.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의 그녀는 크림이를 가족으로 맞이하기 위해 미리 방묘문을 준비하고 캣타워와 스크래쳐, 화장실 등에 대한 조언을 구해왔다. 우리와 같은 지역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입양 날 직접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하셨다.
크림이는 특히 낯을 많이 가리는 성향이어서 입양에 더욱 신중했다. 아이가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조급해하거나, 다그치거나, 파양할까봐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입양자분께 재차 이 부분에 대해 강조했고, 입양자분 역시 아이가 마음을 열어 줄 때까지 1년이 걸리고, 2년이 걸리더라도 기다리겠다고 확신을 주셨다.
모카와 크림이는 한 날 새로운 집으로 떠났다. 아이들을 위한 선택이고 또 우리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막상 한 달여간 정이 든 아이들을 보내자니 여간 아쉬운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잘 적응해줄지, 엄마를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힘들어하진 않을지 걱정되어 밤 잠을 설쳤다.
두 입양자분 모두 다음날 아이들 소식을 전해왔다. 모카는 집에 도착한 첫 날은 어색하게 이곳 저곳을 탐색하더니 다음 날 아침에는 새로운 집사에게 머리를 부비며 애교를 부렸다고 한다. 밥도 잘 먹고, 응가도 예쁘게 했다고. 벌써부터 장난감으로 사냥놀이를 즐긴다는 이야기에 우리 가족 모두 안심하게 되었다. 예상대로, 모카는 개냥이 중의 상 개냥이가 될 아깽이었다.
크림이는 '모찌'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렸다. 크림이는 예상대로 아직까지는 낯을 가리고 있었지만, 소파 아래에서, 숨숨집에서 집사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봐주고 있었다. 역시 밥을 잘 먹고 화장실도 잘 간다고. 밤에 조금 울기는 했지만 집사가 건네는 간식을 신나게 먹고 다시 잠들었다고 한다.
두 녀석이 떠난 우리 집은 어쩐지 허전했다. 행동대장 모카가 입양을 간 것이 크기도 했다.
다섯마리가 복닥거렸던 캣타워는 세 마리가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화장실 갯수도 충분했고, 밥그릇도 세 개로 줄었다. 원래는 가능하면 아이들은 모두 입양을 보내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절대 아무 집에나 보낼 수 없었다. 유자와 율무는 라떼와 함께 우리 가족이 되기로 했다.
모카는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는 집사들과, 강아지 친구와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입양자분의 카카오톡 프사에는 언제나 애교 가득한 모카의 사진이 있다. 아직까지도 종종 소식을 보내주시는 것이 감사하다.
모찌(크림이)는 슬프게도 1살이 되던 해 가을에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새 집에서의 적응을 잘 마치고 행복하게 살 날만 남았다고 생각했지만, 복막염이라는 무서운 병이 찾아왔다. 입양자분은 모찌가 고양이 별로 떠날 때까지 최선을 다 해 주셨다. 모찌가 너무 일찍 고양이 별로 떠난 것은 힘들고 속상했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곁을 지켜준 가족이 있었다는 사실에 위안이 됐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고양이 다섯에서 셋으로 바뀌었다. 가장 걱정된건 라떼였다. 독립할 나이가 됐지만 어쨌든 두 자식이 떠난 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아니나다를까 아이들이 입양 간 날 라떼는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울었다. 그 모습이 마치 모카와 크림이를 찾는 것 같아 속상했다.
며칠은 기운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그게 라떼가 정말 슬퍼했던건지, 걱정스러운 내 마음에 그렇게 보인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 때 아이 둘을 입양보내고 라떼에게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너에게 못 할 짓을 하는걸까. 그래도 라떼야, 다 널 위해서인데.
니가 더 행복하고 쾌적하게 살 수 있게, 그리고 너의 아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평생 가족과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주려고 그러는건데. 이런 우리 마음을 알아도, 속상할 수 있겠구나. 미안하다. 그래도 금방 잊혀질거야.
우리와 가족이 된 유자와 율무는 그 무렵부터 급격하게 집사들과 잘 지내주었다. 늘 구석에서 잠만 자던 율무도 사냥놀이를 즐기고, 유자는 모카의 몫까지 호기심 넘치고 깨발랄한 고양이로 자라났다. 아기 고양이들이 점차 마음을 열어주는 모습이 고마웠고, 입양을 간 아이들을 잊고 적응해주는 라떼가 고마웠다.
그 해 초 가을, 진짜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고양이의 온도>는 고양이 라떼, 유자, 율무가 우리 가족의 첫 반려묘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길이라는 차가운 공간에서 만난 고양이라는 존재. 얼마나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 차가운 길 위에서도 인간들에게 먼저 사랑을 건네줄 수 있었던걸까요.
라떼를 만나 변화 한 제 삶의 온도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고양이를 키우시는 분들, 길천사들과 함께 하고 있는 분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양이의 온도>는 매주 주말에 연재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