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도씨 : 어디를 가도 니가 생각이 난다면

12. 다시 돌아 온 봄

by 글쓰는 최집사

어디를 가도 그 사람이 생각이 나면, 그건 사랑이라고 한다. 맛있는 걸 먹으면 생각나고, 좋은 곳에 가면 생각나고, 기쁜 일이 있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 제일 먼저 생각이 나는 고양이가 있다면, 그 고양이를 정말 사랑하는 거겠지.


라떼, 율무, 유자와 함께 살게 되고 처음 맞은 추석 연휴에,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고양이들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주 잠깐, 30분 거리의 큰 할아버지 댁에 왔는데도 눈 앞에 세 고양이가 어른거린다. 시골 동네에서 우다다를 하는 고양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라떼가 우리 가족이 되어서 정말 다행이야. 명절 음식으로 차려진 닭백숙을 보면서 생각했다. 우리 라떼가 꼬꼬 참 좋아하는데. 시골 집에 있는 볏짚 빗자루를 보면서는 생각했다. 저거 장난감으로 쓰면 애기들이 참 좋아할텐데.

급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면 라떼가 현관으로 마중나오는 모습을 보며 '내가 너를 정말 사랑하는구나.'하고 생각하게 됐다.


KakaoTalk_Photo_2020-04-23-23-33-14.jpeg 아침에 눈뜨면 옆에 꼭 붙어 자고 있는 라떼 :)


그 해 겨울은 우리 가족에게 집사로서의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시간이었다. 고양이들에게도 집사들과의 삶에 적응하는 시기였을 것이다.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정말 한 가족이 되어 있었다.


겨울이 오기 전 가을, 율무와 유자는 중성화 수술을 했다. 눈도 못 뜨던 꼬물이들이 자라 어엿한 캣중딩이 되어가는 모습이 뿌듯했지만, 아무래도 수술은 수술인지라 걱정도 많이 됐다.

중성화수술을 하고 나서 재밌는 일이 생겼다. 집사 손을 거의 안 타던 율무가 중성화수술을 하고 나서 손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만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고양이어서 율무의 성격을 존중해주기로 했는데, 수술 후에는 안고 있으면 집사의 품에 얼굴을 묻고 골골송을 부리는 고양이가 됐다. 호르몬의 영향인가. 어쨌든 율무는 그때부터 '댕댕미'를 장착했다.

반면에 유자는 수술 후 더 도도한 고양이가 되었다. 원래도 도도냥의 대명사였는데, 쪼끄만게 새침이 더 늘었다. 사냥을 즐기는 깨발랄함은 다행히도 여전했다. 율무와 비교했을 때, 유난히 몸집이 작아 수술하는 게 특히 걱정됐는데, 개복수술까지 하고도 율무보다 화장실도 잘 가고 사냥하겠다고 날아다녔다. 그래서 참 다행인 것 같기도, 오히려 더 걱정스럽기도 했다.


IMG_0369.JPG 중성화 수술 하고 온 남매. 유자는 그루밍할까봐 환묘복을 입혔는데 너무 섹시하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가고, 새 해가 밝았다. 율무와 유자가 태어난 그 봄이 돌아왔을 때, 나는 안도했다. 우리가 이 고양이들을, 라떼, 율무와 유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잠깐의 안타까움, 흥미, 귀여움. 그런게 아니라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이 아이들을 가족으로 맞았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사랑하면, 때로는 불안하다. 너무너무 소중하고 좋으면 불안한 생각이 따라온다.

유자와 율무의 첫 생일을 축하해 주던 그 봄, 누구보다 행복했지만 그만큼 불안한 마음도 컸다. 누가 들으면 "그렇게 쓸데 없는 걱정을 하다니!"하고 핀잔을 듣기에 딱인 걱정들 뿐이었다. 대부분은 길생활을 오래 한 라떼의 건강에 대한 것들이었다.

새벽에 몸을 뒤척이다가 내 다리 옆에 자고 있던 라떼를 건들였다. 나는 놀라서 깼는데 녀석은 여전히 대자로 뻗어있다. 잠든 라떼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쓰다듬어본다. 이상하게 숨을 쉬지 않는 것 같다. 평소같으면 내 손길에 몸을 움직이거나, 부르르 떨었을텐데. 잠을 잘 때 바쁘게 오르락 내리락 했던 배가 평온해 보인다. 불길한 느낌이 든다. 두려운 마음에 흔들어 깨우지도 못하고 다시 눕는다.


2017년의 봄을 맞이하기 전까지,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다. 라떼가 죽은 건 아닐까, 몇번이나 깨서 확인했다. 지금은 척하면 척이라고, 라떼 얼굴만 보면 컨디션이 어떤지 알 수 있지만 그때는 막연히 불안했다. 건강검진도 마쳤고, 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확인을 했지만 어쩌면 라떼가 어느날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래. 너무 사랑해서 그랬다. 너무 사랑해서, 벌써부터 니가 떠날 걱정을 하곤 했다.


IMG_1431.JPG 1살의 유자. 성묘가 되었지만 엄마 껌딱지인건 변치 않았다.
IMG_2727.JPG 1살의 율무. 고무고무 열매를 먹은건지 점점 끼다래진다.


율무와 유자는 무럭무럭 자라 1살 생일을 맞이했다. 성묘. 고양이 세계에서 인정하는 어른이가 된 것이다. 우리는 훌륭한 고양이 확대범이었다. 율무 유자는 물론, 사실 확대하지 않아도 되는 라떼까지 보기 흐뭇하게 확대했다. 돌아온 봄, 율무는 4kg을 바라보는 든든냥이가, 유자는 3kg가 조금 넘는 늘씬냥이가 되었다. 그리고 처음 집에 왔을 때 4kg이 안 됐던 라떼는 5kg이 넘는 통통냥이가 되었다.

준 건 사랑 뿐인데, 아주 보기 좋게 확대되었구나. 그제야 라떼는 길고양이 티를 벗고 집고양이가 되었다. 그리고 나 역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보아도 라떼가 생각나는, 부정할 수 없는 고양이 집사가 되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완벽히 스며들었다. 이제 서로를 진짜 가족으로,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마음까지 따뜻한 봄 날, 우리 가족은 율무와 유자의 첫 돌을 축하하는 파티를 열었다.








<고양이의 온도>는 고양이 라떼, 유자, 율무가 우리 가족의 첫 반려묘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길이라는 차가운 공간에서 만난 고양이라는 존재. 얼마나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 차가운 길 위에서도 인간들에게 먼저 사랑을 건네줄 수 있었던걸까요.

라떼를 만나 변화 한 제 삶의 온도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고양이를 키우시는 분들, 길천사들과 함께 하고 있는 분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양이의 온도>는 다음 주말에 마지막화를 끝으로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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