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주인은 부재중

by 박지영JYP

어머니가 50년 넘게 다니시던 교회를 사정이 있어 2년여 못 다니셨다. 주일을 못 지키시다가 어쩌다 시간이 돼서 한 번씩 다녀오시면 왠지 마음이 불편해하셨다.

올해부터 마침내 주일을 지킬 수 있는 상황이 되어 교회를 다시 찾으셨다. 그런데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고 오셨나 보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았는데 어느 권사님이 말씀하셨다.

"여기는 이 권사가 앉는 자린데?"

자리를 옮겨 앉으셨다.


예배가 끝나고 점심식사를 하러 식당에 가 자리를 찾아 앉으셨다. 다른 권사님이 말씀하셨다.

"여기 이따가 김권사 와서 앉을 건데?"

결국 자리를 비켜주면서 어머니가 받으셨을 상처가 내 마음도 찌른다.


성경을 잘 모르지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인 것 같다.

"어느 누구든 상석에 앉으려 애쓰지 말라"

이런 말씀이 있지 않나? 내가 잘못 알고 있는가?


색깔이 사람을 가르는 세상이다. 돈이 사람을 가르고 이념이 사람을 가르고 종교가 사람을 가르는 세상이다.

그것을 고치려 2천 년 전에 예수께서 오셨다.

그런데 정작 예수는 없고 회칠한 무덤들만 여기저기 가득하다.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


자기들끼리는 너무 선하다.

자기들끼리는 믿음으로 서로를 위해 목숨이라도 내어줄 듯하다.

자기들끼리는 두꺼운 친분으로 사랑이 넘쳐난다.


타교를, 타인을 배척할 때는 겁날 만큼 매몰차다.

검은 염소무리 속에 점박이 염소가 보이면 뿔로 들이받는다.

십자가로 범벅인 서울 밤하늘에 초대교회의 열정과 사랑대신 끼리끼리 옹기종기 모여 나누는 인간적 친목이 수를 놓는다.


교회에서 인정받고 한자리하는 신자와 그의 자녀들은 어깨를 편다. 허름하고 내 편이 없는 이는 늘 그늘진 구석에서 행복한 그들을 부럽게 바라본다.

헌금 액수가 믿음의 가치를 판단한다.

소외받은 이웃이 교회라는 공간에서 더욱 심하게 소외되는 현상이다.

비단 교회만 그러겠는가?

어느 종교든 깊이 들어가 보면 마찬가질 거라는 생각을 한다.


예수를 불러본다.

"예수님, 당신이 그날 앉으려던 자리는 당신 자리가 아니었다네요. 당신을 위한 잔치에 당신이 앉을 곳은 없다는군요"


나를 바라보는 예수의 눈이 슬퍼 보인다.

가만히 예수를 바라본다.

부드러운 미소로 고개만 끄덕이시는 예수 앞에 엎드린다.


"예수님, 실은 저도 그렇습니다. 당신이 앉을 곳을 제가 차지하고 앉아 당신이 계신 자리가 어디인지 신경도 안 쓰는 죄인입니다. 이 죄인을 용서해 주세요~"


우리는 모두 수의복만 입지 않은 죄인이다.

작가의 이전글달라도 뭐가 다른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