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도씨 : 너의 온도

13. 차가운 길 위, 따뜻한 생명체

by 글쓰는 최집사

시간이 총알처럼 빠르게 지나간다는 말은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에서 더욱 실감할 수 있다. 꼬질꼬질한 외모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총총거리며 쫓아다니던 아파트 고양이 라떼가 집고양이가 된 지 올 여름이면 벌써 4년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금 돌이켜보면 '벌써 4년이나 흘렀나?'싶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


큰 사건들만 되짚어보자. 가족이 된 지 3개월 정도 지난 추석, 부모님은 이틀정도 집을 비우게 되어 도보로 10분 거리에 사시는 외할머니께 고양이들 밥 주는 일을 부탁드렸다. 그리고 이틀 뒤에 마주한 라떼는 다른 고양이가 되어있었다. 할머니들은 손녀 손자 살찌우기 전문이라고 했던가. 사람 뿐 아니라 고양이도 할머니 손에 맡겨지면 포동포동 살이 오른다. 이틀간 외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은 라떼는 1kg이상이 늘었고, 그 순간이 지금까지 라떼를 오동통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워낙 식탐이 많아 체중관리를 지속적으로 해주고 있는데, 가끔 처음 데려왔을 때 사진을 찾아보면 살쪄도 지금이 훨씬 예쁘다.


KakaoTalk_Photo_2020-05-01-21-59-28-8.jpeg 간식 이리 내놓아라냥


엄마가 재미삼아 만든 인스타그램 계정이 꽤나 순조롭게 커져, 각종 이벤트와 체험단을 통해 간식이며 사료며 모래며 장난감이며, 다양하게 즐기게 된 것도 신기한 일이다. sns와는 거리가 멀던 엄마가 라떼, 율무, 유자의 모습을 자랑하고 싶어 만든 계정은 순전히 엄마의 소통만으로 천 명 이상의 팔로워를 가지게 되었다. 각종 이벤트나 체험단을 통해 라떼가 일명 '냥수르'가 된 건 덤이다.

낯선 사람들에게 먹을거리를 구걸하던 라떼는 우리도 못 먹어본 다양한 음식을 즐기는 '냥수르'가 되었다.


KakaoTalk_Photo_2020-05-01-21-59-28-4.jpeg 신상 장남감.. 내가 한 번 둘러보겠다옹


건강한 줄만 알았던 유자가 심근비대증 판정을 받은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세 고양이 중 유일하게 잔병치례 한 번 없이 건강하게 3살을 넘긴 유자는 올 초에 폐수종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 심근비대증이 꽤나 진행 된 상황이었고, 죽을 고비를 겨우 넘겼다.

가장 오래 우리 곁에 남아있어줄 줄 알았던 유자의 시한부 판정은 일상생활을 어렵게 만들 정도의 큰 슬픔이었다. 유자가 거식을 할 때는 내 밥도 넘어가질 않았다. 가족이 아프다는 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KakaoTalk_Photo_2020-05-01-21-59-28-1.jpeg 작고 귀여운 나의 고양이 유자

오늘 내일 하던 유자는 사랑의 힘으로 용감히 병마와 싸우고 있다. 지금은 밥도 너무너무 잘 먹고, 벽 스크래처를 타고 책장 위에 올라가기 일쑤다. 눈빛도 이전처럼 반짝이고, 약으로 증상들이 악화되지 않도록 유지하고 있다. 유자가 지금의 컨디션을 찾기까지 집사들도 쉽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루 종일 달라붙어 강제급여를 하고, 약을 먹이고, 어떻게든 식욕을 찾아주려 기호성이 좋다는 것들은 몽땅 사 오는 일은 쉽지 않았다. 유자의 행동 하나에 일희일비하고, 내 시간을 포기하고 오로지 유자에게 매달려야 했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유자는 가족이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유자가 훨씬 중요했다. 가족은 그런거니까.

KakaoTalk_Photo_2020-05-01-21-59-28-3.jpeg 강아지의 영혼이 깃들어있는 율무

율무와 유자 남매는 지난 28일 4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우리가 가족이 된 것도 그만큼 시간이 흘렀다는 증거다. 유자의 투병으로, 이번 생일은 특히 고양이와의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언제고 당연할 것으로 생각했던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녀석들과의 삶은 당연하지도, 영원하지도 않다. 그래서 올 해 아이들의 생일은 지난 3번의 것보다 더 의미있고 행복했다.


길 위의 존재와 가족이 된다는 건, 정말 기적같은 일이다. 라떼, 율무, 유자와 함께 한 4년이라는 시간 속 희노애락이 소중한 이유다. 우리가 만난건 기적이기에. 너희들이 우리 가족에게는 기적이기에.






고양이의 평균 체온은 38도씨. 사람보다 2도씨 정도 높다.

녀석들은 인간보다 더 따뜻한 체온으로 차가운 길 위의 삶을 견디고 있다. 사람을 싫어하고, 차갑고, 냉랭한 동물이라는 편견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는 사람들에게 먼저 마음을 건넨다. 때로는 두려움으로, 때로는 아픔으로, 때로는 행복과 사랑으로 우리에게 인사에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나는 고양이입니다. 길 위에 살죠."


라떼를 보면서 매일같이 느낀다. 고양이란 정말 신기한 생명체다. 여러모로 그런데, 가장 신기한 건 사랑이 넘친다는 데 있다. 무엇이 이 녀석들의 마음에 사랑과 행복을 가득 담아놓았을까.

오랜시간 길 위에서 살얼음판 위의 삶을 살았을 너에게 행복과 위로가 되고 싶어 가족이 되기로 했다. 그런데 지내보니 반대다. 지친 하루의 끝에, 인류애가 사라져가는 뉴스 속에, 그냥 막연하고 힘이들 때 녀석은 언제나 나의 위로가 된다. 따뜻한 너의 체온에는 사랑이 가득하다. 작은 일에도 마음이 옹졸해지는 나와 달리, 너는 몸집은 우리보다 작아도 변치않고 넓고 깊은 마음을 보여준다.


그런 너와 가족이 된 일은 인생을 통틀어 잘 한 일이다. 지나온 시간동은 우리는 함께하기 전의 모습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만큼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내가 너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지금처럼 최선을 다해 너를 책임지는 것 뿐. 줄 수 있는 사랑을 다 주고,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도 아마 부족하겠지만, 언제나 함께 할 것만은 약속할게.


KakaoTalk_Photo_2020-05-01-21-59-28-2.jpeg 우리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웠다냥 :) 모두 행복해라냥 !



오늘도 이 38도씨의 따끈따끈한 생명체를 안으며 느낀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걸.








그동안, <고양이의 온도> 매거진을 사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삼냥이들과의 일상을 글로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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