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도씨 : 온 몸에 길의 흔적이 남아있는 고양이

11. 너의 발 뒤꿈치

by 글쓰는 최집사

라떼는 내가 만나 본 길고양이 중 가장 사람을 좋아하는 고양이었다. 그 사실이 라떼와 가족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을 주는 것 중 하나였다.


하지만 길고양이가 집고양이가 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에게도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라떼 입장에서는 갑자기 제한 된 공간에서, 그것도 인간들이랑 같이 살게 되는 것이다. 매일매일 동네 이곳 저곳을 자유롭게 여행하던 라떼가 과연 집에 잘 적응해 줄까.

자유롭지 못하더라도 당연히 길냥이보다 집냥이로서의 삶이 라떼에게 좋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내심 걱정이 되었다. 라떼가 자유롭던 길생활을 그리워할까봐.


IMG_0185.JPG 꼬질꼬질 길냥이 시절:)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 라떼는 금세 집에 적응했다. 처음부터 '여기가 내 집이다'라는 듯 편안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더니, 화장실도 잘 이용하고 집사들의 침대도 잘 이용하며 금세 집냥이로 거듭났다.

"이 녀석 정말로 집냥이었던거 아냐?"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라떼와 오래 지내면 지낼수록 느꼈다. 이 녀석, 길 위의 생활이 정말 녹록지 않았구나. 그리고 그 흔적이 온 몸 여기저기 남아있구나.


IMG_2237.JPG 정말 편안하게 주무시는 라떼 마님:)


라떼를 처음 집에 데려왔을 때는, 당연히 길 위에서의 모습 그대로였다. 하얀 털은 누런 색으로 얼룩져있고, 귀와 코, 몸 여기저기가 검다. 중성화 수술까지 한 상태고 아직 회복중이기 때문에 섣불리 목욕을 시킬 수 없었다.평생 목욕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을 라떼를 곧바로 물에 넣을 수는 없었다.

급한대로 물티슈로 발과 몸을 닦아주어 '꼬질함'은 어느정도 해결되었지만 뭐랄까 '길냥이스러움'은 없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수유로 인해 불어있는 젖과, 앙상한 얼굴, 온 몸 군데군데 털 빠짐이 있었다. 누가봐도 길에서 데려 온 고양이었다. 그 점이 가장 속상했다. 널 누가 봐도 집에서 사랑만 받은 고양이로 느끼게 해주고 싶은데.


안전한 공간에서 살게 된 라떼는 안정돼 보였지만, 사람과 함께 사는 일에는 아직 적응이 많이 필요해 보였다. 집에 와 첫 며칠은 깊이 잠들지 못하고 사람이 근처에 가면 깜짝깜짝 놀라며 깨곤 했다. 분명 사람을 좋아하는 고양이인게 맞는데, 사람과의 일상에 적응이 필요했던 라떼는 우리 가족이 되고 몇 달간은 간헐적으로 스트레스성 허피스를 앓곤 했다.


IMG_2189.JPG 장난치지 말라옹 ㅎㅎㅎ


하지만 다른 어떤것 보다 나를 가슴아프게 했던 건 다름아닌 라떼의 발바닥이었다.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뒷다리를 늘어뜨리고 잠을 자는 라떼를 쓰다듬어주다가 문득 라떼의 젤리는 아기냥이들의 그것과 달리 무척이나 딱딱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고양이 젤리는 원래 말랑말랑 한 건 줄 알았는데.

사람도 나이가 들거나, 오래 서 있거나, 발을 혹사시키면 굳은 살이 배기는 것 처럼 라떼의 발도 아스팔트 바닥을, 흙바닥을 밟으며 살아 온 흔적이 고스라니 남아있었다.


게다가 라떼의 오른쪽 뒷발에는 오랜시간 거칠고 딱딱한 땅에 쓸려 까진 채 더 이상 새 털도 나지 않는 흉터가 남아있었다. 그 빈 구멍을 볼 때 마다 라떼의 길 위에서의 삶이 녹록지 않았음을, 우리가 가족이 됐다는 사실이 아직은 서로 어색하지만 정말 다행인 일임을 깨닫는다.


KakaoTalk_Photo_2020-04-14-23-09-08.jpeg 길 위의 삶이 남아있는 라떼의 발 뒤꿈치


아직도 까진 뒤꿈치를 볼 때마다 잠 든 라떼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마음껏 누려 라떼야~ 넌 그럴 자격이 있어!"

물론 지금의 라떼는 처음 데려왔을 때랑 달리 오동통한 비만냥이고, 털도 윤기가 나고 부드럽지만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까진 발 뒤꿈치는 라떼가 길냥이었다는 증거다. 마치 몸에 새긴 문신처럼.


2016년의 무더운 여름, 라떼는 태어나 처음으로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집안에서 여름을 보냈다. 비록 우리 가족은 고양이들이 감기에 걸릴까봐,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등등의 이유로 그 에어컨 바람을 마음껏 누리리 못하고 더운 여름을 보냈지만.

그렇지 않아도 땀이 줄줄 나는 날씨에 굳이 사람에게 딱 붙어서 잠이 드는 38도씨의 생명체 덕에, 그 해 여름은 유별나게 더웠다. 아니, 따뜻했다.









<고양이의 온도>는 고양이 라떼, 유자, 율무가 우리 가족의 첫 반려묘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길이라는 차가운 공간에서 만난 고양이라는 존재. 얼마나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 차가운 길 위에서도 인간들에게 먼저 사랑을 건네줄 수 있었던걸까요.

라떼를 만나 변화 한 제 삶의 온도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고양이를 키우시는 분들, 길천사들과 함께 하고 있는 분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양이의 온도>는 매주 주말에 연재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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