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희 / 남길순
복희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차가운 바닥에 앉아
주인을 기다리고 있던 개가 일어선다
개가 걷고
소녀가 따라 걷는다
호수 건너에서 오는 물이랑이 한겹씩 결로 다가와
가슴에 닿고 있다
호숫가를 한바퀴 도는 동안
내 걸음이 빠른 건지 그들과 만나는 거리가 조금씩 좁혀졌는대
인기척을 느낀 소녀가 먼저 지나가라고 멈춰 서서
개를 가만히 쓸어주고 있다
희미한 달이 떠 있다
모두 눈이 멀지 않고서는 이렇게 차분할 수 없다
가끔 주인과 나란히 걷고 있는 개를 볼 때가 있다. '나란히'라고는 하지만 실은 주인보다 살짝 앞장서서 주인을 인도하고 있다. 주인은 모든 신경을 개에게 집중하고 개는 주인만을 생각한다.
그들의 동행을 보는 일은 경외심을 일으킨다. 특히 덩치 크고 순둥순둥한 골든레트리버의 신중하고 침착한 눈빛은 산만하고 급한 나를 압도한다.
서로를 신뢰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언어 앞에서, 특히 인간을 무한 사랑하고 헌신하는 개 앞에서 자꾸
작아지는 나를 본다.
개만도 못하다는 말이 욕이 아님을, 실은 진짜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복희'앞에서 생각한다.
아름다운 동행이 '복희'들로 인해 가능함을 그들에게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