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던 재단사

by 박지영JPY

잠자던 번데기 / 박지영


나의 언어를 꼭꼭 눌러 너를 쓴다

너는 나의 일기

백 개의 서랍에 백 개의 침묵이 개켜있는

백년의 밀실, 밀봉된 호흡이 숨을 쉬면

살았어도 티 나지 않는 잔물결이 출렁이는


유리그릇, 거울, 첫사랑, 힘센 자의 약속은

깨져도 반짝이는 그럴듯한 위로

견사에 둘둘 말린 추락이지


침실은 깔끔하고 천정은 아치형

명주실 드리운 하얀 벽

못 먹어도 배부른 비단궁전에서

오래도록 꿈을 꾸고 있었구나


고귀한 여자의 스카프, 노란색 스카프

다림질은 뜨거웃 바람에 내맡겼지

어둠의 갑옷 벗어 던졌지

나비가 될지 몰라 참았던 울음이

나비 옷 되어 날아가고 있었지


너는 나의 일기

나의 언어를 꼭꼭 눌러 너를 다시 쓴다

하여, 잠에서 깨어나지 말기를

꿈꾸는 자는 영원히 아름다우리


나비꿈 꾸다가 나비 옷 되어 날아가는

뜨거운 파도에 내던져진

잠 자던 재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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